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퇴근 후 굉장한 피곤함을 느낀다. 나이가 든 건지, 수업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낮잠이라곤 몰랐는데 퇴근하고 뭘 좀 하려면 너무 졸려서 한잠 자고 일어날 때가 있다. 어제는 퇴근하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다가 바이올린이 너무 무겁고 눈꺼풀이 감겨서 그대로 올려놓고 침대에 누웠는데 퇴근 한 남편이 깨워 주었다. 오늘은 퇴근길에 학교 물품을 사러 문구점에 가는 길에 옆반 선생님과 동행했다가 어찌나 잠이 오는지 연신 하품을 했다. 밤에 그리 늦게 잔 것도 아닌데 아침에도 알람 소리를 못 들어 남편이 깨워 일어났었다. 비타민도 계속 먹는데 이상하다.
어쨌든 오늘은 퇴근길에 돈가스가 너무 먹고 싶어서 집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돈가스 집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왔다 갔다 하기만 해도 퇴근할 때가 되면 거의 6~7000보가 찍혀 만 보를 채울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쇼핑몰에 막내가 오늘부터 아르바이트한다고 해서 응원 차 간 것이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차를 집에 놓고 걸어서 갔다. 10분쯤 걸어 도착했는데 평일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돈가스를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려다가 지갑을 안 가지고 온 걸 알게 되었다. 차 대시보드에 넣어둔 걸 잊다니. 너무 당황스럽긴 했지만 계산을 해야 했기에 혹시라도 계좌이체가 되는지 물었다. 다행히 계좌를 알려주었고 이체 후 무사히 빠져나왔다. 아래층 딸이 일하는 곳을 찾아갔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반가웠으나 옆에 다른 직원에게 한참 뭔가를 배우는 중이라(사장님이라고 한다) 아는 체 할 수가 없어 망설였다. 아마도 나를 보았다면 인사를 했겠지만 무슨 작업 중인지 바빠 보였다. 혹시 계좌이체되는지 물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인사도 못하고 그냥 돌아 나오면서 뒷모습이라도 사진을 찍을까 하여 맴돌았으나 주변에 손님들이 있어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지갑을 잘 챙겼어야 했는데.
읽을 책까지 챙겨 나와 그냥 집에 돌아가기가 아쉬워 즐겨 가는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카페에서 열심히 찍어 모은 쿠폰이 있어 무료 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손님이 거의 없었고 너무 조용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계속 졸고 있었던 것이다. 직원이 뒤에서 옆으로 쏟아지는 머리를 보며 얼마나 웃기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 창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한 번 졸기 시작하니 혼자 힘으로는 깨어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머리를 떨구다 결국은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손으로 의자를 탁 쳤는데 그 소리에 놀라서 잠이 확 깼다. 아마 직원도 놀랐을 것이다. 뒷모습만 보였기 다행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가까운 테이블에 초등학교 동창들으로 보이는 초로의 남녀가 들어와 앉아 큰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구들의 이야기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다. 친구 '철수'에 대한 안부를 묻는 걸 들으니 오래 전 교과서 주인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그중 한 남자분은 작년에 아파트 사람들 열몇 명을 이끌고 여수 여행 다녀온 이야기도 재미있게 했다. 코로나 와중에 어떻게 여행을 다녀왔느냐고 친구들이 물으니 마스크 쓰고 갔다 왔단다. 기차를 타고 내려간 다음 거기서 여행사에서 빌린 버스를 이용해 다녔다고 한다. 나도 여수에 한 번 가 보고 싶다. 2년 전엔가 진주 친구 집 가는 길에 곡성이랑 여수를 들를까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곡성만 겨우 보고 친구 집에 갔었다. 여수는 아직도 한 번도 간 적 없는 미지의 바다 도시다. 조만간 꼭 가 보고 싶다.
남자분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 했더니 자기도 맥가이버 목소리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웃긴지 혼자 마음 속으로 막 웃었다. 초로의 귀여운 남녀 분들의 대화가 정말 재미있다. 퇴근 길에 남편이 들러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오늘따라 늦지만 더 늦게 왔으면, 싶을 정도로 옆자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마스크 속에서 계속 웃으며 들었다. 카페에서 옆자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분들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보다 재미있는 대화 엿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