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30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12)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 (17)

사물의 본질 찾기



잘 있었니. 순유는 이번에 영어 학원에서 시험 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하더라. 축하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네가 이렇게 공부 잘 할 줄은 잘 몰랐어^^ 순규도 형을 따라 곧잘 하더라. 순유와 순규는 지난 8월 14일 진주로 놀러와서 할아버지와 함께 특강을 할 때 순유가 강의에 집중하는 게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시 강의를 하다 보니 시에 대해서 좀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이번 편지는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이건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건데 순규와 서윤이도 덩달아서 형과 함께 해 보자.

시를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단다. 내가 말하는 방법으로만 써야 하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은 사실적으로 쓰기도 하고, 풍자하기도 하고, 말장난을 하기도 하고, 서술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주로 하는 것이 주류(main stream)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의 이미지를 주로 하는 시의 원조는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와 영국의 시인 T.E. 흄(Thomas Ernest Hulme 1883-1917)이다. 에즈라 파운드의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다.


‘군중(群衆)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Petals on a wet, black bough.)


지하철에서 군중들의 얼굴이 유령 같고 나뭇가지 위의 젖은 꽃잎 같다고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단다.


T.E. 흄의 「가을」이라는 시는 보자.


‘가을밤의 싸늘한 감촉 ㅡ/나는 바깥을 거닐다가 보았다 불그스름한 달이 산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을/붉은 얼굴의 농부처럼.’


달의 이미지를 붉은 얼굴의 농부라고 비유하고 있단다. 이 시들이 이미지를 주로 하는 시들의 원조인 셈이니까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송재학 시인의 「튤립에게 물어보라」라는 시를 가지고 너희들도 송재학이라는 시인이 시를 지은 그 맥락을 따라 흉내내어 봄으로써 시를 이렇게 짓는구나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송재학 시인의 시를 분석해보자.


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 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 물어 보라.


송재학이 본 사물(여기서는 튤립이지. 나중에 이것은 관념이 될 수도 있다)에서 그 본질(혹은 특징)이 무엇인가 찾아보자. 세 가지인 것을 알 수 있다. 송재학은 튤립을 보고 모차르트, 리아스식 해안, 등대를 찾아내었다.

1) 모차르트

송재학은 왜 튤립을 모차르트라고 생각했을까. 모차르트 음악은 순수하고 경쾌하고 하늘나라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송재학은 튤립꽃을 보자 모차르트를 연상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송재학은 이 모차르트라는 특징(본질)을 가지고 이것을 위에서 말한 에즈라 파운드, T.E. 흄처럼 이미지(그림)으로 나타내었다. 송재학은 이것을 세 가지로 표현했어.

①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②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③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①번을 보자. 튤립꽃을 사는 사람은 튤립꽃이 모차르트처럼 순수하고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받으니까 그 꽃을 산다고 송재학은 생각한 것이지.

②번에서는 튤립은 모차르트이다라는 A=B의 은유를 약간 비틀어서 표현한 것이다.

③번을 보면, 여기서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란 송재학이 사춘기 시절에 방황하면서 이리저리 걷던 길을 말하는데 그럴 때도 송재학은 모차르트 즉 튤립꽃을 가슴 속에 품고 있어서 자기 가 가는 길이 환했다는 것이다.


2)리아스식 해안

송재학은 튤립꽃의 맨 위의 모양이 톱니바퀴처럼 요철이 있는 것을 보고 리아스식 해안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 리아스식 해안은 자신의 사춘기 시절의 불안정했던 마음을 말해주는 것이야. 그것을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했는가 보자.

①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②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①번을 보면 송재학의 사춘기의 심정이 리아스식 해안 같았는데 그 사춘기는 바로 튤립꽃의 모양과 같다는 것이지.

②번에서는 송재학의 몸 안에 있는 그 불안정한 마음에서 사춘기의 마음의 상처가 시작되었다 고 말하고 있다.


3) 등대

송재학은 튤립꽃을 등대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튤립은 등대처럼 생겼다. 이것을 송재학이 이미지로 나타낸 것을 보자.

①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②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①튤립꽃이 붉게 빛나는 것이 마치 등대의 불과 같이 보인단다.

②그 튤립의 둥근 불빛이 송재학의 입을 지나 송재학의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튤립꽃이 등대불을 밝히듯이 환했다는 것이지.


이제껏은 몸풀기이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쓰기에 돌입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순유가 본 사물(튤립)의 본질은 세 가지였다. 열정, 막대 사탕, 기지개였다. 문제는 이 세 가지를 송재학이 모차르트, 리아스식 해안, 등대의 세 가지 본질을 가지고 이미지화시켰듯이 순유는 어떻게 그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이다.


자, 우선 1)번 열정을 검토해 보자. 여기서 송재학처럼 세 가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면 된다.할아버지가 열정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이렇게 나오더라. 열정은 뜨거운 애정(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튤립은 열중하는 마음이다. 열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그림)은 무엇이 있을까? 송재학처럼 세 가지 정도 찾아보자.

①우선 내게 떠오른 열정적인 그림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었어. 베토벤은 귀도 들리지 않으니까 피아노를 친다면 열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이래서 이렇게 썼다.

⇒베토벤은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다.

이걸 튤립과 연결이 되게 고쳐 써야겠지. ⇒튤립에 비 떨어지는 소리 들리면 베토벤이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을 알 수 있다.

②그 다음에 또 열정의 이미지로 무엇이 있을까? 백미터 올림픽 신기록자인 우사인 볼트가 달리는 모습이 있다. 이걸 이렇게 써본다.

⇒우사인 볼트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③마지막으로는 꿀벌이 꿀을 빨 때는 정말 열중해서 누가 와도 모를 것이다.

⇒품안에 안긴 꿀벌이 빨아당기는 것은 자기 정신이다.


2) 막대 사탕

막대 사탕은 송재학의 경우라면 등대와도 같아 보인다. 이것도 열정 같은 방식으로 진행시킨다.

①⇒튤립은 막대사탕처럼 모가지가 가늘다

②⇒막대 사탕의 둥근 맛이 내 목젖을 딛고 지나간다.


3)기지개

이것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①⇒꽃잎이 팔들을 모두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②⇒기지개 켠 팔들 안으로 몽롱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간다.

자, 대충 이렇게 이미지를 잡고 순유의 시를 정리해보자.


「튤립」

김순유


튤립에 비 떨어지는 소리 들리면 베토벤이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사인 볼트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품안에 안긴 꿀벌이 빨아당기는 것은 자기 정신이다

튤립은 막대사탕처럼 모가지가 가늘다

둥근 맛이 내 목젖을 딛고 지나간다

꽃잎이 팔들을 모두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지개 켠 팔들 안으로 몽롱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간다


정리해 볼까. 뭔가 이미지를 그리고 있지만 서로의 이미지가 연결이 부족하지. 그건 어쩔 수가 없어. 당연히 시를 쓸 때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쓸 수는 없어. 단지 나는 너희들이 알아듣기 쉬우라고 하나하나 분석한 것뿐이다.


이런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야 해. 그것을 ‘시적 이미지의 통일성’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어야 무언가 의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는 없고 자꾸 써서 익숙해져서 자신이 그 감을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행들 사이 사이에 설명하는 진술 같은 것을 넣을 수도 있다. 송재학도 그랬지. ‘튤립, 어릴 때 처음 알았던 꽃’ 이건 이미지는 아니고 단지 설명이야. 이런 것도 많지는 않지만 집어넣어서 서로 연결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시에서는 문장이 끝나면 마침표(.)를 찍는 사람도 있으나 안 찍는 사람이 더 많아. 송재학도 그랬고.


시의 행수는 대개는 15행 내지 20행 정도면 좋고 특별한 경우는 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단다. 송재학의 이 시는 14행이네.


다음에 우리 순규가 본 사물(튤립)의 본질은 세 가지로 말했다. 사랑, 입 벌리고 있는 상어, 심장이 그것이다. 어떻게 이미지에 접근하느냐는 순유의 예를 참고하고 그 결과만 적기로 한다.

1)사랑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런 이미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①⇒엄마의 손이 다가오면 튤립꽃처럼 붉다

②⇒봉봉이가 나를 핥는 혀에서는 붉은 꽃잎의 숨소리가 들린다

③⇒할머니에게 안기면 내 몸에 붉은 등이 켜진다


2)입을 벌리고 있는 상어

야! 이건 기발하긴 한데 적절한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①⇒튤립은 입을 벌리고 물밖에 나와 숨을 푸우 쉬고 있다

②⇒내가 받아먹고 싶은 것은 이슬이 아니라 별빛이다


3)심장

①⇒아픈 심장처럼 튀는 내 속에 불을 켠다

②⇒파도가 지나가면 스러지는 모래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자, 대충 이렇게 이미지를 잡고 순규의 시를 정리해보자.


「튤립」

김순규


엄마의 손이 다가오면 튤립꽃처럼 붉다

봉봉이가 나를 핥는 혀에서는 붉은 꽃잎의 숨소리가 들린다

할머니에게 안기면 내 몸에 붉은 등이 켜진다

튤립은 입을 벌리고 물밖에 나와 숨을 푸우 쉬고 있다

내가 받아먹고 싶은 것은 이슬이 아니라 별빛이다

아픈 심장처럼 튀는 내 속에 불을 켠다

파도가 지나가면 스러지는 모래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순유처럼 서로 연결되게 잔손질하는 것은 순규에게 맡긴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있는 우리 아가씨 서윤이 차례네. 서윤이가 본 사물(튤립)의 본질 세 가지는 방울 머리핀, 향수, 비눗방울이라고 서윤이 아빠가 카톡으로 보내줬다. 서윤이는 구체적인 사물을 보여줬다. 송재학이 튤립에서 리아스식 해안이나 등대를 발견했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송재학 식으로 접근하면 되겠지.

1)방울 머리핀

①⇒튤립은 내 머리 뒤에 묶으면 방울 소리가 난다

그 다음 것은 생각이 잘 안 나네. 이럴 때 내가 써먹는 게 있다. 바로 ‘말도 안 되는 소리하기’이다. 이것은 최근에 내가 발견한 것인데 심하게 말하면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가 부력을 발견하고 “유레카(Eureka)"라고 소리지른 것에 비교할 만 하지. 나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고 하면 맥히는 게 없어지고 용기가 난단다. 왜냐하면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로 작정했으니 말이 안 되도 틀린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②⇒튤립의 소리가 내 안에 들어와 파도가 되었다

③⇒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묶는 것은 엄마의 손길이다


2)향수

①⇒뛰쳐나가려는 향수를 튤립은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다

②⇒향수는 튤립의 불을 밝힌다


3)비눗방울

①⇒하늘로 둥실 떠다는 비눗방울은 튜립의 그리움이다

②⇒가슴 속에 간직한 무지개색이 반짝이는 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자, 대충 이렇게 이미지를 잡고 서윤의 시를 정리해보자.(할아버지 머리가 뽀개질 것 같다ㅠ)


「튤립」

김서윤


튤립은 내 머리 뒤에 묶으면 방울 소리가 난다

튤립의 소리가 내 안에 들어와 파도가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묶는 것은 엄마의 손길이다

뛰쳐나가려는 향수를 튤립은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다

향수는 튤립의 불을 밝힌다

하늘로 둥실 떠다는 비눗방울은 튤립의 그리움이다

가슴 속에 간직한 무지개색이 반짝이는 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란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렇게 분석하는 건 아니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쓰는 것이고 정 안 되면 이런 식으로라도 하는 것이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쓴 것이 있는데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야.


「튤립」

김명서


풀무로 형상화하고 화로 속에서 사유한

붉은 쇠덩이 하나

누군가 두드리는 무게에 몸은 노랗다가

치자빛으로 바뀌자 향기가 자욱하다

물결 같은 너울이 발간 꽃잎을 감싸고

곧은 줄기 위에 생명을 납부하다


할아버지는 튤립을 대장간에서 벌건 쇳덩이를 두드릴 때의 모습을 연상했단다. 아직 미완성 작품이다. 내가 예를 들어주었다만 이해가 될는지 나도 확신은 없지만 비록 지금 이해 못하더라도 나중에 나이를 더 먹으면 알 수도 있겠지.


나의 시쓰기의 비결을 굳이 말한다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단다.

1 사물(관념)의 본질 찾기

2 ‘말도 안 되는 소리하기’

3 사물에 대한 접근: 이건 어려운 얘긴데 들어는 두어라. 사물이라면 순유는 막대사탕, 순규는 상어 입, 심장, 서윤이는 방울 머리핀, 비눗방울에 해당한다. 이런 사물을 생각할 때 5가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할아버지도 잘 안 돼) ①사물의 외면: 이건 누구나 잘 생각하지. ②사물의 내면: 막대사탕은 내면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상상하는 거지. ③감정이입: 막대사탕이 슬프다, 기뻐한다, 운다, 등 감정을 넣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④사물의 둘레에 있는 사물과의 관계: 막대사탕이 있다면 그 옆에 있는 사물도 생각하는 것이다. ⑤사물의 영혼, 영원을 말하는데 이건 좀 어렵긴 한데 이런 게 있다는 기억을 해둬라.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일본의 사토.. 가 얘기한 거야.


긴 편지 읽느라고 수고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책 읽고 열심히 쓰기 바란다

바이.




2020.8.27. 목요일

진주에서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