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오전에는 수업으로, 오후는 일로 가득 채워 보냈다. 몇 번은 6시가 넘도록 있었다. 저녁은 빠듯한 시간을 내어 태권도를 다녀왔다. 이렇게만 지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즈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맹그로브 고성 할인코드였다. 두 번 고민 않고 남편의 허락을 얻은 후 주말 숙박을 예약했다. (남편은 친구와 골프 약속이 있었다.) 여성 전용 도미토리는 토요일만 가능해서 1박만 예약했다.
과연 금요일에 조퇴를 할 수 있을까 싶긴 했지만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고 제 시간에라도 퇴근하고 싶었다. 8시도 되기 전 출근을 해서 체육관에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수업할 때 아이들이 뛰면 먼지가 많다.) 일을 시작했다. 오가는 분들이 많아 일이 계속 끊어지긴 했지만 다음 주에 있을 학부모 교육과정 설명회를 위한 교육과정 마무리 작업과 학교에 오지 않는 네 명의 학생에 대한 학적 처리로 고심하며 오후를 보냈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은 오히려 오아시스 같았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수업을 하게 된 건 행운이다. 수업은 일도 아니었다.
오후 내내 쉬지 않고 일했지만 결국 시간을 넘겼다. 특히 네 학생의 경우가 모두 달라 매뉴얼을 읽어보아도, 전임 부장님께 여쭤도, 심지어 교육청에 문의를 해도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결석 9일째인 금요일에 보고해야 하는 것으로 결국 퇴근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늦게까지 계시던 수석님께 하소연을 하다가 모든 일을 다음 주로 미루고 결국 같이 퇴근했다.
잠깐 동안 그냥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자는 마음으로 일단 고성으로 출발했다. 가다 보니 허리에서 시작되어 이제 엉덩이에서 다리까지 내려온 오른쪽 통증이 너무 심했다. 차를 돌릴까, 말까 하며 고민하는 사이 이미 많이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는 자세를 고쳐 가며 최대한 안 아프게 앉아 운전했다. 주유 시간만 빼고 내리 달려 고성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오는 동안 천혜향과 땅콩 등을 먹었지만 배가 고팠다. 바로 빵을 구워 땅콩버터를 발라 커피랑 먹고 씻은 다음 누워서 책을 읽다 자려고 했는데 책이 툭 떨어지는 걸 보고 불을 끄고 바로 잤다.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한 건 오는 차 안에서였다. 체육수업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는 것이다. 내가 속하지 않은 어딘가로 향한다는 자체가 뇌를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계획은 책을 읽고 글을 쓰려던 건데 결국 못다 한 일을 싸들고 왔다. 그래도 아침은 산책이지. 눈을 뜨자마자 씻고 짐을 다 챙겨서 차에 실어놓고 마실을 나갔다. 목요일에 미술학원에서 그릴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함도 있었다. 자는 동안 회복된 줄 알았던 엉덩이와 다리가 계속 아팠지만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예쁜 색깔을 가진 물건에 집착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문을 빨리 여는 식당이 있어 아침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일할 시간이다. 느리디 느린 노트북을 깨워 학부모 연수물을 편집하고, 발표자료를 손보았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학교에 낼 글을 잠깐 쓰다가 저장을 하지 않고 끄는 바람에 30분 작업을 모두 날려버렸다. 잠깐 멘붕이 왔지만 다시 시작하니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잠깐 기록하고 배가 고파 빵을 하나 구워 먹었다. 체크아웃은 11시지만 그 후에도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있다가 갈 생각이었다. 책을 못 읽었잖아. 다시 배가 고플 때까지 이 글을 쓴 후 책을 읽을 예정이다.
고성은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사실 차로 멀리 가 적은 거의 없고, 맹그로브 근처만 걸어서 맴돈다. 여기서 책 두 권을 수정했다. 이번에도 차에 있던 내 두 번째 책에 사인을 해서 맹그로브 스탭 책상 위에 하나 두었고, 조금 후에 북끝서점에도 하나 갖다 드릴 예정이다. 이곳이 있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