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고 글을 쓰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을 그저 일본의 유명한 작가구나 하면서 이제껏 오랫동안 신문에서도 스치고 지나쳤습니다. 우연히 『잡문집』을 읽으면서 그의 '매력'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그는 1949년 생이라서 저와 정서가 같을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는 일찍이 재즈에 심취했더군요. 대학 생활도 7년만에 졸업하고, 우리 같은 '착실파(?)'와는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글이 재미가 있습니다.
작가로 사는 것도 굉장한데 거기다가 영어 소설을 번역까지 하다니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그저 취미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전문 번역가입니다. 학교 다닐 때 '논다니(?)' 같았는데 언제 영어를 그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신기합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은 특히 영어에 약하거든요. 그의 소설과 일역된 영어 소설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은 재즈입니다. 그는 재즈를 통해서 글쓰기의 골격도 세웠고 나아가서 그의 삶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확실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저의 경우에 과연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재즈’ 있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제 인생의 골격을 세우고 ‘끊임없는 가치 판단’의 축적을 이루어 가는 것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 직업이겠지요. 무슨 히포크라테스 같은 자비의 정신을 내세우기는 낯 뜨겁고 그것보다는 의학은 근본적으로 과학입니다. 따라서 저의 사유의 가장 저변은 인과율인 과학적 사고라고 여겨집니다. 다음은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기독교적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종교라는 것이 결국은 영원히 살겠다는 ‘영적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마지막으로는 20여 년 수련해 온 검도를 들게 됩니다. 검도의 가장 기본은 생사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도이지만 말하자면 이것은 칼입니다. 죽음을 그야말로 초개(草芥)로 여기지 않고는 검도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검도에서 잊지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버리는 몸’, 다시 말해 기회라고 판단했으면 생사는 관계 없이 몸을 버리는 것이지요. 요즘은 오모리엔 마사오(小森園正雄) 범사가 말했다는 ‘기술을 기를 단련하기 위한 수단이다’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기로 대한다는 자세인데 저로는 아직도 먼 길에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국의 단편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 칭송의 말을 많이 합니다. 그에 의하면 레이먼드 카버는 ‘잘난 척 하는 소설’을 쓰지 않았고, 달변을 싫어하고, 요령을 싫어하고, 지름길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1938년에 태어나서 1988년에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라 합니다. 그의 문체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언급하지만 단순하고 적확한 문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레이몬드 카버의 소개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L선생님이 저에게 충고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조금 더 무식하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달리 말하면 저는 '잘난 체'를 많이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레이먼드 카버처럼 ‘단순하고 적합한’ 문체가 아닙니다. 무언가 지성을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기를 저도 모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은연 중에 현학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진정으로 몸을 고뇌하고 사색한 결과라기보다는 책을 읽고 지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찾아서 헤맨 결과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와서 딱히 교정한다는 것도 어렵겠습니다만.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이 말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솔직히 말해 잘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리듬이란 ‘음의 장단이나 강약 따위가 반복될 때의 그 규칙적인 음의 흐름’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음의 흐름이 ‘규칙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문장을 리듬처럼 규칙적으로 이끌어간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산문으로는 작가 김훈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문장은 단문으로 나가다가도 거의 반드시―제가 보기에는―서너 줄의 문장으로 된 복문이 나옵니다. 단문만 계속되면 읽기가 지루해집니다. 또 하나 이분의 문장은 시인을 능가하는 은유를 구사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이 유명하니까 스스로 잡문이라고 말하면서까지 당당히 자신을 글을 발표합니다. 결국 이 저변에는 오랜 내공이 쌓인 결과이겠지만 자신을 믿는 자신감의 발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올리려고 하다 보니 그 옛날 읽었던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조언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제게 와닿는 말은 ’자신을 믿고 글을 쓰라‘는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