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너무 많이 들어 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숙한 책들 중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게 정말 많다. 어린이, 청소년 책이라고 알려진 이 책을 읽고, 청소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1872년이 배경으로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는 어떤 세상이었는지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신나는 경험이었다. 큰 재산가이지만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알 수 없는 필리어스 포그 경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가 몸 담았던 런던의 리폼 클럽은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고 한다.
자식도, 부인도 없는 그는 하인을 고용해 살고 있었다. 그의 까다로운 조건에 오래 버틸 하인이 없던 중 프랑스 출신의 장 파스파르투가 나타나고 그는 바로 고용한다. 집에서 나와 클럽까지의 거리를 걸음수로 셀 정도로 수학적 정확성을 지닌 필리어스 포그는 카드게임 도중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실행하는 내기를 하게 된다. 고용된 하인 파스파르투가 당장 짐을 싸야 했던 이유이다. 공교롭게 은행 절도사건이 있어 이들의 뒤를 픽스 형사가 쫓게 되면서 이야기는 재미를 더해 간다.
영국에서 수에즈로, 뭄바이로, 콜카타로, 홍콩으로, 요코하마로,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거쳐 런던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운 포그는 하인과 함께 기차에 오른다. 인도와 홍콩은 당시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여행이 수월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는 것은 모험이었다. 미국을 횡단하는 열차가 7일 만에 미대륙을 가로지른다는 말은 있었지만 중간에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80일을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자칫 잘못했으면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에 지속적으로 직면한다. 그럼에도 필리어스 포그가 가장 난감할 때 뱉는 말이 고작 “아!” 정도였다니. 그는 정말 강심장을 가졌다.
중국을 여행하며 온갖 것을 다 기록했던 박지원 님과 달리 포그의 목표는 오로지 시간 안에 런던에 다시 도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 큰돈을 들여 여행을 하며 온갖 어려움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두둑한 돈가방 덕분일까? 사실 많은 부분 돈으로 여행을 이어나갔다. 비싼 코끼리를 사서 여행을 계속하고, 배를 구입해 모자란 증기 연료를 배의 나무 부분을 떼어 내어 충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도 하는, 어찌 보면 굉장한 선인을 픽스 형사는 절도범으로 오인하고 죽어라 뒤쫓는다.
오래전 둘째가 책이 재미있다며 여러 번 읽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렇게 재미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집어들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이 책을 이제야 제대로 만나게 된 게 기쁘다. 이번에 다시 물어보니 필독서여서 읽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 필독서로 아이들에게 명작을 제시하는 게 의미가 없지 않음을 깨달았다. 쥘 베른이 쓴 책들은 현재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하나둘씩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미 많은 것이 실현되었다는 역자의 해설이 인상 깊다. 아들이 재미있게 읽었던 또 다른 쥘 베른의 책 해저 2만 리도 조만간 만나보고 싶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FLZHxJhKe5U&t=3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