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피기 시작한 벚꽃도 때로는 슬프다
신디라는 이름은 이제 먼 하늘의 조각배야. 네 모습은 내 눈에 난 길을 타고 언제나 들어오고 있다. 온통 금발인 얼굴은 햇빛을 튀기고 몸통의 까만 털속에 너의 사랑이 숨어 있었다.
비봉산은 네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흙덩이였어. 내가 퇴근하는 토요일의 네 시는 너의 모가지를 끌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게 했다. 내가 들어서면 왈왈 짖는 소리는 내 등을 떠밀었다. 어서 빨리 나가자고. 차에서 내리면 봉산사 옆에 나 있는 오르막길은 너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흡입기였어. 그리고는 도로 나한테 내려와 핵핵대는 건 몰입의 극점이었다. 당시는 개목줄을 안 하면 벌금 낸다는 건 누구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넌 올라가다가 등나무 있는 데까지 가서는 왼쪽으로 내려간 것은 거기에 네 본능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신통하게도 너는 세 군데 똥을 쌌는데 그 장소가 한 번도 틀리지 않은 건 네가 후각이 너를 잡아 맨 셈이다. 나는 언제나 까만 비닐 봉지를 들고 똥을 담아서 내려올 때 그건 내 전리품이었다.
너는 새끼 네 마리를 세상의 물살에 흘려보냈어. 집에 들어앉아 새끼들에게 젖을 먹인 것이 아니라 너 자체를 다 주어버렸다. 그런 풍경은 내 눈이 아니라 내 코속을 찔렀다.
너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식습관을 개가 아니라 사람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단다. 맨날 고기에다가 생선은 가운데 토막을 주니 이제 너는 동물이 아니라고 사료를 거부하고 우리가 먹는 걸 달라고 우리의 턱 아래에서 맨날 앙앙대었다. 그래도 네 머리는 밝은 햇빛이 오글오글했다. 조금만 훈련시키니 ‘손’, ‘앉아’, ‘뒹굴어’는 네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어.
그렇지만 너의 말년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들어오면 회오리가 되어 황폐하게 지나가곤 한다. 너의 배에 생긴 암덩어리가 너를 자르는 그 고통 소리가 말년을 산산조각 내었다. 병원에서 가져온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는 그놈의 암덩어리를 재우지 못했어.
네가 태어나서 14년째 되던 날 너는 이 비봉산을 하직했지만 너의 기억 속에서 비봉산은 살아서 너와 놀리라고 나는 믿어. 비봉산은 이미 네 속에 들어가서 산이 되어 버렸다. 신디야 너는 비봉산의 황토흙을 마구 뛰어다녀라, 안녕.
삐꾸야 네 녀석은 고향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었어. 왜냐고? 너는 미국말로 야옹거렸으니까. 회색에 갈색도 섞인 어정쩡한 색깔이 너의 정체성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너는 원래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나의 아들이 귀국하는 바람에 비행기 옆구리에 낑겨 한국에 왔다. 그냥 버리고 오면 너에게 기다리는 것은 안락사라는 사실이 우리의 선택을 재촉했다.
신디가 죽기 전에 너는 우리집에 왔는데 그때 같이 온 새까만 후추는 네겐 암덩어리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근데 이놈이 안하무묘(眼下無猫)이어서 삐꾸 네 밥은 발로 차서 나뒹굴어지게 하고 제 밥만 쳐먹었지. 심지어는 제 밥 다 먹고는 삐꾸 네 밥그릇을 타고 뱃놀이를 하는 게야. 얼간이 삐꾸 너는 후미진 구석이 너의 안식처였다. 후추 이녀석의 질투가 신디의 귀여움 받는 것을 발톱으로 긁어버려 발갛게 핏자국 투성이를 만들어버렸다. 너희의 평화를 위해 못된 짓하는 후추를 추방하여 서울에 있는 아들의 친구에게 선물이 되었다. 그 녀석도 이제는 이 세상에 있지는 않겠지만 한몫하는 성깔이 한 세상 잘 살게 했으리라 믿고 싶다.
삐꾸야 너의 못난이가 오히려 세상 사는 지혜였어. 너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이 너의 묘생 철학이라는 걸 네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겨우 너의 애정 표시인 슬쩍 꼬리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내 입꼬리를 위로 치켜 올리게 했다. 나중에는 아이코와 같이 살았지만 너희들은 완전히 투명인간이 아니라 투명묘견이었어.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었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 너는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라고나 할까. 4년 전인가 어느 일요일에 삐꾸 네가 내가 보는 앞에서 모래 위에 누워 나를 빤히 쳐다보며 숨을 거둔 그 풍경은 생명의 수수께끼를 남겨 주었다. 네가 산 얼추 14년이라는 세월은 한줌 모래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우리에게 주는 허망함이란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쪽배와 같다.
고독한 철학자 삐꾸야, 너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움의 그림자로 내게 점점 더 길게 드리워진다.
일본의 현 천황인 나루히토(德仁) 일본의 126대 왕과 마사코(雅子) 황후 사이에 2001년 12월에 무남독녀 아이코(愛子)가 태어났지. 아이코야 너의 이름을 천황에게는 무례하지만 아이코란 이름을 훔쳐서 네게 주었다. 너와의 만남은 매화가 꽃바람에 날리는 날이었어.
신디가 병이 나서 동물병원에 갔다가 아이코 네가 오줌깔개에 와서 조신하게 오줌 누는 걸 보고는 네 엄마가 뿅 가서 어느 여대생이 예약해 놓고 갔다고 하는 새치기하고 데려왔단다.
너는 혼자서 산과 바다 위를 스멀스멀 걸어가는 달이라고나 할까. 마치 칸트가 쾨니히스베르크를 평생 떠나지 않듯이 너도 집에서만 살았다. 집에서도 안방과 거실이 네게는 걸어다니는 우주 공간이었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소유로 만족했다고 보아야겠다.
6시쯤 퇴근하고 오면 어김없이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나에게 꼬리치는 것을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네 오줌을 다 치우고 매 끼니 때마다 맛있는 밥을 그렇게 챙겨주었건만 언제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너의 문전박대였다. 엄마는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번 목욕시켜 주는 것뿐이었는데도 너는 오직 엄마만이 너의 환한 달맞이꽃이었다. 침대에서 잘 때도 엄마와 나 사이에 있으면 언제나 엄마 쪽으로 네 얼굴이 아니라 네 존재를 다 던지고 잤어.
좋은 시절 다 가고 너도 늙은이가 되더니 작년부터는 방구석 한쪽에서 오른쪽으로만 빙빙 도는 모습은 매일 보는 치매 할머니의 기저귀 뜯기와 꼭 같더라. 그리고 힘들면 네 집에 들어가 쉬면 네 주위로 웬 빗소리더냐. 치매가 와서 반복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건 어쩌면 내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올해 3월 어느 봄날에 너는 작정을 하고 엄마 품에 안겨 고요한 마지막 숨을 길게 내뿜고 갔다. 막 피기 시작한 벚꽃도 슬프다는 걸 그때 알았다. 너와 함께한 16년의 세월은 우리의 기억의 마당에서 언제나 벚꽃으로 피어난단다. 핸드폰 첫 화면의 너의 조금은 바보 같은 얼굴은 눈빛 속으로 꼬리치면서 오늘도 달려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