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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Feb 21. 2021

여행,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

여행의 이유 (김영하)

  김영하님의 책들보다 작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책은 솔직히 좋은 것도, 별로 읽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데 그가 들려주는 팟캐스트 책 소개가 너무 재미있었다. 이 책에도 오래 작가로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재작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고, 블로그에 리뷰도 썼다. 그 때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다시 사 왔다. 아무래도 읽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책 느낌이 좋아 또 읽고 싶었나보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불과 일 년 반 전에 읽은 것이었다. 기억력이 정말 나쁘다.      


  읽다 보니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에는 빌리지 않은 내 책이다, 싶어서인지 더 애착이 갔다. 이 책은 9개의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적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으로 이사를 다녔던 작가는 그럼에도 어릴 적부터 여행에 매료되었었다고 기억한다. 오래 전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가였던 김찬삼님의 여행기를 좋아했고,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즐겨 읽었던 작가는 커서도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 책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그의 최초의 여행인 중국 여행기가 재미있다. 그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여행이기도 하다. 최근에 다시 중국에서 글 좀 쓰고 오려고 떠났다 비행장에서 바로 추방당해 돌아오는 것으로 책이 시작되는데 그의 자세가 정말 멋지다. 머물렀으면 책을 한 권 썼을지 모르고, 추방당해 오면서 이 책의 소재를 하나 얻었으니 어떻게든 이익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돈 쓰고, 시간 들여 헛고생을 한 셈인데 참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외국에서 음식을 고를 때도 적용된다. 맛있는 걸 고르면 맛있게 먹으면 되고, 맛이 없으면 그 또한 이야깃거리가 되니 그에게 버릴 것이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작가다운 자세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모두 각각 재미있지만 마지막 부분인 '여행으로 돌아가다'라는 글에 담긴 여행에 대한 정의가 인상적이다. 여행과 방랑의 차이. 아마도 돌아갈 곳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행도, 방랑도 했다. 그의 말 중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것은 꼭 짐을 챙겨 집이 아닌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읽기도 여행의 일종이라고 했다. 자신이 소설을 쓰는 것도 여행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허물어뜨리며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행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는 영화 보기도 마찬가지이다. 두 시간이라는 짧은 여행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의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옮겨 본다. 58쪽에 소설 창작 중 인물 창조에 대한 내용이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건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스프레드시트로 표를 하나 만들어 소설을 쓸 때마다 사용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면 그의 외모부터 습관, 취향까지 다양한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해본다. 마치 앙케트 조사와 비슷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물의 내면이다. 윤리적 태도, 성에 대한 관념, 정치적 성향 등, 십여 개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다보면 인물에 대해 좀더 또렷한 윤곽이 그려진다. 그런데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성경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다니러 온 거라는 말이 있다. 아주 길게 느낄 수도 있는 인간의 한 평생은 영원을 놓고 볼 때는 잠시 여행을 다녀가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어느 시인은 소풍 왔다 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삶인 것이니, 굳이 멀리 여행하지 않더라도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면 우리집도 여행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내가 있는 곳에서 늘 보던 것을 낯설게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것도 작게는 여행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가 몇 달 동안 방에 파묻혀 글을 쓰다가 나가 본 한강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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