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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23. 2021

전쟁 같은 이사

치매도 육아처럼 13

 분명히 10년 전쯤엔 '이사'가 사람이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5위 안에는 든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10위 안에도 없다.


<사람-그중에서도 한국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순위>

  1위- 자녀의 죽음

  2위- 배우자의 죽음

  3위- 부모의 죽음

  4위- 이혼

  5위- 형제자매의 죽음

  6위- 배우자의 외도

  7위- 별거 후 재결합

  8위- 부모의 이혼, 재혼

  9위- 별거

10위- 해고, 파면

 

 어떻게 된 거지? 외국사람이 받는 스트레스 순위였나?

 

<사람-그중에서도 미국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순위>

  1위- 배우자의 죽음

  2위- 이혼

  3위- 부모의 죽음

  4위- 교도소 수감생활

  5위- 가족의 죽음

  6위- 자신의 부상이나 병

  7위- 결혼

  8위- 해고

  9위- 별거 후 재결합

10위- 퇴직, 은퇴

 

 헐~ 미국은 교도소 수감이 일상 다반사인가? 암튼 좀 다르긴 해도 역시 이사 스트레스는 순위 안에 보이지 않는다.

 난 어디서 뭘  들은 거지? 


 누가 이사하느라 힘들었다고 하면 '당연하죠! 이사 한 번 하는 게 부모님 돌아가신 것만큼이나 스트레스받는 일이라잖아요~'라고 은근슬쩍 오버해서 말하며 그가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것인지 공인해주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세상이 하 수상해서 이사의 스트레스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사의 스트레스가 감소한 게 아니라 다른 스트레스가 월등히 증가한 거야, 그렇고 말고! 이사가 얼~~~ 마나 힘든 건데!!

 이토록 막무가내로 생각하고 결론지어가며 기어이 이사 스트레스를 순위권으로 밀어 올리고 건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겨있던 인정의 욕구랄지 보상심리랄지 뭐 그런 것들이 동맹을 맺고 발휘하는 강력한 힘일지도 모른다.


 결혼하기 두어 해 전, 난생처음 해 본 친정집 이사를 시작으로 무려 15번의 이사에 참여했다.(여기서 '참여'란 이사업체 선정부터 이사 후 AS까지의 전 과정을 진두지휘 또는 핵심 조력했다는 뜻이다)

  22년 동안 15번의 이사라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는가! 이사에 잔뼈 굵은 유목민 앞이라도 굴하지 않고 2박 3일은 거뜬히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

 할머니가 한평생 모은 잡동사니들의 정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나이보다 오래된 친정집 이사, 남편 먼저 출국한 뒤에 혼자 남아 젖먹이를 둘러업고 행여나 실수라도 해서 이삿짐이 태평양에 표류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해외이사, 어머니와의 합가로 두 집을 한꺼번에 이사하느라 세부계획서만 책 한 권은 족히 될 가장 최근의 이사... 대충 간추려도 하루치 분량은 나오겠군.

 크고 작은 이사를 하면서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의 종류가 얼마나 많으며 그것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는 얼마인지, 그것을 이동하는 일은 또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매번 겪을 때마다 미니멀리즘을 내 삶에 들이겠노라 다짐 또 다짐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뱃살과 함께 시나브로 늘어난 살림살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코웃음을 치고 있다.ㅜㅜ

 아무튼 오늘은 어머니의 이사에 대해 쓰겠다. 어머니 집 이사에는 여섯 번(이나) 참여했는데 그중에서 다섯 번째, 치매진단 후 네 번째 이사 때 이야기다.


 어머니가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의식주 전반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에  빈 집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합가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보았는데 어머니 당신도 우리와 한 집에 살기를 원치 않으셨고 나도 가능하면 생활공간을 분리하고 싶었다. 부동산 사무실에 우리의 사정을 말해 두었더니 옆 라인에 전세가 나오자마자 연락이 왔다. 옆 라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꼭대기층이라 햇빛도 충분히 들어와서 밝았고 겨울에 저층에 살 때처럼 배수구가 얼어서 세탁물을 우리 집으로 나를 일도 없겠고... 집을 계약하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 이사는 합가가 될 가능성이 99.9프로였으므로 그때를 대비해 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사이 몇 차례의 이사를 했지만 어머니가 대략의 살림을 기억하기도 했고 달라지는 환경이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어서 되도록 기존의 살림살이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저하되어서 더 이상 유지할 의미가 퇴색했고, 불필요한 물건이 오히려 생활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어서 가능한 정리하기로 했다. 어머니 몰래 감행해야 하는 특수임무이므로 남편과 고도의 전략과 전술을 짰다. 주말마다 해오던 007 작전을 그대로 유지하며 최대한 어머니 몰래 정리하다가 이사 전날 남편이 어머니를 우리 집에 미리 모시고 가면 나는 잠깐 숨었다가 어머니 집에 남아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싹 정리하기로.

 

 D-day. 작전은 순조로웠다.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 무섭게 입지 않는 옷부터 부엌살림까지 장 속에 가득 차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행의 변천사는 물론 어머니 리즈시절 신체사이즈까지 가늠이 되는, 지난 20여 년간 한 번도 입은 걸 본 적이 없는 것부터 작아져서 더 이상 입지 못하게 된 많고 많은 옷들과 수십 명 잔치는 거뜬히 치러 낼 엄청난 양의 그릇들 그리고 각종 유리병과 종이상자, 쇼핑백들이 여기저기에서 무더기로 튀어나와 세력을 과시하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착착착 일사천리로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돌입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복병이 너무 많았다. 쓸 만한 물건을 도저히 그냥 버릴 수 없어서 분류하고 정리하느라 갑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보니 재활용품 수거함으로 보낼 보따리와 쓰레기통에 넣을 종량제 봉투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밤에, 그 산을 다 옮기고, 다음 날, 무사히 이사업체 직원을 맞이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지원병이 절실하던 그때, 어머니 이부자리를 봐드리고 30km를 달려 남편이 다시 와주었다. 그 늦은 시간에 어디서 구했는지 따끈따끈 바삭바삭한 치킨까지 장전하고!

 '지금까지 이런 맛은 세상에 없었다! 이것은 치킨인가, 마약인가!'

 '기진맥진한 나를 일으킨 것은 치킨인가, 남편인가!' ㅎㅎㅎ

 부부관계는 전우애로 유지되지 말입니다.

 남편은 태산 같던 재활용품 보따리와 쓰레기들을 말끔히 옮겨놓고 홀연히 떠나갔다.(어머니가 밤중에 깨시면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해하신 경험이 있어서 또 그럴까 봐 불안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마약 치킨에 취했는지 전우애에 취했는지 그날 밤 도둑맞은 듯 어수선한 어머니 집에서 무서움을 무릅쓰고 1 불평불만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지금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자기 엄마 이사니까 응당 치를 수고였는데 홀린 듯 찬양했던 것이 어쩐지 사기당한 기분이다.^^;


 다음 날, 무사히 이삿짐을 실어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한 반복 질문하며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다. 왜 안 그렇겠는가! 당신 집 이사라는데 엉뚱한 곳에 유배되어 있으니...  이삿짐은 잘 챙겨 오는 건지, 이사 갈 집은 어딘지 끝없이 물어보며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전날 미리 챙겨 온 귀중품 가방을 안겨드리며 잘 간수하시라는 특별 임무를 부여했으나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사사로운 감정은 원천 봉쇄하고 원활한 이사를 위해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지금은 최전방 부대에서 믿음직한 상병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있다)에게 할머니와 귀중품 가방을 사수하도록 당부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이사현장으로 출격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들이 머쓱해하며 백기 투항하듯 할머니를 앞세우고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떠나자마자 시작된 어머니의 집요한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야 말았단다.ㅜㅜ  

 

 "아니 어느새 짐을 다 옮겨놨어?"

 "도배를 새로 했나 봐? 새 집 같네!"

 "이 접시는 내가 **은행에 다닐 때 첫 월급 타서 산 거야! 호호호"

 "어머어머 이게 어딨었나 했더니 이제야 나오네? 세상에~"

 "이 방은 누구 방이야?"

 "아니 아니 그건 이 쪽에 놔주세요!"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이나 온 거야? 하나, 두울, 세엣..."

 "아니 저렇게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 맙소사!"

 

 어머니는 전쟁터 같이 어수선한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게 엉뚱하고 산만하기 그지없는, 성가신 방해 전술을 쉴 새 없이 구사했고 끝내 그 이사에서 승리한 단 한 사람이 되었다.



치매도 육아처럼 13 치매환자의 이사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사의 전 과정을 보호자가 진행하는 것은 물론 모든 계약은 보호자가 직접 해야 한다. 한 번은 어머니가 해체해서 가져갈 붙박이 옷장을 이사 올 사람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이삿짐을 모두 차에 옮겨 실어 보냈다. 이사 올 사람이 계약위반이라며 다시 그 옷장을 원상태로 해야 잔금을 치르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어서 할 수 없이 이사를 끝낸 후 밤늦게 그 옷장을 다시 실어 보내 설치해주게 된 황당한 일이 있었다. 두 곳의 부동산중개업소가 진행한 계약이었는데 상대방의 계약내용까지야 확인할 수 없으니 대처할 길이 없다. 그나마 내가 계약한 부동산에는 나를 통해서만 의견 조율하기로 미리 이야기한 상태라 중개인이 문제의 책임을 지고 추가 이사비용은 보전해 주었다. 치매 초기의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다.

 한 가지 이사의 장점은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가끔 어머니가 이미 정리한 물건을 찾더라도 "아이코, 이사하면서 분실됐나 보네요. 아깝지만 이번 기회에 더 좋은 걸로 새로 마련할까요?"라고 말하며 달래 드린다. 그 물건의 존재를 잊을 때까지.^^(어차피 쓰지 않는 물건이므로 그렇게 자주, 오래 찾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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