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잃어버리지 않도록

김이설

by Kelly

도서관에서 빌려와 단숨에 읽은 책이다. 요즘은 첫 페이지를 읽으면 재미있는 책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쉬워졌다. 이 책의 앞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가방에 넣었다.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의 헤어짐 후 다시 만났지만 다시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화자는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온 동생과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을 건사해야 하는 의무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시를 쓰고, 등단을 하고자 하는 그는 밤마다 필사를 하고 시를 써 보고자 노력한다. 아직 너무 어린 조카들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온종일 집안일에 시달린 자신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돌연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마음속 웅크리고 있던 자아가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독립은 비단 젊은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불혹의 화자에게는 절실한 사건이다. 가진 돈도, 일자리도 없지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다는 건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가 남긴 적은 돈에 기댈까 했지만 직장을 그만둔 엄마에게도 소중한 자금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온갖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이 나온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의 집에서 지냈으나 그건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은 방을 얻는다. 그때부터 주어진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들을 누리며, 시를 쓸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화자의 입을 빌려 아마도 오랜 기간 소설을 쓰고자 했던 저자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책의 뒷부분에 있는 구병모 작가의 글을 읽으며 저자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동지의식을 느꼈다. 육아는 기쁘고 복된 일이지만 때로 자신을 잃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력단절이라는 말로 많은 여성이 사회 진출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글을 쓰던 사람에게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들은 언어를 잃어가는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늘 바쁜 삶 속에 동동거리던 나의 마음과 같아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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