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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Oct 26. 2024

구지봉(龜旨峯)을 걷다

    수로왕릉의 초록색 무덤을 처음 본 순간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에 봤던 경주의 왕릉과 비교가 되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만한 크기가 더 인간적으로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그다지 꾸밈도 없고 조촐한 품새가 수로왕의 인격이 그랬을 것 같았다.


  수로왕비릉으로 갔다. 올라가면서 왠지 무덤의 쓸쓸함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죽고 나서도 굳이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무덤도 자그마한 것이 초라하게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밤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손짓만 하다가 손을 흔들고 돌아설 것이다. 사랑이란 결국은 한 개체가 다른 한 개체를 좋아하다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수로왕비릉 옆의 작은 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멀리서 보니 고요하고 아늑한 하늘이 왕비릉을 감싸안고 있는 듯했다. 유명한 구지봉에 올라오니 생각보다는 허름해 보였다. 아무런 기상도 기백도 없고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휘황찬란한 비석조차 없었다. 한쪽에 보니 자연석으로 된 거북이 모양의 돌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기가 김해의 역사가 일어난 신성한 장소이다. 왠지 시끌벅적 떠들썩할 것 같았는데 고즈넉하기만 하고 땅바닥의 황토가 수로왕이 태어난 곳을 아직도 벌겋게 돌이켜 생각하고 있었다.


  단군 신화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마늘 20개를 먹고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고 한다. 이렇게 용맹스러운 호랑이나 곰이 등장하는 것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데 구지봉 신화에서는 등에 껍데기를 지고 느리게 걷기만 하고 아무런 용맹함이나 위엄이 없는 거북이가 등장하는 것이 의아하기만 하다. 별로 시답지 않은 거북이를 등장시킨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할 뿐이다.


  거북이는 우선 보기에 등껍데기와 배껍데기가 눈에 띈다. 배껍데기는 옛날에 갑골문자를 새겼다고 한다. 등껍데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신체구조일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의 다리를 끌어당기고 심지어 모가지까지 숨긴다. 어찌 보면 소심하기 이를 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거북이는 세상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출가한 승려처럼 명상하고 좌선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거북이는 걸음이 느리기 때문이다. 느린 걸음은 인간이라면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형태이다. 산에서 들에서 빠른 걸음으로 가는 사람은 걷는 그 자체의 신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자신의 정신에 대해서는 별로 밝히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북이는 어쩌면 “이것이 무엇인가?” “산다는 게 무어지?” “죽음은 무얼까?” 하고 걸음을 천천히 내디디는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거북이가 치명적으로 착하다는 증거는 그에게 이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선한 품성을 가졌을 것이다. 세상이 어떤 못된 놈이 욕을 해도 거북이는 씹지 않는다.


  수로왕의 강림을 위해 김해 사람들이 불렀다는 구지가(龜旨歌)를 보면 거북이의 이런 성격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북아 거북아/머리를 내어라/내어놓지 않으면/구워 먹으리’ 어떻게 보면 너무 적나라하고 쌍스럽게도 보인다. 거북이가 머리를 등껍데기에 파묻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거북이가 무슨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김해의 백성을 위해 이제는 명상은 그만하고 머리를 내밀고 행동에 옮기라는 말이 아닐까. 구워 먹겠다는 말은 어쩌면 어머니가 제 아이를 협박할 때처럼 하는 말이 아닐까. “너 까불면 죽여버릴 꺼야”라고 말하면 그것이 정말 죽인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우리 말을 안 들으면 우리는 어디 갈 데도 없으니 거북이를 구워먹겠다는 말은 협박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은 유치한 유머가 아닐까.


  한쪽에서 묵묵히 앉아 있는 거북이가 오히려 당당한 호랑이나 곰보다도 더 깊이가 있고 김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구지가의 힘찬 소리를 들으면서 구지봉의 황토길이 발바닥으로 젖어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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