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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독후감

by 현목 Mar 01. 2025

  허수경 시인은 1964년 진주에서 태어났고 경상대학 국문학과를 나와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1987년 시인으로서 등단했고 1992년 돌연 독일로 가서 뮌스터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했습니다. 나중에 독일인 교수와 결혼하여 살다가 2018년 뮌스터에서 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향년 54세였습니다.


  진주에서 오래 살다 보니 제2의 고향이 되어서인지 진주 사람인 그녀의 시집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서 오래 전에 시집과 산문집도 읽어 보았습니다. 우연히 2019년에 출간된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란 책이 눈에 띄여 보게 됐습니다.


  2011년 4월 13일부터 2018년 4월 15일까지 허수경 시인이 ‘글들’이라는 폴더 안에 저장해 두었던 메모를 출판한 것이라고 출판사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011년이라면 그녀의 나이는 47세입니다. 2014년 7월 5일까지는 그런대로 기록이 많으나 그 후로는 기록이 급격히 적어 보입니다. 2015년은 5월 30일 단하루뿐입니다. 그리고는 2016년 1월 27일로 뛰고, 2016년에는 여섯 번이고, 2017년 1월 16일로 이동합니다. 2017년은 열네 번 썼고 2018년 4월 15일 기록이 단한번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2018년 10월 3일에 운명했습니다. 이렇게 기록의 횟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그녀의 발병과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시인이라서 그런지 이 책의 메모의 상당 부분이 시(詩)에 대한 단상(斷想)들로 가득합니다. 단편적인 언급이라서 그 가운데 일관되게 흐르는 생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제 개인의 기호(嗜好)에 따라 제게 감동을 주는 말들에 관심이 갈 것 같습니다.


  첫째 저에게 눈길을 끈 메모는 이 말이었습니다. 

  「나의 시가 자신의 시간을 사는 동안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간다」


  저는 50년 넘게 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랍시고 써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게 말해서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이었습니다. 언제나 아마추어라고 스스로를 격하하는 열등감 속에서 시를 써 온 셈입니다. 허수경 시인이 말하는 ‘자신이 쓴 시가 시간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시가 생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시가 시간을 가지고 사는 동안 시인은 진정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각도 없이 언제나 시를 쓴다고 흉내만 낸 것입니다. 저를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하면서 자신을 비하시키면서 살아온 셈입니다. 


  허수경 시인의 「독자 없이 사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충고가 가슴에 새삼 다가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될지언정 쓰고 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 시를 왜 쓸까, 하는 의문을 허수경 시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 전 저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더욱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발설하기 위하여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 시쓰기의 모든 시간은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시인으로서 내 존재는 고아이다. 누군가가 나를 태어나게 했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남겨진 고아. 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이다」


  과학자처럼 사물의 법칙을 찾기 위해서 일까요? 시는 자신을 이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단지 방법이 과학처럼 논리적인 인과율이 아니라 유화처럼 사물을 변형시켜서 이미지들을 통해 자신을 발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일까요? 저는 사실 저를 잘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태어나서 부모에게 사랑과 양육을 받았습니다. 교육이란 사회적 훈련 하에 생존하는 정보를 얻으면서 성인이 되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제 앞의 환경을 헤쳐나가다가 수명이 다하면 어딘가 갑니다. 그 모르는 나를 찾아서 저는 시를 만난 운명에 의해 저를 발설시키고 저를 찾아 가는 길을 걸어 온 것입니다. 


 저를 찾으려고 써온 시란 과연 무엇일까요? 허수경 시인은 베르그송을 말을 인용합니다. 「이미지. 리듬과 더불어 시를 구체적으로 만드는 요소. 이미지, 그 자체의 존재 가능성. 덜 존재하는 것. 내가 지각하는 것. 그것이 이미지다」 


  저의 시작(詩作)의 방법은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와 리듬입니다. 그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으로 저는 메타포를 선호하고, 할 수만 있으면 메타포를 잘 원용하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역부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에는 의미와 이미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의미는 크게 신경을 안 쓰는 편입니다. 다만 이미지에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 티비의 Arte에서 고흐에 대한 그림 얘기가 있었습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고흐는 그림이 주는 의미보다는 밤하늘과 별과 마을과 교회 첨탑이라는 사물을 변형시켜서 이미지를 창조하여 우리는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저의 감정과 세상에 대한 지각을 확인하여 온 것입니다.


  셋째 어쩌면 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제가 걸어 갈 길을 허수경 시인이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쓰자. 쓰는 시간만이 사는 시간이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외로웠지. 그리고 이 선택만이 내 삶을 이끌어 갈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문장을 쓰고 그것 자체만을 즐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고독으로 죽어갈 것이다. 너의 문장이 너를 고독에서 구해준다는 걸 네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허수경 시인의 이 메모를 보자 제 마음은 설레고 용기를 얻으면서도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이번에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저 자신이 스스로 매일 글쓰기를 하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지만 언제나 만사휴의(萬事休矣)였습니다. 글쓰기를 하면서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말을 들으니 헤밍웨이가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문장을 쓰고 그것 자체만을 즐기는 연습’을 해야 할까요? 우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도 못한 주제에, 책을 내도 제 돈 주고 출간하는 주제에, 라는 자격지심을 버리고 비록 ‘삼류 시인’이라도 자신을 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할 용기를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허수경 시인의 이 말인 것 같습니다. ‘문장을 쓰고 그것 자체만을 즐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즐기는 것도 하루 아침에 뚝딱 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인정하고 그저 쓰고 그저 그것을 즐기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허수경 시인의 글 중에서 유난히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재미 삼아 그 단어들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지 대충 세어 보았습니다. ‘빛’이 46번, ‘술’이 23번, ‘바람’이 20번, ‘고독’이 13번 ‘구름’이 8번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빛’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허수경 시인의 마음이 빛과는 반대인 음지의 쓸쓸함, 어두움이 역설적으로 빛을 그리워한 반증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그 다음에 ‘술’이라는 단어도 만만치 않게 나옵니다. 여자가 혼자서 생활하고(나중에는 결혼을 했지만) 또 훌쩍 독일로 가서 고고학을 배우면서 발굴지를 다닐 때 고독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술에 의지했을 것이란 상상도 갑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도 나옵니다. 


「내가 나를 유배시켜 놓고 혼자 낮술을 마신다」

「필름이 끊어질 만큼 술 마시는 시간들이 이 봄에도 계속된다」

「어제 많이 마셨다. 오늘까지 마셨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잤다. 너무 많이 마셨다」


  설마 이런 술 마시는 습관이 그녀의 병으로까지 이어졌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그녀는 술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이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본인이 가난했다는 말을 몇 군데서 직간접으로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건축. 건축의 욕망. 어릴 때부터 집을 가져보지 못한 나는, 아니 내 식구들이 사는 집에 누군가 방문하면 그렇게 부끄러웠던 나는, 집을 설계하는 일이 사치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방 한 칸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 나는 나의 부모가 언제나 나를 파먹었다는 슬픔이 있다. 아마도 나의 근원적인 삶의 불구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며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구글에 찾아보면 허수경 시인의 아버지는 경상대학 경영학과 교수였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큰부자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중산층은 될 것입니다. 다만 개개인의 경제적 상황은 개개인이 다 다르니까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으므로 저의 선입견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면서 친구 이름들은 그런대로 부르면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 혹은 남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게 저로서는 의아했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병력을 보면 자세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몰라서 그렇습니다만, 허수경 시인이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위암을 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아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2017년 6월 13일(53세) 응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갑니다. 어쩌면 토혈을 했거나 혈압이 떨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아마 위암 진단을 받은 것 같습니다. 2017년 7월 5일에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링거로 연명하는 삶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2017년 7월 7일 두 번째 항암화학치료를 받았습니다.


  2017년 11월 12일(거의 사망하기 1년 전쯤입니다)에 쓴 글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허수경 시인은 딱히 종교가 없은 것 같습니다. 지금 사는 집의 부엌에서 전 주인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그 십자가를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든 지경까지 삶에 불행이 찾아왔을 때 우연히 책상 서랍 안에서 십자가를 발견했다. 나는 그 십자가를 손에 들고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고난과 불행을 견뎌내던 한 사람,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잊어버리고 가버린 십자가. 하지만 그 사람이 잊어버린 십자가를 발견한 다른 사람이 지금 그 십자가를 붙들고 있다.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지 희망을 발견하려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십자가를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전 주인이 십자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상상해보는 일에 따스함이 있었다」


  허수경 시인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심정에서 무언가에 의지하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무얼 의미합니까? 구원을 표상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허수경 시인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시를 생각합니다. 길지만 인용합니다.


  「시를 쓰던 순간은 어쩌면 그렇게 다른 이가 잊어버리고 간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십자가라는 것이 한 종교에 속한 상징이라면 다른 종교에 속한 어떤 상징도 마찬가지이다. 간절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 사람의 시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린 수국 한 그루를 마당에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기새들이 종일 지저귀던, 늙은 전나무에 있는 새집을 바라보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절한 어느 한 순간이 가지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힘. 그것이 시를 쓰는 시간일 것이다.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허수경은 진정한 시인이었습니다. 시는 그녀에게 십자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 나는 쓰기 시작했다. 몇 편의 시가 나에게 남아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가기 전에 쓸 시가 있다면 쓸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내일 가더라도. 그리고 가야겠다. 나에게 그 많은 것을 준 세계로. 그리고, 그리고 당신들에게로」


  책 전체가 주는 분위기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한 한 시인의 생애의 단편을 보는 것 같아 어둡고 쓸쓸하고 애잔하기만 합니다만 저에게는 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못 쓰는 글이지만 다시 마음을 먹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허수경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읽고 사족(蛇足)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파울 첼란이란 인물을 허수경 시인이 소개했습니다. 저는 평생에 그래도 책을 읽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분의 이름을 여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파울 첼란은 1920년 루마니아의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1970년 프랑스 파리 세느강에 투신 자살했습니다. 그는 독일인이 아니면서도 어머니가 독일어를 사용하게 하여 독일어가 모국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독일어로 쓰였다고 합니다.


   「어제는 젊은 첼란이 부카레스트를 떠나는 장면을 백합 향기 속에서 읽었다. 첼란 번역 동안 나의 시들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 놀란 것은, 그는 괴테, 횔덜린, 릴케를 잇는 독문학의 역사상 최고의 시인 중 한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파울 첼란』(정명순)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 책에 나오는 시를 읽으니 그의 시는 바로 메타포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이 파울 첼란 시집(10권)을 전부 5권으로 번역한 것이 허수경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메타포를 한번 경험하면 허수경 시인의 말처럼 저의 시도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수경 시인은 파울 첼란에 대해 얘기합니다.


  「만일 당신이 파울 첼란을 독일인 시인으로 알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그는 독일어로 시를 쓴 프랑스인이다. .. 그는 한 번도 독일에 살아본 적이 없다. 빈에서 정착하기를 원했으나 결국에는 프랑스로 왔고 그곳에서 가족을 가졌고 시를 썼고 번역을 했고 그곳에서 자살했다」


  파울 첼란은 유대인 부모가 이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것과 한때는 친구였던 이반 골의 아내 클레르 골의 끊임없는 표절 시비(나중에는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밝혀졌습니다만)가 그를 평생 괴롭혀서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다가 결국 1970년 세느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울 첼란의 메타포를 보면서 그의 메타포는 저의 메타포보다는 서너 폭 더 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책 표지에 나오는 파울 첼란의 얼굴은 씩씩한 남자보다는 여성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파울 첼란을 알게 된 것이 제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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