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상상력과 체험
요즈음 와서 나이가 있어서인지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묻게 된다. 맹세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감명을 받아 의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이 나중에 ‘먹고 사는 데 큰 지장 없으라’고 정해준 길을 별로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그대로 따랐다. 부모님의 예견이 맞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내 의사와는 별로 상관없이 개업 전선으로 들어오고야 말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업은 엄밀히 말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장사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적인 상식선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돈을 벌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간혹 그런 사람을 신문 지상에서 발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장사에는 소위 수완이 필요하다. 환자가 자주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해야 한다. 그것은 꼭 의술만은 아니다. 그것을 유추하려면 잘된다는 백화점이나 상점이 하는 식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내가 나를 판단하면 그쪽 방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성공(?)한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선생이든 교수든 가르치는 일을 시키면 그런대로 해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보고 무언가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전하는 일, 혹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구 논문을 쓴다면 비록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꽤 잘 성취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 때는 상상으로―아무리 상상해도 상상은 돈드는 일은 아니므로―영문학 교수를 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아직도 초등학교라고 부르면 나와는 상관없는 학교 같다―시절 외가로 당숙 되는 분이 경남 중학교에 다녔는데 그가 백일장에 장원을 하고서 신문에 난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시에 관해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월요일마다 전체 학생들이 운동장에 조례로 모여 교장 선생님 훈시를 듣고 때로는 외부에서 백일장에 장원한 학생이 있으면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런 학생이 대단한 존재로 여겨졌다.
내 기억에 최초로 글을 써서 자신이 흥분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나도 모르게 시라고―그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지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고 그저 행갈이를 해서 시의 형식만 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왔다갔다 하며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대학 간다고 다 잊어버렸다.
대학에 입학하여 시를 쓰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라면 운명이겠다. 북아현동에 집을 얻어 살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선배인 K의 하숙집도 그 근처였다. 그런데 이 형이 시를 쓴다고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게도 그런 성향을 받아들일 바탕이 없었다면 그 후에 내게 벌어졌던 인생사를 다시 썼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의 시 문학 서클인 동인회에 그 선배와 같이 들어가서 끄적이다가 몇 편은 학교 신문에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오고 직업 전선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비록 욕심껏은 못 벌었지만 말이다. 이것도 우연이지만 2001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포엠토피아’란 시작법을 가르쳐준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보게 되었다. 희한하게도 거기에 신청하여 그곳과는 오늘날 현재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거기서 내 글쓰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두 분을 만났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시는 이화은 선생님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이기윤 육사 국문과 교수―나보다 5,6년 연배가 어렸지만―가 나를 이 길로 들어서게 한 결정적인 분이셨다.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제출한 시에 대해 진심으로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때의 시가 생각난다. 비록 졸작이지만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글이기도 하다.
흉부사진
알몸이 흑백으로 드러나 있다
연부 조직은 먼 산으로 물러나 있고
바람과 강물이 흐르고 있다
눈부신 하얀 늑골사이로
바람은 흩어져 나오고
폐포 잎잎이 떨고 있다
강물은 사행으로 돌아져 나가고
강변에 부딪히는 소리 아득하다
저 허공에 걸린 노아의 방주
그 골짜기에 내리는
흑백의 적막
그 후 3,4년간 쓴 시들을 모아서 자비로 『모호한 중심』이란 시집을 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 뜨겁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내 책을 한 권 가진다는 것에 얼마나 뿌듯함과 기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내 서명이 든 책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지금은 물론 그런 유치한(?) 짓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지만 말이다.
검도를 하면서 십여 년 운동하던 골프를 지금은 그만 두고 있다. 성격이 그런 걸 어쩔 수 없다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완벽주의의 발로인지 무언가 하려면 직접 부딪치는 것보다는 이론서를 더 많이 읽는다. 골프 필드에 나가는 것보다도 골프 이론서를 읽는데 투자한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이지만 글을 쓰면서 ‘참으로’ 많은 글쓰기 책을 읽었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가 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총론이라고 한다면 얼마 전에 그에 필적하는 각론에 해당하는 책을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 주디 리브스의 『365일 작가 연습』이란 책이 그것이다. 거기에 보면 글쓰기 훈련이란 항목이 나오는데 365일 매일 글쓰기를 위한 제목이 365가지가 있다. 그 제목을 가지고 강제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365일 글 제목을 쓰려고 시도하는 또 하나의 ‘모멘텀’은 앤 라모트의 『글쓰기 수업』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잡한 초고’에 겁먹지 말라고 격려를 한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초고로부터 두 번째의 훌륭한 원고가 태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 ‘조잡한 초고’에 대해 비록 불안과 의심이 들더라도 거기에는 틀림없이 당신의 진정한 상상력과 체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담겨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이것이 이 글을 쓰는 진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지만―누군가 나의 ‘조잡한 초고’를 기꺼이 읽어 줄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 나에게 진실을 말해 주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사람을 말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도 글로서 밥을 풍족히 먹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한다. 글쓰기는 글쓰기 자체가 보상해 주는 것이지 그것으로 떼부자 되는 일을 처음부터 기대할 것은 못된다. 생각을 달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