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본문 중)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우체국

by Kelly

부코스키의 우체국을 드디어 읽었다. 그를 유명해지게 한 첫 소설이다. 지금 읽어도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데 당시에 얼마나 센세이셔널했을까? 미국에서는 그의 팬도, 안티도 많았다. 도덕적으로 본받을만한 인물이 아닌 주인공 치나스키는 부코스키의 분신이다. 묘사된 인물이 실제 작가 주변의 인물로 대비할 수 있지만 실제와 허구의 경계는 오직 작가 자신만 알 것이다. 술과 여자, 그리고 도박을 좋아해 평생을 추구하며 살았던 인물이 우체국 직원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10년 이상 유지했다는 것이 의외였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가 어떻게 집배원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버텼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악인들이 영화나 책의 주인공으로 각광받는데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만만치 않은 빌런의 시초가 아닐까 싶다. 우편배달을 갔다가 여자를 강간하기도 하고, 조직 사회에서 계속 튀는 행동을 한다. 시가를 들고 있다가 우편물에 불을 붙여 <금연> 딱지들을 우체국에 붙게 만든 장본인. 경마장에서는 수완을 발휘하고, 여자들에 대해서는 호색한적인 취향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에게도 측은지심이 있어 평생을 바치고 버려지는 GG를 동정하고, 우체국에서 늙어버린 지미를 안타까워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소 불편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하층민의 삶을 실제로 살고, 대변하는 부코스키의 멋대로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충격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준다. 자유로운 영혼이 관료사회의 밑바닥에서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 합리적이지 않은 경고장을 계속 받으며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한편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치나스키를 부하 직원으로 거느린 사람은 정말 답답했을 것 같다. 시간을 잘 안 지키고 술에 절어 출근하고, 마음대로 쉬고, 여자와 노닥거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직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부코스키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그의 작품이 인기 있는 비결을 생각해 보았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거르지 않고 보여주는 그의 문장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게 아닐까? 감히 글로 쓰지 못할 일들을 써 내려간 용기와 세상에 대한 막말 뒤에 숨은 삶의 실체를 느낀다. 책에는 돈만 생기면 술을 사 먹고, 낡은 단벌 옷으로 생활하고, 여자와 경마를 좋아하는 가엾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실제의 부코스키는 그 와중에도 글에 대한 집념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묘비명 <Don't Try>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만은 정말 열심히 했던 것이다. 우체국에 사표를 쓰고 와 술을 진탕 마시며 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한 유명한 혼잣말,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241쪽) 이 부분을 읽고 소설을 쓰게 된 사람이 적어도 몇 명은 있지 않을까?



--- 본문 내용 ---


-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11년이라니! 처음 여기 왔을 때보다 땡전 한 푼 늘지 않았는데. 11년. 매일 밤이 길긴 했어도 세월 참 빨리 흘렀다. 어쩌면 야간작업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똑같은 일을 하고, 또 하고, 계속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적어도 스톤하고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놀랄 만한 사건도 없었다. 지나간 11년이 머리를 뚫고 지났다. 이 일이 사람을 갉아먹는 것을 봐왔다. 사람들은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지 우체국에 지미 포츠라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때 그 사람은 사라졌다. 그는 바닥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이발도 못 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일주일에 두 번 셔츠를 갈아입었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었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있었다. [난 못 버틸 거야] 지미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녹아 버리거나 살이 뒤룩뒤룩 쪘다. 특히 엉덩이와 배가 비대해졌다. 줄곧 스툴에 앉아 있어야 하고 같은 동작과 같은 걸음걸이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됐다. 어지럼증이 생기고 팔, 목, 가슴,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일하려면 좀 쉬어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종일 잠만 잤다. 주말에는 일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여기 올 때는 84킬로그램이었다. 지금은 101킬로그램이었다. 고작 오른팔만 움직일 뿐이니까. (219-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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