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쿠바 여행 1
엊그제 우리 나라가 쿠바와 수교를 맺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정부의 외교는 종잡을 수도 없고 뜬금없어서 얼떨떨하다. 그래도 나의 사랑하는 쿠바와 친하게 지낸다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 보련다. 뭐 내가 모르는 북한과의 관계의 복잡한 의도와 외교적 지도, 숨겨진 정권의 기도가 있을지라도 중도에 어긋나지 말고 두 나라의 관계가 탄탄대로로 쭉... 갑자기 웬 또 아잼개그를... 하여간...
나는 이미 2016년에 쿠바에 다녀왔다. 먼 훗날 쿠바까지의 직항이 뚫리면 우리 단 둘이 꼭 다시 한 번 다녀가자고 남편과 손가락을 걸었다. 솔직히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날까지 그런 날이 오리라는 믿음은 서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을 아주 버리진 말아보자. 그리고 꽤나 오래 전이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나라 쿠바는 8년이 지난 지금도 많이 변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오래 전 여행기를 다시 들춰 본다.
8년 전, 내가 쿠바에 가고 싶었던 이유
쿠바에 가고 싶다, 쿠바에 가려 한다, 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대개 “와~ 멋지다~! 그런데 쿠바도 갈 수 있어요?” 이런 반응이 온다.
아니면 “쿠바? 위험하지 않나?” 라고 묻기도 한다.
“쿠바? 체 게바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그런 세 점 선 긋기의 연장선상에 놓고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럼 일단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왜 쿠바에 가고 싶은지.
1. 그래, 체 게바라, 그를 만나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빅토르 하라도 좋아하고 프리다 칼로도 궁금하지만 딱히 칠레나 멕시코에 가보고 싶지는 않다. 체 게바라도 분명 인간인지라 들추고 들추다 보면 이면에 지나치게 인간적인 무슨 스토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히 그런 이야기들이 두렵다. 간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야사(野史)나 우리나라의 존경받는 환경 관련 오피니언 리더 ‘누구’가 자기 강연료를 ‘쎄게’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는 이야기, 존경받는 노동운동가 아무개가 자기가 이끄는 단체에서 그토록 권위주의적이더라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막 세상이 다 환멸스러운 것이다.
정신적인 지주들이여, 정신적 지주로 남아주라. 이 땅에 가진 물건 별로 없고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어떤 이들은 유독 정신세계만은 잘 가꾸며 살고 싶은 욕심들이 있다. 그래서 책으로 만난 사람들을 귀히 여긴다. 당신들처럼 드높은 명예와 세상을 바꿀 지도력, 추진력을 가지진 못하더라도 그런 귀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 받으며 그저 이 우주에서 소소하게 살다가는, 그러나 올곧은 영혼이고는 싶은 거다. 그렇게 가꾸는 정신세계의 한 영역에 맑고 투명한 정신적 롤 모델로 그대를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체 게바라는 조금은 먼 곳 어딘가에 살았던, 아직도 살고 있는, 내가 알고 있는 20세기의 완벽남으로 남았으면 딱 좋겠다. 어쩌면 가까이 가서 그 환상이 깨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까 체 게바라는 쿠바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긴 해도 ‘결정적 이유’는 아님을 밝혀두는 바이다.
2. 이루지 못한 세상을 보고 싶다. 사회주의는 그야말로 이제 ‘이상(理想)’이다. 어차피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실현돼 본 적이 없고 실현될 수 없는. 흘러가다 망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 무수한 사회주의의 흐름의 어떤 장면 하나, 하나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매달고 살기도 한다. 스탈린이 움켜쥐기 전의 레닌의 이상,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절의 마오, 눈발을 헤짚던.... 아니, 아니, 너무 많이 갔다, 하여간, 굶주리던 다락방 시절의 마르크스(Marx), 그리고 그와 우정을 나누며 지적인 스파크 속에 지나치게 선명한 신경으로 살았던 젊은 날의 엥겔스도 함께... 그리고 옥중에서도 멋진 말 마구마구 날려주시던 그람시도... 스스로의 열정을 못 이겨 거리의 별이 되어버린 로자 룩셈부르크... 그들이 아름다웠던 것은 그 드높은 정신세계가 지상에 구축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쿠바를 들추면, 엄밀히 말해 쿠바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들추면, 거기 그 이루지 못한 이상과 상상의 한 자락이 살짝 보이는 듯도 싶다. 그저 전설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쿠바는 이 지상에 그나마 근접한 사회주의의 이상을 불완전하게나마 조금은 아주 ‘쪼끔’은 보여준다고 한다고 한다고 한다더라. 전 국민 무상의료와 문해율(文解率) 99%를 자랑하는 무상교육, 그것도 질 높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진정으로 궁금하다. 정말 알고 싶다. 어떻게 무상의 고차원 의료가 가능한지, 창의력을 키워주는 다정한 교사들이 있는 학교 교육이 가능한지가 말이다. 가서 보고 싶다.
사실 이념으로 구축한 사회 시스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면 뭐하나? 안다고 해서 그것을 가져와 이 땅을 변화시킬 자신도 없구만. ‘쿠바에서는 교육을 이렇게 한다더라~’ 뭐 이러고 좀 떠들다 말겠지. 그래도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구경 좀 해보고 싶은 것이다. 쿠바의 학교를, 도시농을. 이야기 듣고 싶은 것이다. 쿠바의 의료체계를, 재난방지 시스템을. 아, 들어도 알아듣지는 못하겠구나. 내가 아는 스페인어는 ‘올라~’와 ‘뽀르 파보르~’ 그리고 우노, 도스, 뜨레스 같은 숫자 1~10 정도가 고작이니. 그래도 또 아나? 가서 둘러보다 보면 ‘그런 기운’이나 느낌적인 느낌 같은 게 찌리리하고 직관으로 다가올지? 나도 우주의 기운을 조금은 믿는 사람이거든...
3. 내가 쿠바에 가고 싶은 네 번째 이유는 그곳이 가난하대서이다. 가난이 좋은 건 아니다. 나도 길고 깊게는 아니지만 ‘가난해 보’았다. 상대적으로 늘 마음이 풍요로운 탓에 가난한 줄 모르고 살았을 뿐이었지. 먹는 걸 별로 관심 없어 하는 체질 덕분에 돈이 없어 뭘 충분히 잘 먹을 수 없었을 때에도 그게 아쉬운 줄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그렇게 철없이 가난의 언저리에 살짝 발을 담갔다 뺀 경험만 있어서 그런지 ‘가난’이란 단어는 내게 ‘안빈낙도’, ‘청렴’, ‘정신적 풍요’, ‘배고픔을 대신할 지적 활동’ 이런 것으로 연상된다. ‘시인’이나 ‘선비’, ‘없어도 나누는 공동체’ 이렇게까지도 연장되는, 그러니까 꽤 고귀한 가치로 느껴진다. 진짜 가난이 뭔지 모르는 한심한 소리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내 피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난한 낙관주의와 낭만적 기질,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글자만 보면 좋아하는 좀 허술한 문민주의가 있어서 그런다.
하여간, 쿠바는 비참하지 않은 가난, 사람의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낙천적 가난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미국애들이 보면 한심할 것이다. 아니 돈도 없는 애들이 참 지나치게 명랑해, 쟤들은... 웃겨... 이럴지도... 그런데 그게 내 눈엔 멋져 보인다. 나는 그런 쿠바의 낙천이 좋게 느껴진다. 궁금하다. 돈 없는데 어찌 그리 명랑하며 어찌 그리 나름 행복한지 궁금하다. 가서 물어봐도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고 또 대답해 줘도 내가 알아들을 리도 없건만 그래도 가서 한 번은 물어보고 싶다. “우째 그리 행복하오?”
4. 물론, 그들이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들었다. 나는 체 게바라 이야기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물론 이건 쿠바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 시절 그가 고국 아르헨티나를 오토바이로 여행한 이야기다)도 보았고 <하바나 블루스>라는 영화도 보았으며 한국인 여자와 결혼한 쿠바인 이야기 <쿠바의 연인>이라는 독립영화도 보았다. 영화라면 어지간히 미화도 시켰을 법한데 영화 속의 쿠바는 사실 초라하고 구질구질해 보인다.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을 동경하고 돈 벌기를 희망한다.
Quiero viajar a Cuba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내 마음 한켠에는 쿠바인들이 느낀다는 절망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이들의 고통만 하겠나 싶은 의문도 든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정치적으로 가장 무거웠던 1970년대, 1980년대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이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고 기억되는 이유는 정말 그 시절이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때는 있었다. 좀 극단적이지만 직장을 포기하고 싸우면, 목숨 바치면, 세상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했다는 거다.
그래, 쿠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단다. 가난해서 행복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 이미 행복하지 않단다.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아 불만이 많단다. 그런데.... 그래도... 그들에겐 아직 광장이 남아 있고 골목이 남아 있단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다. ‘우린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망한 건가’라는 절망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가장 쿠바에 가고 싶게 만들었던 장면은 요시다 타로의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되고 가로등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의자를 들고 집 문밖에 나와 앉는단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단다. 도란도란 떠들고 술도 한잔 한단다. 아, 나는 저런 장면이 마치 꿈속에 두고 나온 장면 같다. 외가에 갔을 때, 아마도 무슨 외할머니 생신이나 이런 잔치 때였겠지만 마당을 가운데 두고 디귿자로 둘러지은 큰 한옥에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엄마랑 친척들이 마당 수도에서 채소도 씻고 전 같은 것도 부치고, 나는 동생들이랑 강아지를 구경하고 했던 풍경...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수줍어하면서도 그런 ‘둘러앉음’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걸 우린 잃어버렸다. 그리고 솔직히, 이제 여기 이생에서 그걸 다시 찾을 수나 있을까 싶은데 어딘가에 그런 비슷한 풍경이 아직 남아 있다고들 한다. 그게 쿠바라고... 그러니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물론 환상은 깨어질지도 모른다. 깨더라도 가서 보고 깨어져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2016년 1월 13일,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어여쁜 Mi hija(나의 딸)와 그의 부친이자 나의 남친인 ‘김풀씨’와 더불어 쿠바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