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발바닥
지난 일요일 11시에 무조건 집을 나섰다. 비봉산 옆을 지나 봉원 중학교를 지나는데 흐릿하던 날씨가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오늘 꼭 4시간을 걷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비해 비줄기는 약했다.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걷기로 했다. 봉원 중학교를 지나 오르막 길을 올라가는데 덤프트럭이 덮치듯이 지나가 버린다. 몸이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조금 지나니 길 가 집에 흙빛의 자주색 맨드라미꽃이 보인다. 몸을 있는 대로 뭉쳐서 보이는 그 투박함이 어린 시절 보던 맨드라미를 떠오르게 한다. 그 못생김마저 옛정을 느끼게 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가면서도 차가 많아 생각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가까이서 보이는 숲의 초록도 가만히 보면 그 사이 사이에 검은 어둠의 그림자가 베어 있다. 그런 존재가 새삼스럽게 나에게로 다가온다. 아무리 지나가도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다. 좀 쓸쓸하기는 하지만 더 나은 기분도 든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다. 할머니 둘이서 비 오는데도 천막을 치고 배를 팔고 있다. 후덕한 얼굴을 한 할머니가 말을 건다. 왜 차를 타고 가지 않느냐고. 웃으면서 차가 없습니다 오늘은, 하고 대답을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걷는 것이 차를 타는 것과 다른 안식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건강을 위해 걷는 사람쯤으로 보일테지.
반환점 집현 파출소 쯤에 오니 1시간 40분을 걸었다.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온다. 아까부터 보아온 ‘응꽃’ 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빗줄기는 출발 때보다 더 세어졌다. 합천 쪽으로 20분을 더 가서 명석으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차가 훨씬 덜한 길이 호젓해 보인다. 다음 일요일은 이 길을 걸어보리라고 생각하고 ‘응꽃’ 식당으로 돌아와 추어탕을 시켜 먹었다. 고사리와 배추가 듬뿍 들어간 것이 입에 하나 가득히 넘어간다.
식당을 나와 더 세어진 빗줄기에 갑자기 결심이 흔들린다. 택시라도 타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누르고 진주라고 쓰인 사인보드를 보고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누런 들녘에 사람은 없고 추수하지 않은 벼만 우두커니 나처럼 비를 맞고 있다. 차가 너무 많아 생각을 하기에는 적절하지가 않다. 오직 이 순간은 목표를 완수하겠다는 생각만이 내 등을 떠민다. 떠나온지 두 시간이 지나니 발이 아프기 시작하고 무겁다. 왼발의 네 번째 발가락이 물집이 생겼다. 신발도 이미 비에 흠뻑 젖어서 절벅거린다. 비 속에 지금 향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 몸도 마음도 가볍다.
말티고개를 지나 도시의 소음 속을 그저 목표를 완수해 간다는 조그만 기쁨에 몸이 자동으로 나가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나만의 사물에 대한 인식이 확인하는 시공간이다. 발이 대지에 닿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사유하는 것이다. 새로운 현장을 보고 살아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본다. 몸이 걸으면서 또 그 걷는 것이 생각을 일으키면서 몸이 살아 있는 시공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그 몸의 나른함, 피곤함도 묘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걸으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가 나를 쳐다보지 않지만, 나를 쳐다보는 내가 있다. 내가 걸어가는 나에게 말을 건다.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명확한 답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의식은 그 답을 몸으로 알아가는 중이다.
진주교회 앞을 지나 한주아파트 앞에 왔다. 다시 나의 잠자는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모두 4시간 40분 간의 반성의 걷기였다. 반성을 위한 반성이 아니고 몸이 자고 있던 나를 반성하고 몸이 침묵 속을 횡단하면서 나를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