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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를 다시 생각함

오래전 쿠바 여행 12

by 풀꽃 Aug 06. 2024

          

동트는 아름다운 비달광장은 잠시 고요했다. ‘잠시’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새벽 3시까지 아마도 호텔 지하의 클럽에서 나는 소리인 듯한 라틴 음악이 우리를 괴롭히다 겨우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원래 밤중이나 새벽은 고요한 줄만 알고 평생을 살았건만 여긴 뭐 하는 세상이란 말인가(아바나도 그랬다)... 그래도 아직 어둑한 아침의 광장은 가로등 빛만 고요하고 저 먼 하늘이 동이 틀락 말락 하니 아름답다. 감탄이 절로 난다. 참 예쁘게 잘 만든 광장이다. 광장이라지만 광화문이나 시청광장처럼 크지도 않다. 뜨리니닷의 마요르 광장도, 아바나의 ‘빠르끄 쎈뜨랄’도 조촐하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작은 ‘공원’ 같은 느낌...      

새벽의 비달 광장새벽의 비달 광장

쿠바사람들은 잠들지 않는다, 밤새 노느라

하지만 아름다운 비달광장의 고요는 금방 끝난다. 공원 나무에서 잠자던 쿠바 새들이 아침이 왔다고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나무 하나가 저 새들을 감당할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새들이 공원에 산다. 무서울 정도로 지저귄다. 밤 세시에서 아침 여섯 시까지, 하루 딱 세 시간 조용한 곳, 쿠바.....      

     

나는 여행을 다니는 동안 매일 밤 간단한 일기를 썼는데 산타클라라에서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체 게바라가 우리의 대통령으로 온다 해도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무상의 질 높은 교육과 의료를 주면서 자유와 맞바꾸자 해도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독선에, 오만에, 고집불통 역사왜곡 대통령이라니...’ 당시 대통령이 곧 탄핵될 줄 모르고 쓴 일기다. 2024년에 돌아보는 2016년 1월은 참으로 새삼스럽다.     


체 게바라를 다시 생각함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으나 체 게바라가 한 말이라고 알고 있었던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권력화를 지양한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나름대로 이 말을 내 삶의 지표 중 하나로 삼았다. 혹여 내게 알량한 권력이나 권위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의연하게 살겠노라는 자기 다짐일 뿐 아니라 어떠한 권위주의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것으로써. 체 게바라의 말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한 걸 보면 그저 그의 전기문을 읽다 정리가 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에 쓴 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처럼 진짜 무서운 사람은 어디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 욕심 없는 사람처럼 무섭고 멋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말을 체가 했든 안 했든 그는 스스로 가질 수도 있었던 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호사가들은 체 게바라가 일찍 죽지 않았으면 피델과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기도 하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 가서 죽게 된 데에는 피델의 음모가 있었다는, CIA의 이간질에 의한 ‘더리 dirty’한 가십도 있지만 그의 죽음은 참으로 그 다운 행적의 정점이다. 오래 살아서 쿠바의 미래를 밝게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죽어서도 쿠바를 이끄는 삶의 원동력(학생들이 수업 시작할 때 ‘우리는 체처럼 될 것이다’라고 외친다는데,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할까, 이 아이들은!), 심지어는 티셔츠 속에서 쿠바인들을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 훈훈한 사람이란 말이다.     


<체 게바라 평전>이 베스트셀러인 나라

2005년 즈음이던가. 신영복의 <강의>와 더불어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체 게바라가 누구인가. 그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장본인이다. 좀 단순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자인 그의 평전이 레드 콤플렉스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정체성을 알고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인지, 이념성을 제거하고 낭만적 혁명의 겉만을 핥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베스트셀러의 속성 그대로 좀 있어 보이는 책을 들고 다니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그 현상은 지금도 내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체 게바라 평전>의 ‘현실과 이념 모순’도 그렇지만 신영복의 <강의>가 베스트셀러인 것도 고개가 갸웃거렸다. 인문학을 전공한 내가 읽어도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공부가 필요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그런데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세상을 달리 보고 세상을 다르게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는 것인가에 대해 조금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체 게바라의 낭만에 대하여어~’

대중이 체 게바라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이념 때문이 아니다. 그를 민중에 대한 따뜻한 박애와 감성을 지닌 ‘실천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말에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당당히 체 게바라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무탈한 이유도 그가 가지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이미지 때문이리라. 총의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가 결합된, 민중에 대한 애정과 의사 출신이라는 출신성분이 어우러져 더욱 고상하게 보이게 하는... 그래, 네가 그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거겠지, 설마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건 아닐 터이지? 이런 시선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위험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의 아이콘으로보다는 ‘이상을 꿈꾸었고 그것을 이루려 노력했던 인간’으로 여긴다. 폭넓은 이상을 품고 사는 이는 얼마나 되며 더구나 그 이상을 이루려 온몸으로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되려나. 게다가 그 이상을 이룬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나. ‘우리 모두 꿈을 꾸자’고 속삭이기도 하고 외치기도 하는 달콤한 선동가. 

하지만 그는 또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그가 특별한 것은 ‘이루지 못한 꿈의 안타까운 아름다움’이 아닌, 꿈꾸고, 실천하여 결국은 이루어 낸, 독특한 ‘현실주의적 낭만’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분명 쿠바의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이데올로그이기도 했다. 이전에 책에서 읽었겠으나 그냥 무심히 넘기고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이미지와 환상(적)인 잔영 때문에 놓쳐버린 바, 그는 그냥 꿈만 꾼 사람도, 실천만 한 사람도 아니었다. 비전과 대안을 지녔던 사람이다.     


혁명의 과정, 우리에겐 없지

혁명이든 개혁이든, 그냥 진보적 발걸음이든,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1. ‘현사태를 정확히 직시함 ’ 

→ 2. ‘직시에서 비롯된 논리적인 비판’ 

→ 3. ‘적과 싸움, 혹은 싸워 이김’ 

→ 4. ‘이긴 후 무너뜨린 폐허 위에 무엇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 제시’ 

→ 5. ‘그 대안을 실현시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쿠바의 국회의사당쿠바의 국회의사당

체 게바라는 5단계, 그 너머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그냥 총 들고 불도저를 이끌고 무기 차량을 탈취한 혁명가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었다. ‘건설 쿠바’에까지 나아갔으며, 건설에서 자기가 빠져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에서 자리를 놓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사무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놓고 떠남, 영원히 산화함’의 미학에 있겠지만 나는 내가 그 앞 단계를 미처 못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막 싹트기 시작한 쿠바에 무엇을 심어 놓았는가를 말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산업부 장관 등을 하면서 해낸 일들을 말이다. 그 부분을 정확히 봐야만 체를 온전히 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소비되는 티셔츠 속의 체 게바라가 아닌, 이론과 대안을 지녔던 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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