『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10

손주에게 보낸 편지(2)

by 현목

시 한편 써오기 숙제

슬픈 감정을 행간에서 읽자



순유야 잘 있었니? 엄마가 학교 나가시니까 이젠 옛날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졌다고 너의 아빠가 그러더라. 동생 순규도 잘 챙기고. 터닝메카드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줄 몰랐네. 할아버지가 기억해 두었다가 터닝메카드를 살 기회가 있으면 꼭 사서 네게 선물로 주고 싶어.


오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지난번에 할머니가 그러는데 너의 학교에서 시 한편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순유가 잘 썼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는 사실 아무나 잘 쓰지는 못해. 그러나 그것도 요령을 알면 전혀 못쓰는 거는 아니야. 우수하게 잘 쓰느냐 못쓰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을까. 우선 시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는 산문(散文)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국어책에서 접하는 글이 대부분 산문이야. 지난번 할아버지가 글쓰기에 대해서 적어준 편지 기억나지. POINT 혹은 POT. 더 간단히 말하면 어떤 대상(Object)에 대해 자유롭게 꼼꼼히 쓰는 글들이다. 그럼 시는 뭘까. 겉모양으로 말한다면 산문은 줄글이라면 시는 한줄 한줄 띄어쓰는 글을 말한단다.

예를 들어볼까. 여기 강물이 흐르고 있다고 하자. 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이어주는 ‘다리’를 통해서 걸어가며 강물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낀다고 하면 그때의 그 ‘다리’가 다름 아니라 산문인 것이다. 이 다리의 특징이 뭘까. 다리는 빈틈이 없이 죽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강을 건너는 방법이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걸 ‘징검다리’라고 한다. 강물이 흐르는 중간에 돌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단다. 사람이 이 ‘징검다리’를 건너려면 폴짝폴짝 뛰어야 한다. 앞의 ‘다리’는 이어져 있는데 반해 이 ‘징검다리’는 죽 이어진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이 떨어져 있다.


다시 말해 ‘다리’는 문장들이 빼꼼하게 이어져서 어떤 생각, 느낌을 표현한다면 ‘징검다리’는 문장이 강물에 놓여있는 돌처럼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띄어져 있다. 순유에게 어려운 말을 하나 해볼까. 여기 문장이 하나 있다고 하자. 그 뒤에 또 다른 문장이 있다. 이때 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행간(行間)이라고 부른다. 산문은 이 행간에 대해 별로 생각할 게 없단다. 왜냐하면 ‘다리’처럼 죽 이어져 있으니까. 그러나 ‘징검다리’는 돌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이 돌과 돌 사이의 떨어져 있는 부분을 행간이라고 해서 시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산문은 직접적으로 꼼꼼히 적어내려 간다면 시는 문장과 문장이 조금은 관계없는 내용을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는 함축적으로 쓴다고 하거나 에둘러 말한다고 하지. 그러니까 산문은 슬프면 슬픈 것을 그대로 쓰면 되지만 시는 슬프면 슬픈 것을 직접 슬프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어서 슬프다는 느낌이 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단다. 즉 그런 슬픈 감정을 행간에서 읽어야 좋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방법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과 발견’의 기법도 있는데 그건 네가 다음에 더 크면 얘기하기로 하자.


순유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몰라도 상관없어. 네게 느낌이 오는 것만 머리 속에 기억해 두면 된단다.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는 다시 이 편지를 읽고 싶을 때가 있으면 그때 다시 보면 아마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할아버지는 믿는다. 그러니까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만 이해해도 좋겠다.


자, 이제까지는 이론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어떻게 산문과 시가 다른가 살펴보자. 우리가 처음부터 강물과 다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니까 거기서 다시 출발해 보자. 편의상 지금 보고 있는 다리에 어떤 아이(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쯤 된다고 하자)가 있다. 그 아이는 지난 여름에 이 강물에서 엄마와 물놀이를 하다가 엄마가 강물에 떠내려가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가상으로 지어 놓고 산문과 시를 써보도록 한다. 그 아이 이름을 철수라고 하자. 철수는 오늘도 강물을 건너서 학교를 가는 날이었어. 다리를 건너니까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고 슬퍼서 콧등이 찡하고 눈물이 날 뻔 했다. 이때 느낌을 우선 산문으로 써보자. 아까 할아버지가 산문 쓰기의 힌트가 뭐라고 했지. 빈틈없이 줄글로 죽 써내려 간다고 했지. 그럼 시작한다.


오늘은 여름인데도 바람이 붑니다. 학교를 걸어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강물 위에 활처럼 휘어져 다리가 걸려 있습니다. 그 위를 아무 생각 없이 걸었습니다. 나는 다리 한가운데 서서 물끄러미 강물을 쳐다보았습니다. 강물의 물살이 개미가 꼬리를 물 듯이 졸졸 흘러갑니다. 작년 여름에는 강물이 내 키보다도 더 출렁거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튜브를 타고 마냥 소리를 지르며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로 새가 지나가는 것이 튜브에 누운 나에게 보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즐거워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엄마의 모습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습니다. 나는 작년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물이 비틀거리면서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를 보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영희가 뒤에서 따라오면서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놀라고는 갑자기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영희가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마구 뛰었습니다. 내 귀에 들리는 바람 소리가 강물 소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유야 철수라는 애가 강물을 보면서 지난 날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마음을 할아버지가 산문으로 써 본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같은 내용을 시로 써보자. 이때 할아버지가 주의점으로 뭘 말했지. 위의 글처럼 빈틈없이 줄줄이 쓰는 게 아니라 징검다리의 돌처럼 돌을 하나하나 띄엄띄엄 쓴다고 했지. 그리고 철수의 슬픈 마음을 직접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에둘러서 말하거나 행간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 다시 말해 슬프다는 말을 직접 쓰면 안 된다. 우선은 그렇게 이해해 두어라. 자, 그럼 쓴다.


강물이 흐른다

하얀 물살이 개미처럼 뒤를 따라간다

졸졸 소리가 지나간 시간을 툭 건드렸다

엄마의 얼굴이 강물 위에 펄럭인다

웃고 있지만 눈과 코와 입이 없고 눈썹만 보인다

(나는 눈과 코와 입만 있고 눈썹과 얼굴이 안 보인다)

엄마가 울고 있지는 않았다

강물이 내 가슴 속을 돌아가고 있다

졸졸 소리를 내면서

나를 부르면서


할아버지가 철수라는 아이의 슬픈 마음을 슬프다는 말을 안 쓰고 철수의 마음을 표현해 보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자신은 없다. 아무튼 이런 식이니까 너 나름대로 잘 이해해서 다음에 시쓰기 숙제를 선생님이 내면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할아버지가 준 힌트를 잘 생각하여 한번 써보도록 하자.


아참, 제목을 잊었네. 산문에서의 제목은 지난번 글쓰기 편지에서 어떻게 찾는다고 했지. POINT의 P. 즉 핵심 문장을 찾으면 된다. 산문 중에서 순유는 어느 문장을 핵심 문장으로 보고 싶을까. 할아버지는 ‘내 귀에 들리는 바람 소리가 강물 소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보고 싶어. 따라서 제목은 ‘강물 소리와 바람 소리’로 하고 싶다.


시의 제목은 마찬가지로 P를 생각한다면 ‘웃고 있지만 눈과 코와 입이 없고 눈썹만 보인다’를 핵심 문장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철수는 엄마가 그리워 기억하지만 엄마의 얼굴이 잘 안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슬프지.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눈썹만 있는 얼굴’이라고 지었어. 잘 지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어때 좀 이해가 되니. 그럼 잘 있어. 바이.




2015.7.13

순유를 언제나 가슴 속에 꼭 안고 싶은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