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자꾸 손이 가는 책 - 헤밍웨이

by Kelly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영어로도 읽은 적이 있다. 이 단순한 내용의 책을 자꾸 읽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이번에는 인문학 모임 책이었기 때문에 읽은 것이다. 읽었던 책이라 넘어갈까 하다가 전과는 또 어떻게 느낌이 다를지 궁금해서 또다시 펼쳐 들었다.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대사 부분의 느낌이 왠지 달랐다. 조금 더 친숙하고 우리나라 정서에 맞춰져 있다고나 할까? 아이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번역이 되어 있다.


책을 학교에서 아침 등교 후 아이들과 함께 읽는 시간에 읽고 있으니 한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언젠가는 이 아이도 이 책을 읽게 되겠지. 교사의 독서는 때로 아이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책에도 아이가 한 명 등장한다. 노인이 사랑하는 아이다. 아이는 노인에게 고기잡이를 배우고, 산티아고 노인은 아이를 의지한다. 혼자 배를 타고 나가 청새치와 씨름하며 마음속으로 얼마나 아이를 불렀는지 모른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노인에게 지극정성이다. 노인의 먹을거리를 살뜰히 챙기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나이를 초월한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책을 읽고 쓴 글을 보니 이 책이 제임스 미치너의 독후감으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전 작품에 비해 이 책이 그를 더 유명해지게 만들었고, 이후 그는 노벨상도 받게 된다. 건강을 잃고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컸던 그는 결국 삶의 끈을 놓고 만다. 왠지 작가의 삶이 노인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화려한 고기잡이 실력과 팔씨름 실력을 자랑하던 산티아고는 아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자연 앞에서는 두 손발을 다 들고 만다. 사흘 밤낮을 청새치와 상어들을 상대하느라 사력을 다하고 신문지 침대에 얼굴을 박고 잠드는 노인처럼 헤밍웨이는 평생 원고지를 붙들고 씨름하며 애를 썼을 것이다.


잡은 청새치의 살을 상어에게 반쯤 잃고 ‘물고기였던 물고기야’라고 말하는 부분을 잊을 수가 없다. 물고기에게 사과하는 대사나 아이가 안쓰러운 노인을 두고 커피를 사러 가며 우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책의 뒤쪽 역자 해설에 헤밍웨이의 문체를 ‘빙산 문체’라고들 한다고 적혀 있다. 툭 던지는 문장 하나가 마음에 꽂힌다. 친절하게 모두 설명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략하여 독자들이 오히려 그 깊이를 생각하게 된다. 짧은 문장들은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게 한다. 영화를 보는 듯 눈앞에서 장면들이 그려지는 박진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읽게 될까 궁금하다. 자꾸 손이 가는 책이 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H7IcHBnl2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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