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

by 현목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저의 기억 속에는 노벨 문학상을 탔고, 간간히 신문에 나는 그에 대한 기사로 보아 이념적으로는 진보적이 면이 있지 않나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따라서 저를 보수적이라고 여겨온 저로서는 그다지 친밀감이 드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그의 『읽는 인간』이란 책을 보고 독서에 대해 항상 관심이 있어 왔기에 구입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그에 대해 알고 싶어서 대충 검색해 보았더니 그는 역시 국가주의 혹은 제국주의에 대해 반대하고 원전을 적대시하고 때로는 평화주의를 위해 데모에도 손수 출현하는 이른바 행동하는 작가로 보였습니다.


오에라고 하면 그의 장남인 오에 히카리(大江光)의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뇌 이상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오에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그는 절대음감을 가지 유명한 작곡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경향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일본적인 감성보다는 서구적인 지성을 지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제게는 별 그렇게 무게를 둘 수 없는 것이고, 그가 어떻게 독서에 임하는가가 저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책만 쓰는 인생, 책만 읽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독서하는 것을 취미라고 하기까지에는 어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특별히 기피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에처럼 책에 몰두해온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 흔한 어린이 문학전집을 독파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성인이 되어 유별나게 내세울 만큼 독서량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현장에서 은퇴한 입장에서는 딱히 독서하고 운동(검도)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다 보니 자연히 책과 시간을 많이 가지는 편입니다.


우선 오에는 책을 읽을 때 재독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도 공감이 가지만 실제로는 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연필로 줄을 긋고 또 더 중요하다고 보면 별표를 하나, 둘 혹은 셋을 표시를 합니다. 간혹 저자의 생각에 인상이 깊다든지 반대의 생각이 나면 책 여백에 코메트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책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거의 반드시 요약하여 따로 노트북에 저장하여 두고 기회가 되면 다시 재독하는 편입니다.


저는 『검도 일본』이란 잡지를 거의 10년 이상 정기구독하여 보고 있습니다. 재미로 번역하여 제 개인 블로그에 옮기면서 본의 아니게 ‘재독’을 하게 되는데 확실히 ‘재독’은 저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을 하기는 합니다.


또 오에는 처음에는 번역서를, 두 번째는 원문과 대조해서 읽고, 마지막 세 번째는 원서로 끝까지 읽어보길 권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오에는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는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성의 왕복이 그에게 새로운 문체를 가져 주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신선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캣치는 잘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말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영어로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오에는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하면서 문체를 바꾸어 가며 소설을 썼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 책에서 저에게 가장 중점적으로 인상에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에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평생의 스승이 된 와타나베 가즈오(渡辺一夫) 선생님이 가르쳐 준 책 읽는 방법입니다. 3년 동안 한 작가의 작품과 연구서 등을 모두 읽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언어 감각을 얻고 또 오에는 소설의 모티브를 발견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과 연구서 등을 3년간 읽었고 단테의 『神曲』을 마찬가지로 3년간 천착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에게서 소설 작품이 탄생을 했지요.


오에는 ‘특히 노년에 이르러 그것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저는 젊은 여러분에게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 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에의 말대로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젊어서 특별히 고전을 읽자고 집착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눈앞에 닥치는 대로 읽은 셈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에 백종현 교수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김상환 교수의 『왜 칸트인가』를 읽고 내가 왜 젊어서 칸트를 읽지 않았는지 후회했습니다. 읽었더라면 어쩌면 저의 인생의 길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리지만 손주들에게도 너희들이 대학을 가면 칸트를 읽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칸트는 인간 정신이 감성과 지성, 상상과 이성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평생 사유하고 책을 썼습니다.


오에는 마지막에 독서의 기본 원리를 밝혀 주는데 그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저로서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 방법은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입니다.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그 내용을 배웁니다. 오에는 그것을 흉내내기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단계가 기억하기입니다. 습득한 것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이 대목이 참으로 중요한데 저는 이미 기억력이 쇠퇴하여 이 부분을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정진규의 시를 외우자고 시도를 하여 두 편을 외웠으나 며칠 지나서는, 해가 나자 안개가 걷히듯이 다 사라져 버리고 흔적조차 남지를 않아서 자신의 기억력에 대해 스스로 실망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안개가 걷혀도 뭔가 단서가 남아서 끙끙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수 있었으나 그런 능력이 이제는 다 쇠퇴해 버린 것 같습니다.


오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토 시즈오(伊藤靜雄) 시도 일단은 외우고 나서 생활 속에서 반추하다 보면 깨달을 때가 오더라고 경험담을 얘기합니다. 오에는 소설가인데, 그것도 어떤 감성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성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고 이해되는데 제게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는 소설가인데도 불구하고 시에 대한 친밀감이 유별나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포 시집, 티에스 엘리엇의 시, 이토 시즈오,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시를 접하고 공부한 얘기를 하면서 그 시들이 그의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실제로 작품 속에 인용도 했다고 합니다.


오에라는 소설가의 『읽는 인간』에서 제가 발견하고 제 마음에 감동과 추진력을 준 부분은 저의 앞으로의 독서에 한 방향을 제시하리라는 기대와 예감을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