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결벽증인데 브런치에 글을 썼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이 한 번씩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지인과 안부 인사를 나눈 경험을 제외하면, 살면서 댓글을 달아본 적이 거의 없다. 지금은 어떠한 SNS도 하지 않는다. 카카오톡도 삭제했다가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재설치했다. 인터넷에 내 이름 안 나오게 조심조심 산다.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잊힐 권리’를 찾는다. SNS나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싫어하는 내 증상을 ‘SNS 결벽증’이라 명명했다.
언제부턴가 ‘소통’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좋아하지 않는 단어였다. 혼자가 좋은데 왜 섞이라고 하는지, 고립된 사유를 즐기는데 왜 나누라고 하는지 불만이었다. 이제는 안다. 타인과 교류해야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소통 잘하는 것’이 요즘 세상에 아주 잘 먹히는 중요한 능력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나랑 궁합이 안 좋아서 영 쳐다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내가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동네 사람들, 이거 보세요! 여기 좋은 글 있습니다.” 하는 게 부끄러웠다. 댓글을 주고받는 것이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브런치의 존재를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오랜 세월 눈길 주지 않았다. 내가 ‘발행’ 버튼을 누른다는 건 혁명과도 같았다. 구시대의 마음가짐을 단두대에 밀어 넣고 결단을 내리지 않는 이상 다가오지 않을 미래였다. 혁명의 불씨는 외부에서 시작되었다.
선봉에 선 이는 글쓰기 수업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첫날부터 말씀하셨다. 내가 쓴 글을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고. 블로그든 브런치든 원고료 주는 매체든 일단 남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 SNS 결벽증 환자는 소통과 공유가 손에 묻으면 깨끗이 닦아내는 사람. ‘좋아요’를 좋아해 본 적 없는 사람. 댓글 창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 선생님 말씀은 가볍게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서 선생님이 다시 브런치를 언급했다. 아직 글 안 올린 사람 빨리 올리세요, 하는 말에 학생 몇 명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려서 원고료를 받은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산뜻하게 귀를 닫았다. 선생님, 제 글이 낯을 많이 가려서요. 밖에 내보내면 큰일 나요.
하지만 우리의 선생님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을 지닌 사람. 이미 수많은 제자를 작가로 데뷔시킨 비법을 겸비한 사람. 이번에는 햇볕 정책을 파기하고 나를 콕 집어 협박하셨다.
“글 쓴 거 빨리 올리세요! 안 올리면 감옥에 보낼 거예요!”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었는데. 아뿔싸, 토네이도는 옷을 찢는다. 선생님의 음성이 교실을 가로지르자 나는 발가벗겨진 나그네가 되어 얼굴이 빨개졌다. 고개를 숙였다. 미소 짓는 선생님의 치아가 빛났다.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수업 시간에 제출했던 글 다섯 개를 저장하고, 작가 신청을 했다. 며칠 뒤에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메일이 왔다. 저장한 글을 다시 발행해야 한다고 했다. 눈을 질끈 감고 ‘발행’을 눌렀다. 조회수 숫자가 10에서 20으로 늘어났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 핸드폰에 시 쓰는 앱이 있었다. 오전 오후 7시에 단어를 제시해주면 사용자는 그 글감에 어울리는 아무 글이나 쓰는 앱이었다. 나는 필명으로 시를 썼다. 제시된 단어를 보자마자 시상이 바로 떠오르는 때도 있었고, 수첩에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궁리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재밌게 이용했다. 한창 빠졌을 때는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일하면서도 시를 떠올렸다. 아침 7시에 글감을 확인해서 오전 내내 아이디어를 다듬었고, 저녁 7시에 새 글감을 받아서 자기 전까지 고민했다. 시에 빠져 숱한 밤을 보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볼 수는 있지만 댓글 기능이 없어서 사람들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았다.
어느 날, 누가 내 시를 저장했다는 알림이 떴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담아 가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독자는 우울증이나 자살, 엄마에 대해 쓰면 좋아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내 시가 자유를 잃었다는 걸 의미했다. 자유를 잃은 시는 더 이상 시가 아니었고 나는 이전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 그러다가 앱이 업데이트되더니 댓글 다는 기능이 생겼다. 소통하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실 그게 맞는 방향이다. 사람을 연결해주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나의 성향과 맞지 않은 것뿐이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서로의 글을 담아 주고 안부 묻고 하는 행위가 거래처럼 보였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수 없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튼 좀 그랬다. 글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나중에 앱을 삭제했다.
브런치 글 올리고 조회수가 자꾸 신경 쓰였다. 내 인생 처음으로 ‘좋아요’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라이킷’은 발음마저 탐스럽다. SNS 결벽증 환자에게 ‘조회수’라는 알레르기가 올라오고 있다. 보지 말자, 보지 말자. 가려워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