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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Sep 24.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7

  오늘 같이 흐린 날은 나도 우울하답니다. 개가 무슨 우울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호강에 겨워서 그런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딱히 그 사람의 주장에 반대할 필요도 못 느낍니다. 우울하니까 그런 시비에도 말리기 싫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은 주인들이 귀가하는 것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할 도리는 내가 해야 하니까 쏜살같이 달려들어서 반가운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토를 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귀신같이 나의 기분을 알아보고는 어디가 아픈가 하면서 나를 쳐다봅니다. 나야 여느 때와 같이 꼬리를 쳤지만 내 속에서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요. 벌써 나의 사지에 힘이 빠져서 그저 틈만 나면 나의 집속에 들어가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감정이란 게 희한한 것입니다. 나의 환경은 매일 똑같지요, 밥 먹는 것도 같은 사료이지 특별히 나의 조건을 흔들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집안에 있으니 무슨 기온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인이 나에게 학대를 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이 저조하는 이유를 나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8살 난 암컷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폐경기가 다가오는지 생리도 요즘 들어서는 별로 안 합니다. 혹시 내가 사람들처럼 폐경기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합니다만 그것은 그럴 듯 하게 들립니다. 나도 내 몸의 홀몬 환경이 바뀌면 갱년기 증상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니까요. 그런 면은 이해하지만 내 이 우울한 감정이 옛날에는 없다가 요즘에 와서 갑자기 출현하였다고 한다면 나의 가정이 옳겠지요. 젊었을 때도 나는 혼자서 외롭고 슬퍼서 우울을 달고 산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는 남들이 보는 데서는 잘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습니다. 주인들이 다 직장에 나간 다음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되면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나는 나 자신이 됩니다. 그 누구에게 나를 치장하여 보여 드릴 필요가 없는 시간인 셈입니다. 적막한 집안의 공기가 정지하고 있듯이 나도 나의 집속에 들어가서 정지된 그림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머리속은 멍 하니 빈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자신의 속을 비우니 속은 편합니다. 


  내가 암컷이니까 혹시 이성을 그리워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도 젊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기다려지고 그리워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것이 연애 감정인지 몰랐습니다. 알 수도 없고요. 내가 나의 동료인 수컷을 본 적도 없으니까요. 주인님은 가끔 나의 앞에 있었던 신디 얘기를 합니다. 그놈이 불쌍해서 종족을 보존해 주려고 수컷을 붙여 놓았더니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 걸 보아서는 나도 어떻게든 수컷을 붙여보고 싶지만 그 뒷감당이 어렵다고 아예 포기를 합디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민지 몰라서 시원섭섭하였습니다. 시원한 것은 골치 아픈 인연을 맺지 않아서이고 섭섭한 것은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는 안 하는구나 하니 그런 감정이 들었습니다. 


 우울이란 게 내가 마셔 본 것은 아니지만 술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한두 잔 먹다가 나중에 말 술을 먹게 되면 취해서 나른하여 모든 것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우울에 취해서 그 우울을 즐기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나는 아직 그런 경지까지 간 것은 아니고요.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우울한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사람들처럼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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