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이다 돌담을 쌓는다 서로 다른 돌들이 서로 만나
서로 든든하다 비인 틈을 용케 닮은 것들이 서로를 채운
다 더군다나 소색인다 햇발이 소색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돌들이 소색인다 속삭인다가 아니라 소색인다 더
은근하고 부드럽다 소리로 서로 만진다 여러 곳에서 발
품 팔아 주워 온 강돌들이다 쌓는 정성도 정성이었지만
여러 강물로 씻긴 것들이어서 소색이는 물소리가 다르
다 흐르는 굽이가 서로 다르다 빛깔도 다르다 이 소리들
로 이 굽이들로 이 빛깔들로 나는 한 소식 할 작정이다
연주회를 열 작정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소리를 내
고 있으니 실체의 발견發見이다 아직 덜 받아 적었다 열
심히 받아 적고 있다 햇살 속에서 내는 한 소리만 영랑
께서는 결로 보이며 햇발같이 적어 주셨지만 한밤의 소
리를 받아 적노라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몸이 가볍다 새
벽 먼동으로 몸이 트인다 촉촉하게 담을 넘는다 젖어 있
는 햇발을 새벽에 보았다 촉끼**라는 말씀을 비로소 만
졌다 보은 송찬호네 대추 마을 앞 강물 것도 있고 이성
선이 밟으며 떠난 설악 계곡의 것들도 있고 담양 소쇄원
앞 강물에서 댓잎 바람 소리로 씻기던 것들도 있으며 내
생가生家 마을 보리체 앞 개울, 한겨울에도 맨발 벗고 건
너던 막돌들도 있다 당신의 꿈결을 흐르던 강물에서 건
져진 것들도 있다. 태胎 끊고 맨몸으로 태어난 것들도 있
다 다만 나의 돌담 안에 모옥茅屋 세 칸 반 들이고 내 신
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었다.
*영랑永郎, 《시문학》 2호(1930.5)에 〈내마음고요히고흔봄길우에〉로 발표.
**촉끼: 슬픔의 가락 속에서 피어나는 싱그러운 음색의 환한 기운(미당未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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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 분석하기
----ⓜ(metaphor) ----ⓢ(statement) ----ⓢ‘(simile)
∙말년이다 ----ⓢ
∙돌담을 쌓는다 ----ⓢ
∙서로 다른 돌들이 서로 만나 서로 든든하다 ----ⓢ
∙비인 틈을 용케 닮은 것들이 서로를 채운다 ----ⓢ
∙더군다나 소색인다 ----ⓢ
∙햇발이 소색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돌들이 소색인다 ----ⓢ
∙속삭인다가 아니라 소색인다 ----ⓢ
∙더 은근하고 부드럽다 ----ⓢ
∙소리로 서로 만진다 ----ⓜ
∙여러 곳에서 발품 팔아 주워 온 강돌들이다 ----ⓢ
∙쌓는 정성도 정성이었지만 여러 강물로 씻긴 것들이어서 소색이는 물소리가 다르다 ----ⓜ
∙흐르는 굽이가 서로 다르다 ----ⓢ
∙빛깔도 다르다 ----ⓢ
∙이 소리들로 이 굽이들로 이 빛깔들로 나는 한 소식 할 작정이다----ⓢ
∙연주회를 열 작정이다 ----ⓢ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소리를 내고 있으니 실체의 발견發見이다 ----ⓢ
∙아직 덜 받아 적었다 ----ⓢ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
∙햇살 속에서 내는 한 소리만 영랑께서는 결로 보이며 햇발같이 적어 주셨지만 한밤의 소
리를 받아 적노라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몸이 가볍다 ----ⓢ‘
∙새벽 먼동으로 몸이 트인다 ----ⓢ
∙촉촉하게 담을 넘는다 ----ⓢ
∙젖어 있는 햇발을 새벽에 보았다 ----ⓢ
∙촉끼**라는 말씀을 비로소 만졌다 ----ⓜ
∙보은 송찬호네 대추 마을 앞 강물 것도 있고 이성선이 밟으며 떠난 설악 계곡의 것들도 있고 담양 소쇄원앞 강물에서 댓잎 바람 소리로 씻기던 것들도 있으며 내 생가生家 마을 보리체 앞 개울, 한겨울에도 맨발 벗고 건너던 막돌들도 있다 ----ⓜ
∙당신의 꿈결을 흐르던 강물에서 건져진 것들도 있다 ----ⓜ
∙태胎 끊고 맨몸으로 태어난 것들도 있다 ----ⓜ
∙다만 나의 돌담 안에 모옥茅屋 세 칸 반 들이고 내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었다----ⓢ
----ⓜ(6) ----ⓢ(20) ----ⓢ‘(1)
*말년(末年): 일생의 마지막무렵.
*소색인다: 사전에는 안 나옴
쳇지피티의 답변: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져 반짝인다, 빛난다’는 의미의 시적 표현이다.
*굽이: 휘어서 구부러진 곳
*결: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막돌: 쓸모없이 아무렇게나 생긴 돌
*모옥(茅屋):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
2 사물의 본질
①돌담의 돌들은 소색인다.
②돌담을 쌓고 보니 실체를 발견했다.
③돌담 안에 모옥 세 칸 반 들이고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었다.
3 허름한 단상
제 평생에 관심을 가졌던 시인은 김종삼 시인, 오규원 시인, 송재학 시인, 정진규 시인, 일본의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시인이었습니다. 한때는 송재학 시인의 시들을 많이 읽고 제 방식으로 연구도 해봤습니다. 그의 시적 이미지는 매력이 있지만 어쩐지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진규 시인의 시 스타일이 왠지 제 몸에 맞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경산 선생의 시를 전부 한번 검토해 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분의 시집을 모두 모아 놓고 첫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헌책을 샀습니다)부터 시작은 했으나 1965년에 출간된 것이라 왠지 너무 오래된 스타일 같아서 요즘과는 잘 맞지 않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맨 마지막의 시집부터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경산(絅山) 정진규 선생이 2017년 9월에 돌아가셨고 2017년 8월에 『모르는 귀』가 출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경산 선생의 마지막 시들 중에 하나일 것 같습니다.
경산 선생이 자신을 “말년(末年) 중이다”라고 하는 걸 보니 어쩌면 이 시를 쓸 때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산 선생이 쓴 이 시의 제목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는 1930년 5월에 김영랑 시인이 쓴 시 ‘내마음고요히흐른봄길우에’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길지만 인용하면 시적 이미지를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마음고요히흐른봄길우에
김영랑
내마음고요히흐른봄길우에
돌담에소색이는햇발가치
풀아래우슴짓는샘물가치
내마음고요히흐른봄길우에
오늘하로하날을우러르고십다
새악시볼에떠오는붓그럼가치
시의가슴살프시젓는물결가치
보드레한에메랄드얄게흐르는
실비단하날을바라보고십다
경산 선생이 돌담을 쌓은 모양입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단어가 ‘소색이는’입니다. 사전에는 ‘소색이다’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속삭이다’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산 선생은 ‘소색이다’는 ‘속삭이다’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아 놓습니다. 하는 수 없이 챗지피티에 물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시 부분을 적어서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소색인다’는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져 반짝인다, 빛난다는 의미의 시적 표현이다’라고 했습니다.
돌들을 쌓으니 돌들이 만나 서로 든든합니다. 돌들이 소색입니다. 속삭이는 것이 아닙니다. 부드럽다는 소리로 서로 만집니다. 이 돌들은 직접 걸어다니면서 주워온 강돌입니다. 강물 로 씻긴 돌이어서 소색이는 물소리가 다르고, 흐르는 굽이가 다르고, 빛깔이 다릅니다. 이것 들로 돌들을 쌓아서 연주회를 만들 예정입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실체를 발견했습니다. 쌓 느라고 밤을 세우니 먼동이 밝아옵니다. 미당(未堂)이 ‘슬픔의 가락 속에 피어나는 싱그러운 음색의 환한 기운’이라고 말한 촉끼라고 한 말이 이제야 몸으로 만졌습니다. 강돌에는 송찬 호네 것, 이성선의 것, 담양 소쇄원 앞 강물의 것, 경산 선생의 생가 마을 앞 개울의 것, 개 울의 막돌도 있었습니다. 당신 꿈결에 흐르던 강물에서 건진 것도 있습니다. 태 끊고 갓 태 어난 것도 있습니다. 경산 선생은 이런 돌담 안에 모옥 짓고 신발을 댓돌 위에 벗어 두었습니다.
시 본문을 제가 느낀 대로 풀어서 썼습니다만 경산 선생은 여기서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요? 첫째 돌담의 돌들은 소색인다고 합니다. 그 구체적인 것으로는 서로 만지고, 물소리 다르고, 굽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다. 둘째 이렇게 돌담을 쌓고 보니 실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미당이 말한 ‘촉끼’였다. 셋째 돌담 안에 모옥 세 칸 반 들이고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과한 상상인 것 같지만 셋째가 이 시의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죽음을 앞 두고 있는 경산 선생이 자신의 사후가 돌담 안의 모옥에 들어가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4 외우면 좋을 시구
∙돌들이 소색인다
∙촉끼**라는 말씀을 비로소 만졌다
∙당신의 꿈결을 흐르던 강물에서 건져진 것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