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붉은 선을 따라서’
아마 2년 전쯤인가 어떤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소설을 쓸 때는 ‘가느다란 붉은 선을 따라서’ 써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가 말했다고 기억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 글에도 위의 내용만 있었지 따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습니다. 당시는 소설을 쓸 때는 아마 주제를 따라서 쓰라는 의미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진하고 굵은 붉은 선이 아니고 가느다랗다는 말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더 이상 따져볼 실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소설 합평 중에 선생님이 한 달에 소설을 15편을 읽었다고 하는 데는 솔직히 심장이 쿵 했습니다. 소설을 배우겠다고 어정대는 자가 소설을 몇 편도 읽지 않고 달려든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 대한 소개를 하셔서 당장 사서 읽어봤습니다.
읽어보는 중에 몇 가지 감상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3,40년 전에 읽은 김동인의 감자와 배따라기 생각이 났고―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다음에는 선생님의 ‘은비령’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둘째는 책의 앞쪽에 보면 저작권이 1979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36년 전의 소설인데 혹시나 ‘올드 패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오래 되었다고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경향과는 어쩌면 동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긴 셈입니다. 저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맞지 않나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셋째는 번역에서 효고, 아마가사키, 오쿠노토, 유미코, 다미오, 유이치, 도모코 등의 단어를 처음부터 한글로 쓰는 것보다는 괄호를 치고 한자를 한번은 표기해야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을 유미코라 처음부터 읽는 것 하고 由美子라고 한자를 써 주어 머리 속에 각인하고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넷째, 이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인데 ‘환상의 빛’을 읽으면서 유미코의 전남편에 대한 회상이 ‘가느다란 붉은 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원작자의 의도와는 제 생각이 틀릴 수는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유미코는 스물 다섯에 결혼하여 첫아이 유이치를 낳고 석 달만에 전남편이 전차의 선로 위를 걸어가면서 자살을 했다는 사실에 맞닥드리게 됩니다. 유미코는 전남편의 사후 4년만에 소소기 해안의 가난한 어촌에 사는 다미오와 재혼을 합니다. 남편 다미오는 큰 여관의 요리사이며 따뜻한 성격을 가졌고, 죽은 전처의 딸 도모코와 유미코는 사이가 좋습니다. 민박을 하며 남편을 도와가면서 생계를 꾸려갑니다. 죽은 남편과 사팔뜨기가 닮은 어떤 청년이 자살할 것 같아서 뒤를 쫓는 얘기, 마을의 도노메라는 여인과의 얘기를 끌어가면서 특히 소소기 해안의 바다의 모습을 다분히 ‘환상의 빛’이라고 여길 수 있게 의도적으로 작가는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스토리 가운데 이른바 ‘가느다란 붉은 선’ 즉 죽은 남편에 대한 사연을 유미코가 다미오와 재혼하여 소소기 해안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잘 섞어가고 있다고 저는 본 것입니다. 마치 천을 짜듯이 잘 직조한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냥 유미코의 얘기를 평면적으로 그리는 것보다 얘기의 두께가 풍성해지고 유미코의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얘기들이 하나의 ‘가느다란 붉은 선’을 중심으로 모아져 통일성을 이룬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상의 빛’에서 ‘가느다란 붉은 선’이랄 수 있는 유미코의 독백은 세어 보면 열네 군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짧게는 2행, 길게는 14페이지에 이르는 ‘가느다란 붉은 선’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전남편과 어릴 때부터의 추억과 결혼하게 된 경위를 얘기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왜 죽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절규합니다. 죽은 전남편의 사팔뜨기를 닮은 어떤 청년을 버스칸에서 만나서 그가 혹시라도 자살할지도 모르겠다고 뒤쫓아 가다가 그를 놓치고 유미코는 혼자서 통곡합니다. 전남편이 죽은 것은 이유 같은 것은 없고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녀의 오랜 방황에 결말을 맺으며 비로소 안도감을 느낍니다. 작가는 전남편의 죽음을 설명이 아니라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미지로 나타낸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 문장들이 아름답고 무언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자, 보세요, 또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이 소설 가운데 끝까지 전남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위에서 보이는 빛에 관한 묘사를 통해서 작가는 독자가 무언가 느끼도록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같은 책에 실린 단편소설 ‘밤 벚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아야코는 유조와 결혼하고 3년만에 이혼을 합니다.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남편이 회사 여사원과 외도를 한 것이 탄로가 나고 아야코는 인자한 시아버지의 만류에도 유조와 헤어집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불쌍하다고 커다란 집을 주어서 외아들 슈이치와 살게 배려를 하여 줍니다. 아야코는 일 년전에 슈이치를 교통사고를 당하여 잃었고 오늘은 기일이 다가와 전남편 유조와 자신의 집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집의 뜰에는 밤 벚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유조가 돌아가자 혼자 사는 집이 적적하여 하숙인을 구한다는 광고를 문앞에 붙인 것을 보고 어느 전기공사 가게의 청년이 와서 하룻밤만 하숙을 할 것을 간청하지만 아야코는 거절합니다. 청년의 곰살맞은 응대로 집안의 모든 전기기구를 고쳐준다는 말에 아야코는 허락하지만 저녁에 온 것은 청년 혼자가 아니라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옵니다. 그녀는 결혼을 한 신부였습니다. 이 집에서 신혼 밤을 지내겠다고 그들이 작정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집안에 있는 밤 벚꽃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신혼 첫날밤에 창가에 몸을 숨기고 정원 등의 잔광을 받고 있는 밤 벚꽃을 바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신혼부부를 엿본 아야코는 돌아와 툇마루에 앉아 벚꽃과 함께 밤새도록 깨어 있습니다. 밤 벚꽃을 보면서, 이혼을 했지만 유조를 끝까지 사랑했던 아야코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를 한 걸까요, 벌건 대낮의 벚꽃이 아니라 어둠을 배경으로 도드라진 벚꽃에서 쉰 살을 넘어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아무튼 이 소설에서는 밤 벚꽃이 크게 세 번 등장합니다. 처음은 전남편 유조와의 만남에서 두 번째는 전기공사 가게 청년이 아야코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세 번째는 아야코가 툇마루에 앉아서 밤 벚꽃을 바라봅니다. 저는 여기서 이 밤 벚꽃의 이미지가 이 소설의 ‘가느다란 붉은 선’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실린 ‘박쥐’라는 작품은 사실 왜 제목이 ‘박쥐’라고 했는지 여기서 박쥐가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란도라는 고등학교 때의 친구 얘기가 이야기 가운데 5분의 4쯤 차지하고 그 앞 뒤로 불륜 관계인 요코와 여관에서 만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어느 것이 이른바 ‘가느다란 붉은 선’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다시 정리하면서 대략 감이 왔습니다. 맞은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화자인 ‘나’는 어릴 때 친구 마쓰오카를 오사카 역에서 우연히 만나 역시 같은 친구였던 란도가 죽은 지 5년이 지났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란도는 고등학교 때 지금으로 말하면 ‘일진’ 같은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퇴학 후 야쿠자 조직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처자가 있는 나는 요코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요코와 만나서 여관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아무런 연관도 없이 고등학교 때의 란도 얘기가 총 25페이지 중 거의 18페이지에 걸쳐서 전개됩니다. 란도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란도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만나러 가는데 나를 동행한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란도가 그의 연인인 여학생을 만나는 동안 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두 사람이 숨어 있을 주변의 하늘에 엄청나게 많은 박쥐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밑도 끝도 없이 요코와의 여관에서의 밀회가 끝나고 갑자기 나에게 란도라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오늘 오사카 역에서 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때 란도의 모습이 마음에 스치고 ‘나’의 마음 속에서 박쥐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란도의 연인인 여학생의 표정과 요코의 표정이 비슷한 데가 있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여관에서 나와 요코는 시선당(詩仙堂)에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기다랍니다. 마치 그 옛날 란도를 기다리듯이. 요코는 나오지 않고 늦가을 저녁 시선당에 흩날리는 낙엽이 란도를 기다리면서 보았던 그 박쥐였습니다.
이렇게 길게 란도 얘기를 한 작가의 저의는 결국 란도와의 기억을 통해서 지금의 요코와의 관계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134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녹슨 철 빛의 어두운 하늘과 무수한 박쥐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와 인사를 나누었던 순간의 그 두려워하는 듯한,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는 듯한 여자애의 표정은 교토에 가고 싶다고 조를 때의 요코의 표정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결국 이 단편의 ‘가느다란 붉은 선’은 마지막에 세 번 나오는 ‘박쥐’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그것을 따라가면서 마쓰오카와의 만남, 요코와의 여관에서의 일을 섞었던 것이라고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가느다란 붉은 선’이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왕에 하던 것, 마지막 작품 ‘침대차’까지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가느다란 붉은 선‘이 아니라 오히려 붉은 선이 진하고 굵게, 숨어서가 아니라 전면에 나타나 있는 것이 앞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특이했습니다. ‘가느다란 붉은 선’을 침대차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래처와의 약속을 위해 침대차를 타고 가면서 회사 일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처음 침대차를 타러 가는 얘기가 전개되고 이어서 회사에서 계약을 따내는 일의 어려움, 상사 고타니와의 알력을 얘기합니다. 다음에 침대차에서 만난 노인이 나오고 그 다음 다시 회사의 얘기와 고타니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침대차에서 노인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가쓰노리가 자기 집에 놀러왔다가 강에 빠져 익사할 뻔 사건을 말합니다. 그 후 소식을 끊고 살다가 가쓰노리는 의대 3학년 때 열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시 침대차에서 노인은 사라지고 밝아 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골프 치러 간다고 말했던 고타니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담담한 수채화처럼 감정의 기복도 없이 한 회사원의 삶의 단면을 보는 느낌입니다. 어찌 보면 간이 너무 심심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느다란 붉은 선’에 대한 저의 이해가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가느다란 붉은 선’을 배경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또는 이야기들의 연결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소설의 작법이 이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저는 별로 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얕으므로 자신은 없지만―그러나 이것은 좋은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에게는 많은 공부가 된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