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공모 낙선기

'후지게 쓸까봐 두려웠다'

by 현목

지난 10월 중순 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의식에 종이비행기처럼 날아들었습니다. 신춘문예가 시작되는 계절마다 응모를 피한 것은 내 민낯을 보기 두려워서였습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의 허위를 밝히는 것이기에 마음이 아플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낙선을 견딜만한 나이가 그것을 붙잡아 주겠지 하는 얄팍한 변명이 생겨났습니다. 만용도 이제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세월이 지난 셈입니다. 마침 시문학 강좌에서 가르침을 주시던 B선생님의 격려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산들바람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써놓았던 수십 편 중에서 열 편 정도가 그나마 난파선을 모면해서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12월 5일이 마감이라고 하니 그 동안 한 열 번쯤을 두드리고 박고 찢어진 데를 깁고 마침내 11월 말에 누런 서류 봉투에다가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이라고 붉은 깃발을 올리고는 우체국에 가서 B신문사로 흘려보냈습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심사가 구름처럼 땅 아래로 기다가 갑자기 산으로 오르기도 하고 편안해지다가는 내가 괜한 짓은 한 것은 아닌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그의 책 『다시 쓸 수 있을까』에서 74세에 글을 중단할까 한 고민은 차라리 달콤합니다. 그는 평생에 40권도 넘게 쓴 스웨덴 작가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지게 쓸까봐 두려웠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번쩍입니다. 72살에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자괴감이 보는 것은 황하의 누런 안개였습니다.


당선이 되면 대개 크리스마스 전에 연락이 온다는 인터넷의 글에 갑자기 멀미가 났습니다. 혹시라도 당선이 되면 어떻게 처신을 할까 하고 상상하면서도 은근히 나 같은 놈이 당선이 될 리가 있겠느냐고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실망에 대한 방어망을 미리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니 그래도 가작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이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낯선 나그네처럼 지나가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거렸습니다. 간혹 크리스마스가 지나서도 연락하는 수가 있다는 것은 이미 본전 다 떼인 노름꾼에 다름 없습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그럼 그렇지 하면서 무리한 처신이었다고 스스로 달래는 것은 바로 생명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한 합리화의 빈 나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내도 서울 가고 없는 혼자 방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은근히 부아가 스멀거리고 자글자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이십 년도 넘게 아니 대학 때부터 치면 오십 년 되는 시간 속에서 내 실력은 허접한 개울물 소리였구나. 내 이마에 붙은 ‘삼류 시인’이란 간판을 나만 몰랐나, 아니 눈길을 피한 거지. 내가 걸어온 일만 시간의 길에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깜박이고 있었다. 일만 시간을 투자해도 발목만 담그면 하 세월인 것을…… 몽유병 환자처럼 중얼거리는 입 속으로 ‘매실마을’이 쓰나미처럼 훑고 지나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지난밤에 속을 끓였던 기미는 내가 자는 동안 내린 비에 다 씻겨져 버리고 참새가 명랑하게 짹짹거리는 상쾌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늙어서 심사위원이 젊은이를 위해 배제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저 포도는 시다’라고 내뱉어 보니 낙선도 대수는 아니었습니다.


마침 읽으려고 사 놓았던 안데르스 에릭슨과 로버트 풀의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뿔사 내게 그렇게 열등감을 가져왔던 낙선의 이유가 그 속에 있었습니다. 에릭슨에 의하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목적의식이 있는 연습(purposeful practice) 내지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에 의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연습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나는 그러니까 무턱대고 쓴다고만 하였지 정교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말 많은 혼자의 연습시간의 고독한 내면으로 침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에릭슨 말대로 그럭저럭 괜찮은 테니스 플레이어에나 해당되고, 골프로 치면 90타대나 치면서 그저 즐기면서 필드에 나가는 꼴입니다.


에릭슨은 전문가가 되려면 위에서 말한 테니스 플레이어나 골퍼와 같은 컴포트 존(comfort zone)에서 나와서 목적의식이 있는 연습이나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의 좋은 예는 피아노나 바이얼린 혹은 체조를 배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좋은 코치 선생님을 두고 자신에게 맞게 고안된 훈련 프로그램에 의해 배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연습 시간이 월등해야 합니다. 시를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로서는 좋은 선생님은 차치하고서라도 도무지 혼자 시에 투자한 시간은 집구석에서 멍청하게 텔레비전 시청한 시간이 비웃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궁리한 것은 B선생님이 말한 ‘이기적 시쓰기’를 원용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기적 시쓰기’는 다른 말로 하면 모방해 본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 동안 시라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마지막까지 올라탄 배는 세 개가 있습니다. 송재학 시인과 정진규 시인 그리고 일본의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입니다. 송재학의 시를 보고 좋아서 그의 시속에서 헤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숲을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해서 들어가서 한 3년쯤 나뭇잎도 만져보고 줄기도 더듬고 뿌리도 파고들다가 지쳐서 그만 나와버렸습니다. 정진규 시인의 글들의 산문 형식이 나의 특이성을 제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은 셈입니다. 이 분의 산문시는 행 하나 하나가 은유를 담고 있어 굳이 붙여 안 쓰고 행갈이를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고 봤습니다. 반면에 이노우에 야스시는 진술을 위주로 해서 내 체질에 딱 맞다고 생각했고 나는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의 기분이 한때는 풍미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어떤 감정을 서사적으로 써놓고 거기에 반전으로 현재 자신이 겪은 감정을 대비하여 놓음으로써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얻는 수법입니다.


요 근자에 나는 다시 송재학 시를 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권째 베껴쓰기를 합니다. 특별히 매력이 있다기보다 옛날에 공을 들인 3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다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2020년은 그의 시를 하나하나 갖고 그야말로 나 나름의 시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가 도입한 이미지를 변용하여 모방하는 셈입니다. 시간이 나면 정진규의 시도 그런 방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보기 플레이어(bogey player)에서 드라이버 잡으면 ‘오비’(out of bounds)만 펑펑 내는 수준이 아니라면 이미지라는 퍼팅(putting)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적의식 있는 연습이 연말의 신춘문예의 문을 다시 두드릴 용기를 줍니다. 에릭슨이 쓴 책에 보면 그가 스티브 팰룬이라는 청년을 데리고 기억술에 대한 연구를 합니다. 에릭슨이 1초마다 불러주는 숫자를 기억하여 다시 쓰게 하는 작업입니다. 그 스티브가 어려운 연습을 한 동기가 나를 다시 신춘문예의 응모의 문으로 몰아넣습니다. 첫째 신춘문예의 300만원 내지 500만원의 상금에 침이 넘어갑니다. 둘째 일 년 동안 시를 쓰고, 고쳐 쓰고 하는 과정은 떡치는 행위니 자연 어깨에 힘도 생기겠지요. 셋째 응모라는 것은 수평선에 설 때마다 느끼는 셀레임입니다. 긴장과 흥분은 넓어지는 내 마음속의 공간을 저 바다처럼 넓혀 줄 겁니다. 이 세 가지 미덕 때문에라도 다시 우체국으로 누런 봉투를 갖고 가고 싶습니다. 도랑치고 가재 잡기라는 속담이 빈말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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