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9

9 손주에게 보낸 편지(1)

by 현목

순유를 위한 글쓰기

‘POINT’를 잊지 말자



순유야 잘 있었니? 오늘 할아버지의 편지를 네가 받아보면 웬일인가 하겠지. 나도 일부러 작정하고 쓰는 것은 아니란다. 갑자기 한 사흘 전부터 편지를 쓸 마음이 생겼어. 우리 순유를 할아버지가 좋아한다는 걸 할아버지가 순유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알아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순유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순유야, 내가 작년에는 3분 프리라이팅을 시켜서 부담이 되니까 왠지 할아버지가 꺼려졌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지. 하지만 너의 학교 생활에서 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으니까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고 봐. 언젠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때가 오리라 믿어.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우리 한번 3분 프리라이팅 3원칙을 상기해 볼까. 첫 번째가 뭐였지?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라. 둘째는 거침없이 쉬지 말고 써라. 만약에 생각이 안 나서 끊기게 되면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차라리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라고 공책에 써라. 셋째는 3분이 되면 무조건 연필을 놓아라. 쉽지. 나는 순유가 이걸 암기하고 있으리라고 믿어.


또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모범이 되는 작가의 글을 베껴쓰는 것이다. 너에게 이것을 당장하라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할아버지가 연습 중인 것인데 베껴쓸 때의 요점은 단어 하나 하나를 보고 베껴쓰면 안 되고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써야 한단다. 이건 네가 더 크면 그때 실행해 보도록 하자.


내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네가 지난 주일에 고덕의 평생 학습관 정원에서 가족백일장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엄마가 내게 카톡으로 전해 왔기 때문이야. 그날의 글쓰기의 제목이 '지구, 안경, 어머니'라고 하더구나. 네가 쓴 것은 ‘어머니에 대한 것’이라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일러줬어. 할아버지는 순유가 과연 그 제목을 가지고 어떻게 썼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 중에서 순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거야.


순유야, 사람은 글을 왜 쓸까. 결국 사람은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쓰는 거란다. 그러면 그 생각은 무얼로 되어 있지? 생각은 사람들이 마음이라고도 하고 의식이라고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순유의 머리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있을 거 아니냐. 그 많은 생각을 간추려 보면 세 가지란다. 하나는 지성이라고 하지. 지성이란 말이 뭐지? 어려운 말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순유가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면 아마 산수나 과학 같은 것일 거야. 말이 이치에 맞는 거지. 둘째는 감성 또는 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있을까. 싫다, 좋다, 기쁘다, 즐겁다, 슬프다, 맵다, 짜다, 화가 난다, 시기질투가 난다…… 이런 것들은 다 감성이라고 한다. 셋째는 의지라고 한다. 사람이 무언가 하려고 하는 뜻을 말한다. 도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애.

순유야 어렵지. 이해가 안 되면 그런 것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좀 전에 할아버지가 말한 글쓰기는 지성에 대해서 쓸 수도 있고, 감성에 대해서, 또 의지에 대해서도 쓸 수 있지만 우리가 주로 글짓기를 하면 감성에 대해서 쓴단다.


글쓰기는 결국 자기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럴려면 어떤 모양을 갖추어야 할 것 아니니. 순유가 학교엘 간다면 아무렇게 팬티나 란닝구만 입고 갈 수는 없겠지. 팬티, 란닝구 입고, 그 위에 와이셔츠와 바지와 윗도리를 입고 필요하다면 넥타이와 어쩌면 모자도 쓰고 갈지 몰라. 마찬가지로 글을 쓴다면 그냥 팬티 란닝구만을 쓰면 다른 사람이 보면 지저분하고 초라하게 보일 것은 순유 생각에도 당연하겠지.

순유가 글을 잘 쓰면 물론 나중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할 때 유리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서 더 넓고 깊게 알아가기 때문이란다. 글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충실하게 할 수 있단다.


자, 그러면 어떻게 써야 할까. 순유야 수학에는 공식이 있지. 구구단을 외워 놓으면 숫자의 곱셈을 쉽게 하듯이 글쓰기를 하는데 어떤 길잡이가 되는 단서들을 알아 놓으면 좀 더 쉽게 그리고 충실한 글짓기를 할 수 있단다. 이 공식은 할아버지가 발견한 것은 아니고 어떤 책에서 본 것인데 너에게 아주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말하려고 한다.


영어 단어를 하나 소개할게. POINT. 포인트, 무슨 뜻일까. 원래 뜻은 뾰족한 끝이라고 해. 거기서부터 요점, 핵심이란 뜻도 되는데 이제부터는 POINT를 핵심이라고 말할게. 핵심은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POINT가 글쓰기의 길잡이가 된단다. 첫째 POINT라는 다섯 글자 중에 처음 나오는 글자, P를 보자. 이 P는 말 그대로 point 즉 핵심을 말한다. 글을 쓰려면 처음에 이 P 즉 point가 있어야 해. 말하자면 이걸 핵심 문장(포인트 센텐스/point sentence)이라고 한다.


순유가 백일장에서 쓴 ‘어머니의 대한 것’을 예로 들어볼까. 순유가 그날 쓴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어떤 것일까? 고덕 생활관 정원에서 순유가 쓴 글 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무얼까? 아마도 순유의 어머니는 순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썼을까. 할아버지가 상상하여 쓴다면 어쩌면 이랬을 것 같애. 순유가 아플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화가 날 때나 언제나 어머니는 순유가 잠이 들어야 잠이 든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자. ‘나의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보초를 서신다’ 이 문장이 바로 핵심 문장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을 살리기 위해서 살을 붙여야 한다. 마치 팬티와 란닝구 위에 와이셔츠와 바지와 양복 윗도리를 입듯이 말이다.


그럼 두 번째 생각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까 잊지 말아라고 한 단어, POINT 중에서 두 번째의 스펠링, 즉 O다. 이것은 오브젝트(Object)인데 그 뜻은 대상이란다. 대상이 뭐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있는 물건들이다. 물론 여기서 더 나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네가 더 큰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네가 ‘어머니의 대한 것’이란 제목에서 대상이란 무얼까? 그것은 네 눈으로 보이는 어머니라는 물체가 보여주는 것들이다. 어머니의 목소리,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어머니의 웃음 소리, 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등, 어머니의 음식…… 네가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다. 네가 백일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쓸 수는 없고 네가 경험한 어머니의 모습을 골라서 써야 한다.


자, 세 번째는 뭘까? POINT의 세 번째 스펠링 I이다. 영어로는 백그라운드 인포메이션(Background information), 다시 말해 배경 정보를 말한다. 배경이란 뒤쪽의 경치를 말한다. 즉 네가 쓴 글의 뒷경치를 배경이라고 하는 셈이지. 네가 ‘어머니의 대한 것’이란 글을 쓸 때 배경은 무얼까. 네가 글을 쓰는 사실들이 일어날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 눈이 내렸다든지, 어머니가 일본 여행을 하고 막 돌아온 때라든지, 아니면 아버지가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 일이었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진주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라든지, 네가 글을 쓸 때의 주변의 일들을 같이 써 주는 거란다.


네 번째는 너에게는 좀 수준이 높은 것이라서 말하기가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네가 이 다음에 커서 글을 쓸 때는 참고가 될 것이다. POINT의 네 번째 스펠링의 N은 영어로 news인데 이 말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기사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즉 네가 ‘어머니의 대한 것’을 쓸 때 유명한 사람이 말한 것이나, 성경에 나오는 말이나,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을 글에 양념처럼 넣는 걸 말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POINT 단어의 T에 해당한다. T는 영어로 thought로 우리말로는 생각이다. 이것이 첫 번째 P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머니에 대한 것’을 쓸 때 순유 너만의 생각을 적어 넣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말할수록 사람들은 독창적이라고 해서 더 많은 점수를 준다. 글을 잘 썼다고 칭찬을 한다는 거지.


순유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뭘까. 그날 분명히 순유는 어머니에 대해서 자기가 느낀 것을 썼을 거야. 할아버지가 한번 상상해 볼까. 어머니는 겨울 밤에 날리는 흰 눈이라고 느꼈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눈은 조용히 내리면서도 한없이 포근하게 덮어 주거든. 또는 지난 달에 피었던 벚꽃이라고 할 것도 같은데. 어머니는 말을 안 해도 언제나 방긋 웃어주니까. 아니 할아버지 집에 있는 ‘아이코’와 같다는 생각도 드네. 아이코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밥도 주고 싶고 뭔가 안아주고 싶으니까. 하여튼 이런 식으로 네가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쓰는 거야.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남은 게 있어. 그것은 제목 붙이기이다. 이것은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중요해. 왜냐하면 사람들이 누군가 쓴 글을 보려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제목이거든. 제목이 근사하면 흥미가 당겨서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제목이 너무 평범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도 눈길을 안 주니까 말이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도 마찬가지야. 겉 모양을 이쁘게 해놓아야지 사람의 손이 가지 아무리 맛있는 과자라도 모양이랑 장식이 꼬죄죄하면 누가 사먹으려 하겠니.


제목은 P를 생각하면 돼. P가 뭐였지. 핵심 문장이었잖아. 그 핵심 문장을 줄이면 제목이 되는 거야. 예를 들어 볼까. 아까 앞에서 핵심 문장이 ‘나의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보초를 서신다’였지. 이 문장을 줄이면 이렇게 된다. ‘보초 서시는 어머니’ 이게 바로 순유가 백일장에서 쓴 글의 제목이 될 수도 있단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면 돼. 물론 이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지만 우선은 이렇게 알아 두면 돼.


자, 그러면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준 POINT를 가지고 작문을 한 번 해보겠다. 할아버지에게도 어머니가 계셨단다. 지금은 물론 돌아가셔 안 계시지만 네게는 증조 할머니이며 할아버지에게는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지. 그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두 살 때 저 북한에서 등에 엎고 남한으로 피난을 왔단다.


P(핵심 문장) 나의 이마를 방공호 벽에 부딪치게 해서 생긴 그 혹이 평생 어머니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O(대상) 어머니는 스무 살의 나이에 나를 업고 임진강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강은 이미 얼어서 달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인민군들이 듬성듬성 지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인민군이 있나 없나 살피자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왔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정답기보다 무서웠습니다. 혹시나 자던 인민군이 일어날까 봐 그랬습니다. 어머니 등에서 자고 있던 내가 깨어서 울기라도 하면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어쩌면 끌려가서 죽을지도 몰랐습니다.


이남으로 내려가다가 하늘에서 쌕쌕이 소리가 나면 피난민들은 모두 방공호로 달려가서 숨었습니다. 그날 쌕쌕이가 남쪽 하늘에서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달려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방공호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만 방공호의 둥근 벽에 이마를 찧었습니다. 나는 악 소리를 내고는 숨을 쉬지 않고 숨을 멈췄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죽은 줄 알고 포대기를 풀고 나를 가슴 속에 안았습니다. 그제서야 앙 하면서 터지는 울음 소리에 안도하면서도 어머니의 눈에는 나의 이마에 밤알만한 혹을 보고 소리를 죽여가며 우셨습니다.


I(배경) 달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서 빛을 조금 비추어 주었습니다. 강가의 겨울 바람이 가슴 속으로 마구 파고 들어오면서 얼굴을 짓이겨 놓아서 입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터진지도 일 년이 넘는데도 아버지에게서는 소식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얼마 안 가서 남한이 망할 거라고 했습니다.


N(새로운 것) 나의 나이가 이제 칠순을 바라보니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와 만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의 자식과 손주들 이들과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T(생각) 나이가 칠순이 다 되어도 나의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어린아이가 되는 느낌입니다. 중학교 때인가 국민학교 때인가 방에 누워서 어머니가 피난 오시던 얘기를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기름 등불 아래서-그 당시는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깊어가는 밤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듣다가 잠든 적이 있었지만 언제나 내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임진강의 바람 소리와 어머니가 신발에 새끼줄을 칭칭 감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그때 업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내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아침에 등교하다가 부엌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부엌의 연탄불에 ‘유단보’를 얹어놓고 물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전쟁의 끝이어서 ‘유단보’를 군대에서 탄약을 담는 네모난 쇠로 된 통을 사다가 썼습니다. 거기다 물을 붓고 데워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나는 무심결에 그 탄약통의 뚜껑을 열자 끓고 있던 물의 수증기가 튀어 올라 내 얼굴을 온통 뒤덮었던 것입니다. 나는 얼굴에 화상을 입고 초량의 성분도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내 얼굴은 완전히 흰 붕대로 감겨 있었고 나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매일 우셨습니다. 내가 장님이 되면 어떻게 하냐고. 나는 너무 어려서인지 장님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났습니다. 일주일이 되어 붕대를 풀었습니다. 내 얼굴에서 얇은 쥐포 같은 죽은 피부가 떨어져 나가는데 나는 나를 울면서 쳐다보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제목짓기→핵심 문장 : 나의 이마를 방공호 벽에 부딪치게 해서 생긴 그 혹이 평생 어머니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간추리기→어머니의 가슴 속에 남은 이마의 혹


순유야, 하지만 글을 쓰는데 P, O, I, N, T의 순서대로는 쓸 수 없는 거야. 마치 비빔밥 같다고 할까. 비빔밥도 처음에는 그릇 속에 밥이 따로 있고, 콩나물, 시금치, 소고기 다진 것, 계란이 다 따로 따로 있지만 먹으려고 하면 그것들을 비비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붓고 맛있게 먹는 것 아니겠니. 글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POINT 순서대로 쓰지는 않지만 그런 얼개는 가지고 있어야 해.


순유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네. 할아버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요.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그러면 순유를 위해서 더 줄여보자. 할아버지 생각에는 세 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POT. 다시 말해 핵심문장, 대상, 생각. 요것만 갖고 있다면 조금은 수월해지겠지. I와 N은 나중에 더 훈련이 되면 고려해 보기로 하자. 순유야 잊지 말 것. POT. 팟(POT)의 뜻이 뭘까. 항아리, 순유의 글쓰기를 위한 보물 항아리다.


할아버지가 어쩌면 너무 욕심을 내어서 순유에게 글쓰기의 공식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한 말을 한꺼번에 다 이해하려고는 하지 말고 네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네 것으로 가져가도 된다. 아니 단지 글쓰기의 길잡이로 POINT 혹은 POT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만 있어도 될 것이다. 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가면서 이 내용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언젠가는 순유하고 헤어질 날이 올 거야. 그때가 되어 할아버지가 이렇게 글을 쓰라고 이야기해 줬지 하고 기억해 준다면 할아버지는 기뻐할 것 같다. 혹시 어려운 말이나 뒤에 나오는 할아버지에 관한 글짓기는 어머니한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렴.


할아버지는 순유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할머니보다는 별로 친하게 대하지 않아서 어떤 때는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순유가 할아버지 마음을 알아주리라고 믿는다. 너는 우리 집안의 종손(대를 이을 맏손자)이므로 네게는 보이지 않는 책임이 있는 줄을 아직은 모를 게다. 그걸 알 때쯤이면 할아버지는 순유하고 이미 이별을 했을 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네게 지어준 이름 순박할 순, 졸참나무 유, 순박하게 자신을 지키면서 하늘을 향해 꿋꿋이 자라가는 졸참나무가 되길 할아버지는 빈다. 순유야 네가 이번 축구 시합에서 골키퍼를 했다며. 세상의 어려움을 잘 막아내면서 너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순유가 되길 할아버지는 기도할게.


순유를 보면서 항상 기쁘고 안도하는 것은 성실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성품이지. 이제 어린아이로서 시작이니까 아직은 뭐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오랜 세월을 지낸 할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그 성실함에 더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평생에 걸쳐서 오로지 성실이라는 첫마음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세상 살다보면 첫마음을 평생 지켜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순유가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리라 믿고 또 그러길 바라고 그렇게 되길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게.

너무 많은 내용을 얘기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네. 순유야 할아버지를 기억해 줘.




2015년 5월 20일 밤에

순유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언제나 품에 안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