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마사히코
고령화 사회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빨랐던 일본은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먼저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치매에 걸린 분들이 모여 살며 사회생활을 함께 하는 마을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외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2년 전 어머니께 찾아온 경도 인지장애로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아빠가 드러내지 않으셔서 2년 전에 이미 집을 찾기 어려웠던 일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전화할 때 자주 했던 말을 잊으시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가 우연히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치매 등급을 받으면 국가적인 지원이 있음을 알고 신청했다. 최근에는 갑자기 움직임이 느려지시고,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어려워하시는 걸 보고 파킨슨 검사를 받아 약을 드시며 급속도로 호전되시는 걸 보면서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치료를 하는 것이 삶의 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51세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임을 발견한 저자는 처음에는 몹시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컴퓨터 관련 복잡한 업무를 하다가 머리를 덜 사용하는 부서로 옮기긴 했지만 정상적인 업무가 점점 불가능해짐을 알고 퇴직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는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성경 구절에 힘을 입어 절망하지 않고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치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억을 붙잡기 위해 컴퓨터에 매일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날짜와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구입할 물건 목록을 적고, 쓴 돈을 적는 일들은 정상인도 하기 귀찮은 것인데 그는 점점 사라지는 기억과 무기력에도 이어나간다. 호주에서 치매에 걸리고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틴 브라이튼의 저서를 읽고 치매에 직접 걸려본 경험담을 다른 이에게 알리고자 마음먹는다. 먼 길을 여행해 강연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그는 강연 초청에 거절하지 않고, 치매에 걸린 이들의 단체도 만들어 활동했다.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약달력을 사서 미리 채워두었다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불은 되도록 쓰지 않지만 쓰는 동안에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사지 않아야 할 물건 목록을 만들어 있는 물건을 또 구입하는 낭비를 줄이고, 삶을 단순화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즐긴다. 집중력이 약하지만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집에만 있기보다 두렵지만 산책을 즐긴다. 치매에 걸린 이도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삶을 즐길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51세에 치매에 걸린 후 10년 동안 지켜본 치매 연구센터의 연구원이 저자의 방대한 기록물과 그의 육성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게 이 책을 엮어 펴내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까지 번역되어 나왔으니 실로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기회를 놓칠 뻔했던 어머니도 맞는 약을 찾아 호전되시는 것처럼 자신이나 가족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 약을 먹기를 권한다. 치매가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일정 나이가 되면 매년 검사를 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시아버지도 10년 전부터 약을 드시는데 아직 정정하시다. 엄마는 한동안 대학병원에서 처방해 준 패치를 2년 동안이나 붙이셨다. 처음에 약이 독해서인지 속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 바로 패치로 바꿔준 것이다. 효과가 별로 없이 치매가 진행되는 걸 보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패치를 처방했다. 그러다 아버지 위암 발견으로 엄마가 데이케어 센터에 가시게 되면서 그곳에서 치매거점병원을 소개받았다. 그 병원에 가서야 드디어 약으로 처방받았고, 얼마 전 파킨슨도 그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을 드시며 급속도로 호전되셨다. 엄마 일을 겪으며 ‘치매거점병원’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지역별로 지정된 병원을 신뢰하고 정기적으로 가서 관리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게 된다. 한없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참 짧은 세월이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노인성 치매나 각종 질환을 숨기거나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따뜻한 가족애로 감싸 안는다면 슬프지만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치매를 받아들이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기록하며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며, 많은 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눈 저자가 정말 대단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