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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Jul 30. 2024

체 게바라가 있는 산타클라라로

오래전 쿠바 여행 10

     

(이 이야기는 2016년 1월의 쿠바 여행기이다)

쿠바에 온 지 여섯째 날, 우리는 체 게바라의 유적지인 산타클라라로 갔다. 산타클라라는 1959년의 쿠바 혁명에서 ‘결정적 한방’에 해당하는 ‘열차 전복 투쟁’이 있었던 격전지이고 체 게바라의 유해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관광의 요소가 별로 없는 작은 도시라 하루 정도 일정이면 소화가 된다. 하지만 내게는 하루 반 정도 머물렀던 그곳이 쿠바 여행 중 가장 큰 기억으로 남는다.     

 

총탄 자국 남아 있는 호텔, 산타클라라 리브레

우리가 머문 ‘산타클라라 리브레’ 호텔은 비달 광장 한복판에 있는, 높은 건물 찾아보기 어려운 쿠바에서도 눈에 띄는 10층짜리 건물이었다. 시내 어디서나 눈에 잘 띄고 찾기 좋았던 점도 좋았지만 남편이 찾아낸 정보에 의하면 혁명의 격전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 유적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호텔 벽면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총알 자국이 다다닥 남겨있다. 혁명군과 정부군 사이의 총격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 흔적을 지우지 않고 지금도 사람들이 머물러 함께 숨 쉬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것이 ‘성공한 혁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호텔 산타클라라 리브레


쿠바 여행 도중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마음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무지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기에도 부끄럽게 남아 있는 유산이 별로 없는(잦은 전쟁이나 식민지 역사 때문이라는 핑계가 무색하게 실은 많은 부분이 근현대사의 독재자들에 의해 망가지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와 비교해 쿠바에 와서는 자기 스스로 역사를 일군 자들 앞에서 또 마음이 씁쓸하다.      


마차 택시, 올드카보다 재밌다

엘리뇨 때문이었던 걸까? 건기라던 쿠바는 전역이 꾸물꾸물하다. 산타클라라에도 구름이 여전히 많다. 우산 하나 챙기라고 말만 했지 내가 직접 챙겨주지 않은 탓에 풀씨(남편)는 결국 한국에서 우산을 안 가지고 왔다. 비가 올락 말락 할 때마다 우리는 ‘부부싸움’ 비슷한 걸 했다. 

“그러게 우산 하나 챙기랬지! 으이그, 내가 그냥 넣었어야 하는 건데...”와, 

“건기라며~? 무슨 건기에 비가 와~!” 사이를 왔다 갔다, 똑같은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하다가 침묵이 흐르고 조금 있다가 하하거리다가 끝나곤 했다. 다음 날도 다시 하늘이 흐려지면 또 비슷한 대화를 반복하고...    

  

산타 클라라의 마차 택시와 쿠바 청소년들

흐리거나 말거나,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바라데로를 떠나오는 기쁨에 산타클라라의 낯선 풍경들이 다 좋게 느껴졌다. 터미널에서 손님을 부르는 마차택시에 얼른 올라타고 ‘오뗄 산따클라라 리브레(Hotel Santa Clara Libre)~!’를 외친다. 마차 택시, 이거 은근히 재미있다. 옆에가 다 뚫려 있어 시원하지, 매연 냄새 안 나지,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 골목골목이나마 사거리가 나오면 반드시 서서 좌우를 살피고 출발한다. 중앙선 따위 그려져 있지 않지만 자동차와 오토바이, 마차가 알아서 어우러져 질서 있게 잘도 간다.   

        

서로 다른 나라 언어를 알아듣다니

비아술(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차택시를 타고 한참 지나가다 보니 대체로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에서 눈에 띄는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쿠바 국기가 흩날리고 있다. 택시 아저씨는 그걸 가리키며 뭐라뭐라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는데 풀씨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한국말로 

“나중에 갈 거예요.” 한다. 


이런 요상한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다시 한국어로 통역을 요청한다. 

“뭐랬어?” 

“저기, (체 게바라)기념관, 들렀다 갈 테냐 해서 아니라고 했어.”      

        

....천재다... 그걸 어떻게 다 알아듣지? 딸의 말에 의하면 아빠가 잘 알아듣는 게 아니라 엄마가 듣기를 잘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여간 우리 둘 사이에 능력의 격차가 있는 건 사실이다.      


말귀 못 알아듣는 연애를 했었다

나 스물, 풀씨 스물한 살 가을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도무지 저 남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 정말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한 시간 이상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할 만큼 언어의 장벽을 많이 넘어섰다. 그럼에도 우리 둘의 언어는 냉정과 열정 사이, 논리와 감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원형적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그건 ‘남자와 여자의 언어’ 문제는 아니다. 나는 여성적 언어를 구사하는 편이 아니며 성품도 여성적인 편이 아니니까.   

   

풀씨는 근본적으로 시인의 심성을 지녔고 때로는 매우 비논리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매우 특이한 종의 인간이고 나는 아주 현실적인 편이다. 이렇게 언어 능력에서 전혀 다른 영역을 살고 전혀 다른 능력 혹은 결핍을 지닌 둘이 다투지 않고 25년, 아니, (만난 때부터 따지면) 30년을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모든 공은 오로지 천사 같은 성품에 경청 대마왕 풀씨에게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하여간, 풀씨의 듣기 능력은 내가 볼 땐 거의 초능력에 가깝다. 외국인과도, 동물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외계인을 만나도 소통이 가능하지 싶다. 어떻게 그게 되는 거냐고 경탄하는 내게 그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풀씨의 외계어듣기능력은 투 비 컨티뉴드~

반제국주의적 내용의 거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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