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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un 28. 2021

사회학적 관점으로 시어머니를 재해석하다

치매도 육아처럼 14

 2017년 봄, 어머니는 5년 만에 다시 내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 왔다.

 그동안 어머니도 나도 달라졌다.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면서 고집이 많이 꺾였고(인지능력 저하로 매사 자신이 없어지니 그렇게 되신 듯하다)  감히 단언컨대 나는 어머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거의 20여 년간 어머니를 알아오면서 내 직관에서 벗어난 모습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터라 어머니에 대해 새로운 어떤 이해가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어머니가 고생스레 살아온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겉으로야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진심을 담진 않았다.  친정엄마와 이모들, 친구의 엄마들이 어머니와 동시대를 사셨고 그분들의 삶을 보고 듣고 자랐는데 그중 어머니보다 사정이 나은 경우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 시절엔 누구랄 것 없이 대체로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짝지어주는 남자와 결혼해서 시부모와 여러 자녀들에 객식구까지 거느리고 어려운 살림을 꾸리며 힘들게 힘들게 살았다고들 하는데 왜 어머니만 유별한 듯 나를 붙들고 하소연하시는 건지, 게다가 어머니는 대학생활도 경험했고 일류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해보았고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출국이 가능했던 시절 세계여행도 다녀오셨고 취미로 가야금과 전통매듭을 배울만큼 그 시절 누구보다 개인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오셨으니 그만한 고생이야 고생 축에 끼기도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진심 어린 공감은커녕 신파가 지나치다고 판단하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였다면 그 삶의 백분의 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면서 말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어머니에 대한 나의 평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어머니의 이사를 고민하던 즈음에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선배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에 대한 나의 평가가 얼마나 야박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선배의 시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인데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까지 일하신 엘리트 여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종일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쳐 집에 돌아오면, 처자식에게 호령하는 남편의 심기를 살펴가며 전업주부처럼 가사노동에 돌입해야 했으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지금처럼 입식부엌도 아니고  연탄불 갈아야 하는 재래식 부엌에다 가전제품도 변변하지 않던 시절이니 오죽했을까! 불합리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온 세상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던 순종적인 현모양처 여성상을 본인도 포기하지 못하니 층층시하에서 남편과 불평등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겪어야 했을 내적 갈등과 어려움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하나 하나 헤아려보면 같은 여자로서 참 안됐다고 했다.  


 아, 그랬겠네요! 정말 그랬겠네요! ㅜㅜ


비누거품처럼 자꾸자꾸 부풀어 오르는 옛날 생각을 등에 업은 아가가 가만히 눌러 주었을까.. 

 

 어머니가 

"내가 00 은행 다닐 때 말이야~" 

"이건 00 은행에서 첫 월급 타서 산 건데"  

"여기는 00 은행 다니면서 와 본 데야" 라며 언제 어디서나 00 은행 총재 비서 시절을 소환해냈던 까닭을 그제야 해석할 수 있었고 인간적으로 너무나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여성의 배움에 제한과 제약이 따르던 그 시절, 신학문을 배워서 전문 직업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당당한 위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숨죽여야 했던 무명의 엘리트 여성들... 그들 중 두 사람의 이름은 찾게 되었다. 나와 선배의 시어머니 이름 0 0 0, 0 0 0 (자랑스럽게 실명을 올리고 싶지만 허락 없이 쓸 수는 없다)


 결국 어머니 안에 억지로 봉인해 둔 사회적 자아실현의 욕구는 우울증이라는 괴물로 탈바꿈한 뒤 치매라는 망각의 골짜기로 어머니를 끌고 간 게 아닐까? 똑똑하고 재주 많고 유머러스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을 모든 사람이 의아해했다. 그런데 자기 안의 괴물이 걸음을 옮기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 않나! 속절없이 끌려갔을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른 이유로 치매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다시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오는 것을 가능한 미루고 미루며 어머니를 멀리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한 순간에 측은지심으로 이끌어 준 기특한 생각이니 그걸로 충분하다.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고 사나운 말들이 총알이 되어 심장 깊숙이 구멍을 뚫어대는 험악한 시간이 겹겹이 쌓이다 결국 콘크리트 같은 담장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버렸다. 내가 낳아 길렀으니 누구보다 잘 안다고 확신하며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바람에 오히려 아이는 마음을 닫아버렸고 나는 아이 탓을 하며 아이가 바뀌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그 육중한 담장을 허물고 내 품에 다시 안기기를 독을 품고 기다렸다. 하지만 담장은 견고해질 뿐이었고 담장 너머 아이는 점점 미지의 세계로 멀어져 갔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던 그때 심리상담도 받고 좋은 부모 되기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배움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를 내 결핍을 채우는 도구로 여기고 내가 원하는 대로 기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음을. 각성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의 범주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아이의 발달과정과 양육법을 포함해 인간관계에 대해 새로이 배우고 깨닫고 적용하며 기존의 잘못된 패러다임을 바꾸는 훈련을 5년가량 지속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충분히 듣고 바르게 이해하려고 했고 내가 잘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나의 말과 행동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무수히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갈등의 순간에 멈추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배우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도 살짝 꺼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을, 꽤 탐스러운 삶의 지혜가 야무지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들인 노력의 십 분의 일이라도 어머니를 위해 할애했다면 진작에 어머니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어머니는 냉혹한 평가와 판단의 대상일 뿐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해 손톱만큼 이해했을 뿐인데도 나의 평가와 판단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방문객                                                                                                                                                       - 정현승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다시 이사 오는 어머니를 시인처럼 환대할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이고 싶지만 나의 알량한 이해와 측은지심으로는 턱도 없는 일 ㅜㅜ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시처럼 읊조릴 수 있었다.

 이제부터 가까이에서 보호해 드릴게요 어머니, 우리 잘 지내봐요~~



치매도 육아처럼 14 육아와 간병 모두 기본은 관계 맺기이다. 내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던 이민정 선생님의 프로그램과 책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인간관계 훈련'   https://cafe.daum.net/a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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