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보내는 편지(11)
글쓰기는 ‘모티브‘에서 상상과 발견으로
순유 순규야, 편지 쓰기도 2020년의 마지막이 되는구나. 횟수로는 21번째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계속 글쓰기에 대해 쓰게 되었다. 어쩌면 순유는 그런대로 이해할지 몰라도 순규, 서윤, 서우에게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편지를 좀 더 커서 읽어보면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이번에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의 총정리를 말하려고 한다. 이해하는 데까지만 이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읽어주기 바란다.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순서
1 모티브(motive)
모티브는 동기(動機)라고 하는데 그 뜻은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이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예를 들어 낙엽이 떨어진다든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을 때 갑자기 어떤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을 글로 써야겠다는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말한다. 순유 너의 글에서 한번 보자. 피아노가 아이들을 웃기게 한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가고 그걸 글로 써야지 했다면 그게 바로 글쓰기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2 발견(discovery)과 상상(imagination)
글을 쓰는 모티브가 생겼다면 그것을 상상하여 그 안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한다. 발견하면서 상상하기도 하고 상상하면서 나중에 발견하기도 한다. 발견이란 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나만의 통찰력(insight)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상상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하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내가 말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을 영화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9년 12월 말에 우리 집안 식구들이 해운대에서 하룻밤을 잔 일이 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나는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다. 캄캄한 밤에 별이 노랗게 반짝였다. 이 별을 보자 갑자기 나는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너희에게는 증조할머니다)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이걸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티브는 노란별이 출렁거림이었다. 그다음에는 상상을 해야 한다. 이것을 그저 해운대 밤하늘에 있는 별과 밤과 바다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쓰면 안 된다.(꼭 그런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써도 그 덩어리 전체가 은유로 만들 때는 유효 하지만 그것은 너희들에게는 나중 일이고)
상상을 하면서 글을 전개해 나간다. 상상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는 은 유야말로 상상하기 제일 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상상이 하나의 포커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모아져야 한다. 이것을 내가 ‘시적 통일성’이라고 했지. 렌즈의 포커스로 모은 것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주제 즉 발견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하 면 나의 어머니가 그리워서 내가 눈물이 나는 것을 직설적으로 쓰지 않고 ‘해운대 해변의 차디찬 새벽 바람을 가로지르면서/따라온 노란별,/윤곽이 허물어져 출렁거렸습니다’라고 에 둘러서 말했다.
3 표현(expression)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이제는 연필로, 타자기 키보드로 실제로 표현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순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릴 수도 있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상상이 되고 나아가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작업은 따로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같이 작동한다고 보아야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머릿속에 있어도 실제로 원고지에 나타나야 한다. 실제로 연필로 써보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표현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많이 써봐야 한다는 말이다. 백 미터 뛰기 선수가 아무리 이렇게 뛰어야지 하고 작전을 가지고 있어도 자꾸 뛰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표현하면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다.
①문장이 짧은 것으로 계속 되면 문장이 긴 것도 적어놓는다. 긴 문장이 계속되면 문장을 짧게도 한다. 이것은 무얼 말하느냐 하면 리듬이다. 산문도 리듬이 있어야 한다.
②같은 단어를 될 수 있는 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같은 단어를 꼭 써야 하면 사전을 찾아서 비슷한 단어를 골라서 사용한다.
③접속사를 쓰는데 주의해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는 쓴다.
④은유를 많이 구사한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상상이므로 이 은유를 쓴다는 것은 이 글 쓰는 사람이 많은 생각을 했다는 증좌이다.
⑤산문인 경우는 적어도 A4용지 한 장 이상이 되게 하고, 시의 경우는 15행에서 20행이 되도록 한다.
4 고쳐쓰기(revising)
고쳐쓰기는 말처럼 하기는 쉽지 않다. 한 작품을 끝내놓고 나면 대개는 자기 나름으로 만족 하고 더는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고쳐쓰기에서 진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조각가나 미 술가가 한번 그리거나 한 번 만든 조각을 그냥 작품으로 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물감을 더 입히고 조각상을 가지고 다시 끌로 다듬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진술로 된 것을 이렇게 은유를 하면 더 좋겠구나, 이 접속사는 필요 없는데, 아, 여기 같은 말을 반복했는데, 음 이 문장은 주어가 이상한데, 문장의 구조가 잘못됐구나, 이 문장은 무 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빼어버리자, .. 등등 고쳐쓰기 하면서 자기가 쓴 글을 완성해 가야 한다.
5 나의 글쓰기 연습하기
내가 글쓰기 연습하는 것을 참고해라. 어디까지 참고! 물론 이것이 정통적인 모범을 아닐 것이다 나 나름으로 하는 것이다.
①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베껴쓰기를 한다. 송재학의 ‘튤립에게 물어보라’ 허만하의 ‘얼음’과 ‘물결에 대하여’ 이 세 가지 시는 오늘로서 98번 썼다. 나는 한 가지 시를 백 번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험적으로 해봤다. 그 결과 이제는 보지 않고도 쓸 수가 있다. 모르긴 해도 이것이 시를 쓰는데 나도 모르게 어떤 작동을 할 것이라고 본다.
②또 아침에 오면 ‘세 장면 글쓰기’(내가 만든 용어이다)의 베껴쓰기를 한다. 이건 늦게 시작해서 오늘로써 18번째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자세히 말하겠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밀묘사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마신다고 하면 우리는 대개 이렇게 쓸 것이다. ‘그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다.’라고 말이다. 이것을 세밀하게 세 장면을 나누어서 쓰는 것이다. 동전을 집어넣을 때, 스위치를 누를 때,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컵을 뽑아들 때, 커피를 마실 때를 나누어서 글을 쓴다. 그냥 ‘그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다.’라고 할 것을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것도 산문을 쓸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③시쓰기, 수필쓰기, 독후감 쓰기를 때때로 한다.
④‘말도 안 되는 소리하기’의 연습을 한다. 이건 어디에도 없고 내가 고안해낸 것이다.
세잔과 이수동의 그림을 가지고 내 나름으로 상상하여 글을 써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실효가 있는지 나도 잘 모른다. 막연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하며 나중에 그것을 적당한 제목을 고르면 한 편의 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⑤마지막으로 나는 퇴근하기 40분 전쯤에 김훈이 쓴 ‘자전거 여행’이라는 수필집을 베껴쓰기하고 집으로 간다. 김훈은 원래 한국일보 등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소설을 써서 성공하였지. 묘하게도 이 사람은 나하고 나이가 똑같애. 그의 이 수필을 보면 은유가 굉장히 많다. 다시 말해 사물을 그냥 보이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한번 사유하고(대상을 두루 생 각하다) 나서 글을 쓴다. 이렇게 수필에 은유를 많이 사용하는 작가를 나는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베껴쓰기를 한다. 지난 2월부터 시작했으니 9개월이 되었나. 이렇게 베껴쓰기를 한 효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딱히 댈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 예전보다 작문을 하는 것이 유연하게(부드럽고 연하다) 흘러간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끼고 이것은 베껴쓰기의 덕분이 아닌가 하고 막연히 짐작한다.
6 순유, 순규, 서윤, 서우는 각자 개성이 있을 것이다. 누구는 글쓰는 것이 좋을 것이고 누구는 성격적으로 도저히 맞지 않을 수가 있다.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다만 너희들은 어리니까 그것을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조금은 강제적이지만 억압적을 시킬 수밖에 없다. 아마도 너희들이 중학교 고학년이나 고등학교에 갈 때쯤이면 그것이 판정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힘들더라도 같이 노력하면서 글쓰기를 해보자.
7 내가 글쓰기 한 것을 첨부할 테니까 참고하기 바란다.
①시쓰기 실제 모습:「꽉찬 적요」
②수필:「차창 속의 단상들」
③독후감:『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④말도 안 되는 소리하기 :「푸른 모자의 남자」세잔/ 「오늘, 수고했어요」이수동
⑤베껴쓰기:「튤립에게 물어보라」송재학/ 「얼음」, 「물결에 대하여」허만하/『자전거 여행』김훈
그럼 바이.
2020년 12월 30일
진주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