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쿠바 여행 2
쿠바는 ‘언젠가 갈 곳’이라는, 어쩌면 그 ‘언젠가’는 꽤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나라였다. 일단 심리적으로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멀다. 비행기 직항도 없고 가는 시간도 길고. 대개는 두 번 정도 갈아타야 하고 대기 시간 포함 총 비행시간이 40시간 가까이 되니까. 사람 마음이란 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처지가 되면 가장 최적화된 곳을 먼저 찾게 되지 않나. 쿠바는 꼭 가보고는 싶어도 여러 환경이 뒤로, 뒤로 미루게 되는, 그런 나라였던 것이다.
한때 ‘우주의 기운’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왜곡된 적이 있다. 진의를 확인하고자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찾아 읽었다. 한때 몹시 ‘핫’했던 <연금술사> 대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었다>를 읽으면서 파울로 코엘류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주인공 앞에서 피아노를 쳐주던 젊은 남자 환자... 이름이 뭐였더라? 그 장면에서는 조금 울기까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금술사>에서 감동 받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지 싶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는 말을 마치 ‘하면 된다’는 말처럼 해석했다는 어떤 이의 독해법에 경악하면서, 정확히 책엔 뭐라고 쓰여 있는지 궁금해졌다(그렇게 책을 오독, 인용하는 것은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후딱 읽었다.
물론 사춘기 감성으로 읽으면 참 아름답게 느껴질 문장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해도 이 책의 진정성은 결코 ‘하면 된다’에 있지 않다. 인간과 우주의 교감을 중시하는, 다분히 칼 구스타브 융적인 철학을 조금 쉬운 말로 써놓은, 괜찮은 소설인데 말이다.
우주는 그의 간절함을 알았을까?
주인공 산티아고가 이집트에 도착해 자신의 소망인 ‘피라미드’에 가기 위해 잠시 알바를 한다. 크리스털 가게에서. 그 주인은 최저임금 이상의 시급을 주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능력 있는 알바생을 대우할 줄도 알았고, 그를 단지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인력’으로만 생각하지 않았기에 산티아고가 내놓는 각종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수용할 줄도 알아 가게와 산티아고가 모두 번성하게 된다. 산티아고가 주인에게 소원이 무언지 묻자 그는 이슬람교도답게 ‘돈 많이 벌면 죽기 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것’이라고 답한다.
돈을 충분히 많이 벌었으니 이제 성지순례를 다녀오시지 그러냐고 산티아고가 권했을 때 주인이 뭐라고 했을까?
가지 않겠노라 한다.
왜? 언젠가 성지에 다녀올 것이라는 것, 그 목표 하나를 바라보고 이 무위한 삶을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성지를 다녀오고 나면?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겠지. 그렇다면 삶을 이어나가야 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 사람이 행복한가 아닌가는 ‘바라는 바가 있는가, 아닌가’에 달렸다. 밥을 많이 먹어 포만감을 느낄 때도 행복하겠지만 배가 고픈데, 조금 있으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는 그렇다. 지금의 피로와 결핍 그 너머에 휴식과 만족이 올 수 있다고 기대될 때, 그게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을 때는 그 피로와 결핍도 결코 불행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니까 쿠바도 나에게는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먼먼, 겁나 먼(far far away) 나라’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였구나. 물론 산티아고의 가게 주인처럼 그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라 다녀오고 나면 그만 삶의 의욕을 상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나중에 이룰 목표가 몇 개쯤 있고 그중 몇 개는 죽기 전에 끝내 이루지 못하고 죽고(그래야 죽는 순간 혹시 다음 생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뭐 그런 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소망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거다
그렇게 남겨놨어도 좋았을 쿠바를 서둘러 가게 된 이유는 이렇다.
그 시점(2016년) 미국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려 애쓰던 시기였다. 당연히 참 잘된 일이다. 미국을 좋아하진 않지만 쎈놈과 척져서 좋을 건 없다. 쿠바의 강단이 좋았고 북한처럼 이상한 짓을 하지 않으면서, 즉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을 당황하게 하는 유연함도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기 사는 사람들이 너무 힘든 건 좋지 않다. 먹고 사는 문제를 옭죄고 ‘멋짐’만 유지하라고 하는 거, 잔인한 일 아닌가.... 그런 면에서 참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미국화 상업화, 자본주의화, 즉 배금주의로 오염되는 일이 생길 가능성도 높지만 쿠바다움과 적절한 물질적 여유가 잘 어우러져 기대 이상의 멋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후자에 한 표를 걸겠다.
하지만 그건 기대와 가능성의 이야기이고 아직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일이고, 내가 보고 싶었던 쿠바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전 해에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자본에 물들기 전의 쿠바’에 얼른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여행사 광고에는 대놓고 ‘스타벅스에 물들기 전에! 맥도날드 들어오기 전에! 가봐야 할 나라, 쿠바!’라고 써놓기까지 했던 걸 보면 쿠바에 관심 가진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긴 했나 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그 전 해는 내게 매우 힘든 해였다. 좋은 의미이긴 하지만 너무나 많은 ‘대외적인 활동’을 했다. 육아와 살림, ‘즈질체력(低質體力)’으로 인해 집과 직장에 최선을 다하는 그 이상의 사회적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던 2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자녀들이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슬슬 다시 잃었던 나 자신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책을 두어 권 내고 여기저기 강의도 가고 시사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이 모든 일들은 다 즐거웠다. 매일 밤 엎드려 노트북을 두드리며 강의 준비, 연수 준비, 원고 작성을 하느라 팔꿈치에 각질이 생긴 걸 보고 딸내미가 ‘엄마, 참 없어 보이게 그게 뭐냐~!’고 핀잔을 줄 정도로 바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소망을 이룰 때
비교적 한가해지기 시작할 무렵, 이제 지난 2년여 동안의 에너지 분출로 인해 피로해진 나에게도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행 가자!
그러던 참에 미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 뉴스가 뜬 것이다. 남편과 나는 언젠가 둘이 꼭 가자, 고 손가락 걸었던 그 쿠바에 이번에 꼭 가기로 했다. 자기는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노라는 아들을 빼고, 갓 대학에 들어가 아프리카라도 따라갈 기세인 스무 살 나의 딸 아이와 셋이서. Viajé a Cuba con mi marido y mi hi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