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주 May 10. 2021

우리 집 비밀번호가 뭐였지?

치매도 육아처럼 12

 현관 앞에서 한참을 멍하게 서있을 때가 있다.

 뭐였더라? 머리에 대침 수백 방 맞은 듯한 느낌으로 안드로메다를 헤매다 겨우 네 자리 숫자를 기억해내고 삐삐 삐삐 도어록을 풀면서 '나 괜찮은 거 맞음?' 은밀하게 자가 진단해 본다.  '그럼, 그럼, 아직 괜찮아... 생각해냈.. 잖. 아?' 자신감 1 없는 진단 후,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 처방!


 어머니가 당신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전화를 걸어 때론 당황한 목소리로, 때론 어처구니없다는 듯 시니컬하게 "얘, 우리 집 비밀번호가 뭐였지?  나 참 기가 막혀서.. 어쩜 이리 생각이 안 나니?"라고 물으실 때도 가볍~게 믹스커피 한 잔 처방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산책을 나가거나, 마트나 병원에 나갔다 와서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날 때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일이 몇 번 있었다. 조마조마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던 어느 날, 또 문을 못 열고 전화를 하셨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 번호를 알려드렸건만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불러주는 비밀번호를 옆집에까지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따라 외치며 하나하나 눌러보아도 삐릴리리리리 경고음만 요란할 뿐 현관문은 꿈쩍도 안 하고 어머니는 쩔쩔매고 있는 것이 30Km 떨어져 있는 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설마 숫자를 틀리게 누르고 계시진 않을 것이고, 배터리가 다 됐나? 뭐가 문제지?

 "어머니,  아무래도 도어록에 문제가 생겼나 본데 열쇠수리기사에게 출장을 나오라고 하세요."

 "열쇠수리기사라니? 난 모르는데?"

 "도어록 옆에 전화번호 있을 텐데요?"

 "도어록? 옆에? 어디? 뭐가 있다고 그래? 얘, 내가 지금 몇 시간 째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 서 있을 힘도 없다."

 그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아휴 몇 시간은 무슨~~ 몇십 분이겠죠~~.' 중얼대며 과장된 표현을 콕 집어내고야 마는 나. 사실 어머니에겐 몇 시간 아니라 천년만년이 흐른 듯 길고도 암담한 시간이었을 텐데... 아몰랑~후드득 잡념을 털어내고 이 문제 상황을 다시 마주한다.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어머니의 문제 해결 능력은 제로상태... 어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출장요청을 할 수야 있겠지만 비밀번호 설정을 어머니한테만 맡겨둘 수도 없고(혼자 설정하고 잊어버리면 낭패니까 크로스 체크할 1인이 필요하다) 수리기사님한테 부탁하기도 염려스럽고... 아 흑~~ 내가 출동해야 하는 일이구나.ㅜㅜ


 퇴근시간이 다되어 평소보다 막히는 길을 달려 어머니댁에 도착했다. 가뜩이나 어둑한데 현관문 앞에 웅크리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

 도어록 캡을 열었을 뿐인데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는 걸 보니 전문가가 나서야 할 상황.

 도어록 옆에 있는 전화번호가 유효해서 출장요청을 했더니 수리기사님이 오셨는데 기계가 수명을 다해서 새로 교체해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모델로 교체하시겠어요?"

 "원래 있던 거랑 똑같은 모양으로 해주세요."

 "워낙 옛날 모델이라 구할 수가 없어요."

 "그럼 캡이라도 있는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캡이 있는 모델이라..(좀 알아보시더니) 지금 구멍 규격에 맞지가 않겠는데요? 요즘은 터치식을 선호해서 캡 형태는 제품이 다양하지가 않아요."

 아.. 새로운 방식을 어머니가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제품이 없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어서 터치식 도어록으로 교체했다. 비밀번호는 늘 쓰던 번호로 설정하고 새 도어록 여는 법을 가르쳐드렸다.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 또 반복하기를 이웃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눌러 둘 수 있을 때까지..ㅜㅜ

 

 그렇게 교체한 새 도어록은 한동안 어머니 전화의 단골 대사를 바꾸어 놓았다.

 "얘, 우리 집 현관문을 어떻게 여는지 아니? 어디에도 숫자가 안 보인다?"

 방법을 알려드리면 금방 해결이 되긴 했지만 내 마음은 새로운 문제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머니와 함께 살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대사였으므로.

 

 사실 어머니와의 동거가 처음은 아니다. 어머니가 치매진단을 받은 지 1년 후, 다니던 문화센터 생활도 더 하지 못하게 되면서(수강료를 안 내고 냈다고 억지 부리기, 다른 수강생의 미술도구를 당신 것이라 우기기, 식사비를 당신만 부담하는 것이 섭섭하다며 수강생들 원망하기 등의 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무료하고 우울하게 지내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했었다. 그 당시 어머니의 인지상태는 사리 판단능력이 매우 떨어졌지만 기초생활은  그럭저럭 가능한 정도였다. 어머니는 재미있는 생활을 꿈꾸었고 우리로서는 치매가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 몰라 두려운 가운데 이견없이 속전속결로 이사를 추진했다.

 그렇게 우리 집 가까이로 이사를 왔는데 1년이 채 안돼서 원래 살던 곳으로 가겠다고 고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이사 왔을 때, 나는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종일 일하게 되었는데 그러니 낮엔 아무도 없어서 혼자 너무 적적하다는 이유를 드셨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실버대학은 재미없다고 해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언니가 수채화 수업에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스케치를 마치지 않은 상태로 채색에도 집중을 못하고 서성거리며  다른 사람 그림을 평가하기만 하니 강사나 수강생들도 좀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재미가 없어 그만둔 상태였다. 그리고 급히 집을 구하다 보니 햇볕이 아쉬운 동향의 저층집이어서 춥고 어둡다고 사는 내내 불만스러워하셨다.

 내 생각으로야 원래 살던 곳과 비교해도 어머니의 하루 일과가 크게 다를 바 없고 우리로 인해 이모저모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여기가 더 좋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어머니는 다시 돌아가면 훨씬 좋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급기야 이사 갈 아파트를 계약하러 혼자 부동산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그 부동산 사장님은 어머니 상태도 알고 계셨고 무슨 일이 있으면 긴밀히 연락하던 중이어서 섣부른 계약을 막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지금 경도인지장애 상태잖아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그게 좀 더 악화돼서 치매 문턱에 와 있대요. 그러니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주의하셔야 하는데 멀리 계시면 못 챙겨드리니까 우리랑 가까이에 살아요~"

 "약이야 내가 알아서 잘 챙겨 먹는데 무슨 걱정이니? 너희랑 가까이 산다고 뭐 하나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여기서 살아? 난 친구도 만나고 문화센터도 다시 다니게 살던 데로 갈 거야!"

 "엄마, 우리가 엄마한테 잘해 드린 게 하나도 없다고?"

 "그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도 없는데? 너네가 나한테 뭘 해줬니?"

 허걱! 이 무슨 봉변이람. 나도 서운했지만 날벼락 맞듯 시어머니 옆에 살게 된 아내의 심사까지 살펴가며 매일 밤 어머니 약 복용을 도맡았던 남편은 울분을 토해냈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고 나도 울먹이며 서운함을 토로하고...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마련한 진심 어린 설득의 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끝내 어머니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고 결국 1년 만에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가고야 말았다.

서부활극 '황야의 무법자'처럼 어머니는 우리를 초토화시키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준비되지 않은 1차 동거(같은 집은 아니었지만)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4년 남짓 흐르는 사이 병은 점점 악화되어 그때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어머니의 거취 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치매도 육아처럼 12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놀이터에 나가보면 목에 열쇠를 매달고 나온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집에서 아이를 맞이할 형편이 안되어 현관 열쇠를 목에 걸어주며 "잃어버리면 안 돼."라고 당부하던 그 마음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이제는 현관 자물쇠도 디지털로 변해 목걸이 열쇠를 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불안한 부모의 마음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진 않은 것 같다.ㅜㅜ  디지털 도어록에도 열쇠가 있긴 하지만 치매환자에겐 그 열쇠를 잘 간수하는 것이 새로운 숙제가 될 수 있다. 비밀번호를 인식표로 만들어 착용하는 방법 등 인지능력에 맞게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보자. 어머니의 경우, 늘 사용하던 번호를 최근까지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합가 한 지금도 같은 번호를 사용 중이고 어머니 혼자 집을 나갔을 때 몇 차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기억력이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 도어록을 사용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문제뿐 아니라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올 때도 자꾸 엉뚱한 버튼을 눌러 경보음이 울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얘 우리 문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나! 어쩌면 좋니?" 하시는데 경보음을 '삐약삐약'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아파트 옆라인에 살 때라 바로 출동해서 해결해 드렸다. 수동 조작하는 장치 부분을 아예 만지지 못하도록 재활용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고 잘 붙여두어 재발방지에 성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아(迷我) 방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