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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ul 03. 2024

<<그래, 이 집에 삽니다>> 서재가 부럽다 - 이경재

남편이 며칠 전부터 이 책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아끼는 후배이기에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티격태격 기싸움을 즐기던 우리 부부 사이에 그때부터 평화가 찾아왔다. 어쨌든 내게 리뷰를 부탁해야 하는 남편이 순한 양이 된 것이다. (책 자주 내셔야겠다.) 드디어 기다리던 책을 들고 나타났다. 크지 않아 손에 쏙 들어왔고, 내지가 두껍지 않아 적지 않은 분량(약 280쪽)에도 얇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기에 딱 좋은 크기다. 초록에 가까운 민트 표지와 분홍 띠지도 예뻤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띠지에 새겨진 윤종신, 이승엽을 비롯한 유명인의 추천사였다. 나도 다음 책에는 누구에게라도 추천사를 받아야겠다는 다짐. 흠흠.


집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더니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에필로그의 제목이기도 한 북한산 발라드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내용이다. 북한산자락에 회색 집을 지은 저자는 ‘그래, 이 집!’을 뜻하기도 하는 ‘그레이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자라서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것일까? 아재개그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언어유희가 책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독자를 미소 짓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재개그가 귀엽고 기발하다고 생각한다.)


책은 8개의 풍경으로 나뉘어 있다. 도전, 집짓기, 북한산, 식물 서재, 아이들, 가족과 추억을 주제로 한 각 장이 길지 않은 이야기 꼭지들로 채워져 있다. 읽으면서 참 좋은 아빠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저자에게는 아직 어린 두 자녀가 있다. 바쁘게만 사느라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준 기억이 별로 없는 나에 비해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자주 몸을 부대끼며 노는 저자는 참 훌륭한 아빠인 것 같다. 바지런한 사람이기도 하다. 테니스를 즐기고, 따릉이를 타고 다니며 나름 ‘힙한’ 아저씨가 되고, 정원의 잔디를 가꾸고, 음악 듣기를 즐기며 서재에서 독서하고 글 쓰는 멋진 사람.


책을 읽다가 북한산 주택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귀차니즘으로 지을 엄두는 나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마당이 있는 집을 살 수 있을까 하여 찾아본 것이다. 저자의 집에서 서재가 가장 부러웠다. 많은 식구에 방이 달랑 셋 뿐인 우리 집에서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저자와 나에게는 공통점도 많았다. 학창 시절 교회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며 작은 설렘을 느낀 것, 운동과 음악을 즐긴다는 것,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이 닮았다. 때로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공감을 느낀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게 있는지 찾아가며 읽는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점은 더 많다. 저자가 좋아해 정독했다는 김정운 님의 책을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앞으로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 가요를 즐겨 듣는 편은 아니어서 소개된 노래들 중 내가 아는 게 많지 않기도 했다. 적어두신 가사들은 참 좋았다.


좋아하는 계절이 간절기라는 말에 공감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절이 끝나갈 즈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계절을 맞는다. 비염이 있는 남편에게는 괴로운 시간일지 모르나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준비하고, 매일 같은 기온에 질릴 때쯤 찾아오는 변화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가지치기를 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도 공감한다. 우리 집 작은 화분에 심긴 식물 키우기에도 그럴진대 10평 마당을 가진 저자는 오죽할까 싶다.


글에서 경험한 것이나 생각한 것에 대해 자신을 비추어본다는 점이 참 좋았다. 떡볶이집 할머니의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미래를 떠올려 본다거나 집을 감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부족한 자신이 동료와 선후배의 감리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계란밥을 만들며 계란밥 같은 사람이고 싶다는 말도 그러하다. 이 책은 계란밥 이야기에서 저자가 바라듯 쉽게 읽히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 그의 소박한 바람을 이루었다. 기자의 글이라 그런지 유머러스하고 간결하여 그 또한 부러웠다.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된다.

 * 읽고 싶은 책

일본 만화가이자 작가인 쇼지 사다오의 「혼밥 자작 감행」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에디톨로지」


- 좋았던 문장 -


- 물이 작은 구멍으로 흘러갈 때 뱅글뱅글 도는 걸 함께 관찰하기도 한다. ‘코리올리의 힘’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전향력 때문에 일어나는데, 북반구에선 오른쪽으로 돌고, 남반구에선 왼쪽으로 돈다는 놀라운 사실. (59쪽)


-감정의 널뛰기가 가끔 찾아온다. 감정도 공기와 같아서 주변 사람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피해가 되기도 한다. (77-78쪽)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돼서 글로 나오는 것이고, 그 머릿속에 무언가를 넣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책이라는 점에서 ‘읽는 책’과 ‘쓰는 글’은 결국 함께 뫼비우스띠를 이룬다. 이 뫼비우스띠에 대하여 북한산길을 산책하며 깨달은 지점이 있다면, ‘생각’이다. 책과 글의 중간 어디쯤에 ‘생각’이 자리 잡으면 그 상호작용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읽고 생각하고 쓰거나 말하는 걸 반복하는 게 지식인이 되는, 또는 지적으로 보이는 가장 보편적이고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141-142쪽)


- 내가 정성껏 아들에게 만들어주는 계란밥처럼 내 글도 쉽게 읽히고, 담백하고 고소하니 맛있고, 소화 잘되는 에세이였으면 좋겠다. 나란 사람도 그저 계란밥 정도면 족하다. (159쪽)


 * 위 글은 저자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한 마음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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