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육아처럼 33
2020년 2월 28일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의 그 비장한 단어 맞습니다^^) 어머니와 합가 했다.
밤 9시를 훌쩍 넘겨서야 겨우 이사(여기서 이사란 트럭에 실린 짐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는 뜻)가 끝이 났다.
내 오랜 이사 역사(https://brunch.co.kr/@f1114/14)에 두 집을 한날한시에 이사하는 기록까지 추가하고 나니 뭔가 급이 달라진 느낌이랄까? 사실 그에 수반되는 어려움의 8할은 이사업체의 몫이었고 나머지는 언니들의 도움으로 이룬 것이지만 말이다.ㅎㅎㅎ
한편, 센터차에서 내리자 낯 선 집으로 인도되어 온 어머니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빛이 역력했다. 아직 이삿짐을 옮길 무렵이라 짐 사이를 위태롭게 다니며 이 사태를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셨다.
"아니, 도대체가 이게 무슨 일이니? 여기가 어디야? "
"어머니, 이제 우리 함께 살게 됐어요! 재미있겠죠?"
"그래? 난 금시초문이네?"
"여기가 어머니 방이에요. 맘에 드세요?"
"어? 정말 내 침대네?"
합가의 감흥을 유도하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새로운 집을 둘러보느라 바빴고
나도 어머니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인부들에게 방금 들인 짐이 놓일 자리를 일러주기에 바빴다.
그럭저럭 방을 정돈하고 어머니 잠자리를 봐드리고 나오면서 텔레비전이 설치되지 않아서 무료해하실까 봐 염려했는데 어머니도 당신 방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고 이리저리 옮기기에 열중했다. 오히려 밤새 주무시지 않고 살림정리를 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로^^;
중간중간 밖으로 나와 이 상황에 대해 다시 묻고 갸웃해하며 들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어머니 방의 익숙한 물건들 덕분인지 집에 가겠다고 하시는 일 없이 그날 밤을 잘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오~~~ 어머니의 아침수발을 방 하나 지나서 할 수 있다니! 합가가 주는 편리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새 경비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센터차에 어머니를 태웠다.
이삿짐 정리가 얼추 될 때까지 어머니는 센터에서 저녁식사까지 드시고 오도록 부탁을 드렸고 언니들이 매일 와서 기꺼이 함께 감당해 주었다. (한 계절 뒤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정리정돈 TV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보면서 그들 못지않은 우리의 정리실력을 자화자찬하기에 충분했던 팀워크였다^^)
어머니가 오랜 시간 수집해 온 여러 가지 장식품들 - 도자기, 인형, 티스푼, 액자, 공예품 같은 것들은 더 이상 둘 데도 없고 그냥 버릴 수도 없어서 파손되지 않게 에어랩으로 잘 싸서 중고거래를 하거나 기부하기 위해 박스에 담아 두었고 손님용 침구류나 식기류도 쓸 것만 두고 모조리 정리했다. 평생 애지중지하던 것들이라 다시 찾으면 어쩌나 걱정은 되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젠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절대절대 어머니에게 발각이 되지 않도록 어머니가 안 계신 시간에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다.
센터에서 저녁을 드셔도 오후 6시 조금 지나면 돌아오셨기 때문에 그때까지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은 수두룩했고 어머니의 시선을 돌릴 만한 특단의 대책이 될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못통 정리하기, 색종이 정리하기, 색연필 정리하기, 공작용 눈알 정리하기, 레고 정리하기...
주로 자질구레한 물품 정리하기가 소일거리로 안성맞춤이었는데 그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공작용 눈알 정리하기'를 소개해 드리겠다.^^
그 당시 나는 집 앞 초등학교 학습준비물센터에서 오전 3시간 동안 어린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센터의 물품을 정리하고 교사들의 학습자료 제작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접착제로 붙여야 쓸 수 있는 공작용 눈알이 크기도 제각각으로 마구 뒤섞여 담겨 있는 커다란 주머니가 있었다. 내가 일하고부터 단 한 번도 쓰임이 없던 것인데 왜냐하면 그즈음엔 눈알 뒷면에 스티커가 붙어 있어 훨씬 쓰기 편한 제품이 공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그냥 두었는데 드디어 정리라도 해 둘 기회가 온 것이다.
집에 가져와서 테이블 위에 조금씩 쏟아놓고 어머니에게 크기별로 분류해 달라고 했다.
여차하면 환공포가 엄습할 것만 같은데도 어머니는 사명감을 갖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개 분류하다 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었는지 크기대로 분류하지 않고 그냥 줄을 세우고 있었다. 오며 가며 다시 말씀드리기를 거듭했지만 그때뿐이고 또다시 큰 눈 작은 눈 할 것 없이 한 줄로 줄 세우다 지루해하시는 듯하더니, 어머머 어느 순간 형태를 만들고 계신 게 아닌가!
"우와~~~ 멋진 작품이네요!!"
갑작스러운 탄성에 어머니는 수줍게 웃으시고 나는 바쁜 와중에도 모양을 바꿀 때마다 사진을 찍어 남긴다며 수선을 피웠다.
내가 하는 일에 어머니가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어머니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예술활동을 하고 계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감성파괴자가 출현했다.
마침 그때 퇴근한 남편.
나는 우리 아이들이 기특한 일을 했을 때처럼 남편을 테이블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여보, 어머니께 이거 분류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이렇게 모양을 만드신 거 봐봐!"
"아니, 엄마는 크기별로 나누라 했더니 놀고 계시면 어떡해? 봐봐! 이렇게, 딱! 딱!"
하면서 야무지게 분류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홀린 듯 그의 손놀림을 보고 계셨다.
헐~~~~~~
이 글을 쓰며 그때 생각이 나서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합가의 첫 기억이 웃음 빵 터지는 장면으로 남은 것에 그의 공이 크다. 인정! ㅋㅋㅋㅋ
치매도 육아처럼 33 가뜩이나 치매가족과 반려견이 있어서 조심스러운데 코로나 시국이라 이웃에게 인사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망설여졌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정보를 알리는 것은 필수라는 생각에 작은 떡상자에 손 편지를 담아 드리며 첫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