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과 헝겊 토끼 인형 만들기 3
드디어 어제 인형반 첫 수업.
열심히 자기 이름 홈질로 수놓기를 하는데 열어둔 복도 창문으로 뽀얀 봄 햇살이... 아니고 웬 시커먼 덩치가 나타난다. 축구부 학생이다. 외모는 흑곰처럼 생겼는데 애교가 많아 친구들이 '징그러워, 그만해!'하는 중3 학생.
"선생님, 저희도 바느질 하고 싶어요."
그럼그럼, 우리 동아리 들어와도 돼. 라고 말하는데 그애는
"왜 축구부는 인형을 만들수 없는 겁니꽈~!" 이런다.
축구부 아이스하키부 기악반 등 고정 동아리 학생들은 수업 중에 있는 정규 동아리를 선택하지 않고 자기 반에 들어가야 한다. 축구부 선수인 그 학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구화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운동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하다가 아마도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들어온 것 같다.
"제가 이래 봬도 감성이 풍부합니다."
작년에 가르친 학생이라 내가 너를 잘 안다만, 감성은 모르겠고 애교는 풍부하더라. 물론 수업 시간에 딴짓을 많이 해서 (가령 엎드려 잔다거나 화장실 보내달라 하거나 학습지를 안 풀고 있다거나) 지적을 하면 애교로 눙치고 넘어가려 했던 터라 그 애교가 사랑스럽지만은 않았던 게 흠이지.
교실에서 열심히 홈질로 자기 이름을 수놓고 있던 우리 동아리 학생들은 지민 선수의 등장에 한바탕 대성통소(?)를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한땀한땀 긴장하며 수놓는 소년들을 여러분이 봤어야 한다).
그렇게 잠시 웃음을 주고 흑곰 선수는 떠나고 우리 교실엔 다시 바느질의 집중하는 호흡이 가쁘다.
나는 가끔 내가 미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안 해도 될 것까지 하거나 너무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거다. 이번 인형 동아리도 혼자 기대치가 만렙, 혼자 걱정 만땅, 그렇게 한 달을 보낸 것도 모자라 다른 수업처럼 준비만 철저히 하면 아이들이 착착 알아서 해야 하건만 두 시간 내내 여기저기 다니며 직접 바느질을 가르쳐 주느라 단 1초도 쉬지 못했다. 심지어 1인당 1실패를 주었는데 여섯 가닥으로 된 자수실을 뽑을 줄 몰라 6줄 모두를 바늘에 꿰어 놓고 낑낑거리는 녀석이 한둘이 아니다. 아, 그렇지? 내가 실은 한두 가닥만 뽑아 쓰란 말을 안 했구나? 그러니까 당연히 알긋지, 이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실은 적당한 길이로 자르겠지? 노! 1미터 가까이 실을 잘라 꿰어놓고 다 엉켜서 허둥대는 아이도 있고 바느질 시작도 하지 않고 매듭 짓는 연습만 줄창(아니, 연습이 아니라 매듭을 못지어서 계속 고생, 계~고생 중)인 학생든 있다.
와, 어찌 이리들 못 하는지.... 그런데 애들은 또 왜 이리 착한지. 우리가 만들 인형 눈깔처럼 까만 눈동자를 꿈뻑이며 소심한 목소리로 "저... 서,선생님? 이렇게 하는 것 맞나요?"하고 나를 부른다. 그렇게 피땀흘린 두 시간이 지날 무렵 내가 진심으로 물었다.
"얘들아, 우리 올해 안에 인형 완성할 수 있을까?"
"못 할 거 같아요~!"
왜 그럴 땐 그렇게 우렁찬 거냐. 하지만 걱정마라, 이제 다음 달에 헝겊재단하기부터 시작하면 6,7,8,9,10월까지 다섯 달이 있다. 열 시간! 열 시간이면 토끼 한 마리는 완성하겠지!. 그리고 바느질 솜씨란 게 원래 또 가속도가 붙는 거거든? 처음에는 디디거리도 말이다. 기대하시라.
그날 수업에서 들은 가장 힘이 나는 말은 이거였다.
"선생님, 인형 만들 때 선생님이 인형본을 주신다고 했죠? 제가 원하는 대로 변형해도 되나요?"
당근이다. 힘들까봐 틀을 제공하는 것뿐, 제일 좋은 건 네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 그런 기쁨을 알아가는 것. 그걸 해보고 싶다는 두 학생,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