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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May 29. 2021

가질 수 없는 것

프리티 씽 (자넬 브라운)

  이번엔 신간 소식이다.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보내준다는 메일을 받고 혹시라도 너무 어른들만을 위한 내용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책을 받아 보았다. 책이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다. 페이지 수를 확인하지 않았던 나는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부분을 펼치자 으스스하고 신비한 호수가 등장했고, 뻔뻔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보였다. 어쩌다 범죄자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곧 나왔다. 불우한 가정, 아버지를 쫓아낸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니나는 사기행각에 발을 걸친 엄마의 위태한 형편에 따라 이사 다니기를 밥 먹듯 한다. 그러던 중 장학금을 준다는 한 사립 고등학교의 제안에 귀가 솔깃한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하며 니나를 데리고 이사한다. 비록 허름한 집과 옷차림이지만 엄마와 함께라 좋았던 니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성처럼 거대한 오래된 집에 사는 베니다. 그의 집 오두막에서 만나던 그들은 순진해 보였던 베니의 권유로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한다. 얼마 후 베니의 아버지에게 발각되면서 엄마와의 반짝였던 날들은 끝이 난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니나는 엄마의 뒤를 이어 절도와 사기 행각을 시작한다. 엄마를 통해 알게 된 남자 친구 라클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고택 스톤헤이븐에 오래전 사귀었던 베니의 누나가 와 있다는 것을 알고 금고를 탐내며 라클란과 함께 애슐리와 마이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장하고 오두막을 찾는다. 불우한 가정사를 지닌 스톤헤이븐의 새 주인 바네사는 껍데기뿐인 오랜 SNS 활동에 신물을 느끼고 시골 마을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외롭게 지내던 중 오두막을 세놓게 되고, 오두막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인터넷 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커플 애슐리와 마이클을 맞이한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한 내용이지만 니나와 바네사 두 명의 화자가 속고 속이는 내면의 심리를 너무나 잘 보여주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을 손에 들 수가 없었다. 바쁜 중에도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며 틈 나기를 기다려 읽었다. 독특한 편모 아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독서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한 니나는 잘못된 선택 끝에 스스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수룩하게 두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던 바네사는 집안 내력을 살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SNS에서의 허깨비 같은 생활의 무의미함이나 아무리 가족의 병 치료를 위함이라지만 남의 것을 탐내는 건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이 드라마가 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이라니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 무겁지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담은 두껍고 사랑스러운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 졌다.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는 전작이 국내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원서가 중고로도 올라와 있어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하드커버 도서를 바로 구입했다. 읽지 못할 때가 많지만 궁금한 원서는 항상 이렇게 사놓습니다. 영화도 나오면 보고 싶다. 여성들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나 영화가 좋다. 


--- 본문 내용 ---


- 집을 나서기 전에 우리는 인터넷에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놓았다. ‘애슐리’의 페이스북에는 오프라 윈프리와 달라이 라마의 영감 어린 말들과 다른 웹 사이트에서 가져온 곡예사처럼 요가를 하는 여자들 사진을 가득 올렸다. 또 전문 웹사이트에 개인 요가 수업을 한다는 광고도 올렸다. ‘마이클’의 개인 웹 사이트에는 마이클이 쓴 글을, 링크드인 인물 소개란에는 교원자격증을 올려놓았다. 이 모든 일을 준비하는 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인터넷이 우리 세대에게 부여한 재능이었다. 신처럼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우리 세대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완전한 무에서 한 사람을 창조해낼 수 있다. (75쪽)


- 한 가지 역할을 충분히 오랫동안 수행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인 척한다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와 훨씬 행복하고 발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매일같이 나를 경배하는 수십만 명을 위한 공연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저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찾고 있다. (230쪽)


- 나는 많은 날을 혼자인 채로 스톤헤이븐의 방들을 돌고 또 돌면서 점점 더 새장에 갇힌 새라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종아리가 아플 정도로 스톤헤이븐의 영지를 돌고 길을 따라 호숫가를 걷고 또 걸어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따뜻한 날이면 수상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이 유리처럼 투명한 물을 가르는 선착장으로 내려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찍어 “사랑스러운 나의” #호수 생활!이라고 쓴 글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블라인드를 내리고 침대에 누워 내가 인스타그램에 저장해놓은 사진을, 나와 이름이 같은 낯선 여자가 올려놓은 수십만, 수백만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는 나르시시스트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거야. 소셜 미디어는 그 괴물이 자라나서 우리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괴물을 먹여 기르고, 결국 소셜 미디어 밖으로 쫓겨난 본체는 그 괴물의 이미지를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쳐다만 보게 되는 거야. 도대체 나 자신이 만들어낸 저 괴물은 누구이며, 어째서 저 괴물은 내가 갖고 싶었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가끔은 나에게도 끔찍할 정도로 자기 인식 능력이 발휘될 때가 있는 것이다. (251쪽)


- 괴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안 그런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인생이, 환경이 이미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성향에 영향을 끼치는 거다. 나쁜 행동이 보상을 받고 약점이 처벌받지 않을 때, 우리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을 갈망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점점 더 비통해하면서 괴물이 되어 가는 거다. 우리는 세상을 보고 세상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측정하면서 점점 한 위치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괴물이 된다. (598쪽)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5843027

가질 수 없는 것, 자넬 브라운의 <프리티 씽>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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