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올해 첫 인문학 모임 도서이다. 과제 도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기 어려웠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제목이 너무 멋있어서 선택한 것인데 제목처럼 위로가 되는 책은 아니었다. 여기서 위로의 의미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다.
고독이라고 하면 외로움과는 조금 다르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외로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고독이라는 나름의 개념을 갖고 있다. 혼자 있어 괴롭다면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다면 고독이 아닐까?
책 프롤로그의 제목 ‘고요한 삶은 외롭지 않다’가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세계 위대한 사상가들 데카르트, 뉴턴, 파스칼, 칸트, 니체,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이들이 화목한 가적을 이루거나 다른 이와 친밀한 과계를 갖지 못했다고 나온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친밀한 관계 대신 사상과 철학,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었던 이들은 인류 역사에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사상가뿐 아니라 수많은 작가와 작곡가, 시인과 같은 이들에게도 고독이야말로 친구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쓰기가 그야말로 위로였던 것이다. 책 중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림의 말이 인상적이다. ‘글쓰기는 치료의 한 형태다.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의 상황에 내재해 있는 광기, 우울증, 극도의 두려움을 어떻게 피하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192쪽)
책을 읽다 보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 예를 들면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베토벤과 같이 평범하지 않고 유난하거나 우울하거나 고난을 겪는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일들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차이라면 그런 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승화시켜 자신을 불태운 결과 큰 성과들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에 일생일대의 작품을 남기기도 하는데 베토벤의 57년 간의 길지 않은 삶에도 전기, 중기, 후기로 작품의 성향이 달라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귀가 먼 인생의 후반기에 최고의 작품들을 남겼다.
글의 초기에 이 책은 우리를 위로하기보다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위인들에게 고독이 위로였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고독을 힘들어하지 않고 달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면 평범한 우리도 내 삶의 최고작을 남길 수 있다. 누군가의 찬사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북돋우고, 성장해 나간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보다 나은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고독을 너무 미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고독하면 고독한대로, 누군가와 어울린다면 그대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논문에 버금가는 방대한 지식을 담은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고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