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떼러 간 딸을 기다리며 차에서 빗소리를 듣는다.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이별을 하고 의기소침한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걸 하고 싶어 따라 나온 길이다. 만남도 쉽고 이별도 쉬운 요즘이지만 당사자에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날씨가 딸의 울적함을 더하는 듯하다.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길렀던 손톱을 짧게 만드는 이유는 지난주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이기도 하다. 한가하게 추억만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이제 멋 낼 일 없다는 스무 살 딸에게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 같은 날은 우산 없이 걷고 싶다. 비에 머리가 흠뻑 젖고 옷이 달라붙어도 한 번씩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조금 전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면서 가슴에 품고 갔건만 사서에게 책 물에 젖게 하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다. 우산을 썼어야 했다. 비 맞고 싶은 건 마음뿐이다.
학창 시절 버스로 한참을 달린 후 내려 또 걸어야 했던 등하굣길에는 우산이 있어도 오는 내리는 비를 피하기가 어려웠다. 바람까지 부는 날이면 뒤집어진 우산을 다시 펴며 옷도 가방도 다 젖은 채 생쥐 꼴을 하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샤워를 마친 뽀송뽀송한 몸으로 비를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었다. 따뜻한 방바닥에 노곤 노곤한 몸을 누이고 젖은 머리로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천국 같았던 오후 한 때.
지금은 어디든 차로 다니고 그렇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니 비 맞을 일이 별로 없다.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 날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외출이 가능하다. 비를 흠뻑 맞는 건 소나기의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비만 오면 마음이 설렌다. 카페에 앉아 비 구경하는 것도 좋고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도 좋다. 멀지 않은 길 예쁜 우산을 쓰고 걷는 것도 재미있다. 대신 비 오는 날은 차가운 점퍼나 재킷보다 두툼한 스웨터나 카디건을 입는 게 좋다. 습기를 머금어도 한결 포근하다.
이제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으며 다소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비 오는 소리가 자동차 카페의 배경음악이다. 간헐적 고독이 나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