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생활의 발견> 자주 꺼내어 읽고 싶은 책

와타나베 쇼이치

by Kelly

어디에선가 이 책 제목을 보고 적어 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속지가 누렇게 되어 나이 많은 책인 줄 알았더니 2011년에 태어났다. 책은 처음부터 나의 지적 목마름을 채우며 호기심을 동하게 했다. 중간쯤 읽다가 책을 소장하고 싶어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한국어 책이 절판되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헌책도 하나도 없었다. 놀란 마음에 혹시나 하고 네이버에 검색하니 이상하게도 알라딘에 헌책으로 있다고 나와서 바로 주문했다. 밑줄을 그으며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평론가이자 교수이며 동서양에 걸친 폭넓은 학식과 통찰력을 가진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이 한국에서 나올 당시 조치대학 문학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가 여러 방면에 깊은 조예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도서관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집필을 할 사람이라면 관련 책으로 채워진 서가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도 급히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10년쯤 책을 읽고 모으다 보면 그 분야의 지식이 쌓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관련된 책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동안 책을 다 정리하고 요즘 들어 책장을 구입해 서가를 채우고 있는 나에겐 참으로 산뜻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새벽예찬을 비롯해 수많은 책을 쓰신 장석주 시인이자 작가에게도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양의 책으로 찬 서가가 있다. 이 책의 저자와 다른 점이라면 장석주 님은 책에 낙서를 하지 않고 깨끗하게 본다는 것이고, 와타나베 쇼이치는 밑줄은 기본, 수많은 메모를 하며 읽으라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의견인데 그 이유가 둘 모두 합당하다. 장석주는 다음에 볼 때 메모나 밑줄에 의해 사고가 좌우되지 않기를 위함이고, 와타나베 쇼이치는 나중에 메모만 보아도 책의 내용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때로 책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때로는 소중히 아무 표시도 하지 않고 읽기도 한다. 책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독서 방법을 선택하면 되겠다. 개인적으로 소장할 책은 줄 긋고 기록하고, 앞으로 팔아야겠다, 싶은 책은 줄을 긋지 않는 편이다.


책에서 공감했던 부분은 훌륭한 소설가들은 대체로 다작을 했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는 그의 말(116쪽)이다. 그는 소설가 준이치로의 예를 들었는데 아무 구상 없이 무작정 쓴 글이 의외로 대작이 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큰 자극이 된다. 구상하느라 글쓰기를 미뤄온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앞으로는 습관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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