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가르치는 글쓰기』-31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13)

by 현목

순유 순규에게 (25)

수필은 자신의 경험의 나열이 아니다



순유, 순규야 COVID-19 때문에 제대로 학교생활을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특히 순유는 중학생 생활을 경험하고 고등학교에 가는 건지 염려가 된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도 사귀고 해야 할 것인데 세월이 험하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만.


이번에는 지난 번에 말했듯이 수필에 대해 이야기 할 게. 수필의 원조는 프랑스의 미셸 몽테뉴(1533년~1592년)라고 한다. 그의 유명한 저작이 『수상록』이라고 하니 기억해 둘 만하다.


수필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수필(隨筆)은 한자를 보면 ‘따를’ 수에 ‘붓’ 필로 되어 있다. 글자 그대로 붓가는 대로 쓰는 글쓰기라는 뜻이 된다. 수필에는 경수필(가벼울 경)과 중수필(무거울 중)이 있다. 중수필은 ‘주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수필’이라고 한다. 논술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수필은 에세이(essay)라고 하는 것은 잘 알 테지. 서양에서는 에세이라고 하면 중수필 쪽을 주로 얘기하고, 우리나라 같은 동양은 아마도 수필하면 경수필을 주로 지칭하는 것 같다.


내가 수필을 쓰기 위한 다섯 가지 체크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른바 ‘다섯 체크리스트 플러스 원’이다.

첫째가 경험이다. 수필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은 체험이 소재가 된다. 소설은 자기가 체험한 것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허구(fiction)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수필을 자신의 경험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어야 하고 거짓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지난번에 순유가 진주와 갈모봉을 갔을 때 얘기를 수필로 썼듯이 순유가 경험한 것이 소재가 된다.


둘째는 구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필, 특히 경수필은 소설처럼 도입-전개-위기-절정-대단원의 구조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드시 시처럼 기승전결(기는 시를 시작하는 부분, 승은 그것을 이어받아 전개하는 부분, 전은 시의[시가 포함하고 있는 뜻]를 한 번 돌리어 전환하는 부분, 결은 전체 시의(詩意)를 끝맺는 부분이다)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구성의 형식을 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경험한 것을 이것 저것 마구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이 이 수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맞는 소재만을 골라서 써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글에 일관성(통일성)이 있다고 한다.


셋째는 문장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문체(style of writing)이 다 똑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보이는 대로 진술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왠지 감상적(sentimental)으로 쓰고 또 어떤 사람은 관념적(abstract)으로 쓴다.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은유를 많이 구사하는 김훈 작가를 더 좋아한다. 너희도 알겠지만 은유는 그냥 보이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한 번 더 상상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글을 읽는데 긴장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긴장하고 다시 생각한다는 말이다.


넷째는 자신이 쓴 글에 관점, 깨달음. 통찰,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 모른다. 이게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셈이고 포커스가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관점이 없는 이런 수필을 ‘체험의 기록물‘ 혹은 신변잡기(身邊雜記/memoirs on one's private life)라고 한다. 수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겪은 체험을 줄줄이 쓰고는 이게 나의 수필이라고 자랑하는 셈이다.


지난번에 순유가 쓴 「갈모봉의 정수리」의 경우를 보면, 그냥 거기 갔다온 얘기만을 나열하지 말고 그때 순유가 솔방울을 주운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머릿속에서 잘 생각해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은유이다. 순규도 마찬가지이다. 「368미터의 키」에서 산을 오를 때, 달리기한 것, 밥 먹은 것만 쓰면 그게 신변잡기가 된다. 그때 순규가 돌쌓기를 한 것을 가지고 내가 지금 있는 것은 이 돌쌓기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형이 나를 밀어주어 내가 있구나 하는 의미 부여를 하면 훌륭한 한 편의 수필이 되는 것이다.


다섯째는 서두와 결미가 되겠다. 서두(제목도 마찬가지지만)는 읽는 이가 호기심, 흥미를 가지도록 일부러 미끼는 던져야 한다. 대부분은 서두(beginning)를 아무 생각없이 쓴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나는 이제부터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밥을 맛있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식으로 결미( the close)를 쓰는 것은 특히 초등학생들이 잘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단정적으로 끝내는 것이 닫힌 결말(closed ending)이다. 반면 열린 결말(open ending)은 무언가 글쓴이가 할 말을 다하지 않고 여운을 남기기 때문에 읽는 이가 무언가 음미(tasting)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플러스 원‘은 고쳐쓰기이다. 여기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갈림길이다. 아마추어는 대부분 한 번 쓰고는 끝이다. 하지만 프로는 몇십 번이고 고쳐 쓴다. 이것은 나도 잘 못한다. 기껏해야 서너 번 고쳐쓰기 하면 잘 하는 편이다.


고쳐쓰기 할 때 주의점은 몇 가지 있다. 우선 맞춤법이 맞는지, 문장부호가 옳게 찍혀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다음에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올바른지 체크해야 한다. 술어에 엉뚱한 주어가 붙어있으면 그걸 비문(非文)(nonsentence)라고 한다. 초심자일수록 이런 짓을 잘 하지. 자신이 쓴 주제 맞지 않는 것은 글 전체의 일관성을 위해 자신이 보아서 아까운 문장, 문단이라도 버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유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서 과감히 수정한다. 은유의 중요성은 하도 말을 많이 해서 말 안 해도 벌써 짐작하리라 믿는다.


이번에는 수필에 대해서 이 정도로 말하고 다음에는 논술에 대해 내가 생각한 것을 이야기할 게. 그 동안 내가 보내준 『논술의 정석』을 꼭 다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논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오늘은 이만 총총



2021년 4월 25일 일요일 오후 11시 16분

진주에서

할아버지가,


추서: 내가 지난 3월 초에 보낸 『그렇다면, 칸트를 추천합니다』를 꼭 읽어주기 바란다. 어려우면 내년에 읽는 한이 있더라도. 너무 중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