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쿠바 여행 11
일단 ‘호텔 산타클라라 리브레’에 도착해 보니 아름다운 비달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3층 방이 아늑하고 꽤 마음에 든다. 우리는 앞으로의 쿠바 숙소가 ‘더도말고덜도말고 여기만 같기를’ 바랐다. 방은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고 더운물도 잘 나온다. 큰 도시는 아니지만 시내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광장에는 주점, 햄버거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서점, 도서관, 극장, 다 있다. 나중에 보니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10층짜리 우리 숙소는 눈에도 잘 띄었다. 초저녁에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는 비달 광장은 참 아름다웠다. 책에서 본 대로 밤늦은 시간까지 광장 의자에는 연인들, 가족들이 앉아 두런거린다.
비달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호텔 산타클라라 리브레’
하여간 일단 짐을 놓고 당장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바라데로에서 먹은 랑고스타(랍스터)와 쿠바 전통의 콩밥(밥에 콩죽 같은 것을 얹어 먹는 건데 굉장히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맛있어서 거의 식사 때마다 마셔댔던 쿠바 맥주 ‘부카네로’까지, 우리에게는 쿠바 음식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별걱정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사실은 여행 가이드 북에서 본 중국음식점을 갈 요량이었다. 국물과 야채가 부족한 여기 식단이 답답했던 풀씨의 선택이다.
아침부터 굶어 배가 고픈데 초행길의 헤맴은 더 길고 길게 느껴진다. 같은 자리를 뱅뱅 돌면서 책에 나온 길 안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투덕거리다 우리 집 ‘돼지’ 딸은 결국 짜증을 내고 만다. 상냥한 성품이지만 배고픔에 민감한 녀석이라 그렇다.
가이드북의 그 음식점은 어디로?
우리가 그 집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의 길눈이 어두워서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없어져 버렸던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뱅뱅 돌면서 여기가 무슨 거리냐 아니냐를 다투고 있었으니. 결국 ‘아무 데나 들어가서 피자 같은 거 먹자’ 결론.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 가니 손님은 다섯 명, 일하는 사람이 세 명이다. 어디선가,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다 보니 일거리에 비해 일하는 이가 더 많은 일터가 있다는 글을 읽은 것도 같다. 우리 세 명에게 주문하고 음식 가져다주고 비용을 계산하는 데 그 세 명의 친절한 언니들이 총동원된다. 그리고도 손님이 없어 남는 시간에 그들은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결국 나중에 돈 계산할 때는 한 사람은 품목을 읊고 한 사람은 옆에서 종이에 일일이 적어주는 느긋하고 친절한 장면을 연출한다.
손님은 다섯인데 종업원이 세 명
그런데 이 식당, 이렇게 손님이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근 10년간 외식한 가운데 가장 맛없는 식사... 이 거리에 넘쳐나는 ‘아기가 젖 토한 후에 나는 냄새’ 비슷한 그 냄새의 정체는 치즈 냄새였다. 딸이 시킨 치즈 스파게티에는 면 위에 햄 몇 조각과 분홍색 치즈가 얹어져 있었는데 그 냄새가... 오해는 마시라. 치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대체로 다양하게 치즈를 즐기는 편인 나이지만 그것만은 접시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야채가 고파 ‘베즈터블과 소시지 샐러드’를 시킨 풀씨에게는 배추를 얇게 저민 것 한 젓가락과 오이 열 조각 정도가 나왔다. 얼음이 서걱서걱한 냉동 소시지와 함께.
산타클라라에서부터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과 활력을 찾았기에, 만약 식사마저 훌륭했더라면 우리는 평생 산타클라라를 잊지 못할 뻔했다. 너무 깊은 추억을 남겨주지 않으려고 대신 최악의 식사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그 식당에서 우리가 시킨 것 중 가장 알찼던 것은 ‘나뚜랄 아구아 그랑데 우노(natural agua grande uno)’. 이게 뭐냐고요? 직역하면 ‘그냥 물 큰 거 한 병’. 1.8리터 정도의 물이다. 유럽도 그렇지만 여행 가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느끼는 것은 화장실, 지하철, 그리고 마실 물이다.
한 번은 물을 사러 슈퍼에 간 풀씨가 큰 쿠바콜라(‘툭 콜라’라는, 딸이 ‘활명수 맛 나는 쿠바 콜라’라고 표현한 콜라다)를 들고 온 일이 있다. “이걸... 컵라면도 못 끓여 먹고 새벽에 일어나 벌컥벌컥 마시지도 못하는 콜라를 왜?” 하고 물어보니 슈퍼는 문을 닫았고 할 수 없이 호텔 라운지에 있는 콜라를 사 왔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콜라는 토사곽란으로 고생한 딸과 내게 수분과 당분을 모두 공급한 ‘탈수방지 포도당(?) 공급용 수액’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이 또한 풀씨의 놀라운 예지력이 아니었을까 경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