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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02. 2021

미아(迷我) 방지

치매도 육아처럼 11

“선생님, 어머니가 혼자 지내기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나빠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걸릴까요?”


 치매 초기에도 궁금한 사안이었지만 인지능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이 보이자 과연 언제부터 어머니와 합가해야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저 '관심사'정도로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치매 증세가 악화되면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어머니와의 합가 자체에 대한 무수한 걱정과 불안, 초조감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채 딱 한 군데로 꽂히는, 그런 시각적인 단어 어디 없나...


 신경정신과에서 정기 진료받는 날, 어머니는 진료실 밖에 잠깐 앉혀두고(그때까지는 어머니를 혼자 두어도 내가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온 병원을 뛰어다니고 원내방송으로 겨우 어머니를 찾는 사건을 겪은 후부터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따로 의사 선생님과 면담하며 여쭤보니

 ”글쎄요.. 이게 사람마다 다 달라서.. 음.. 구체적인 시간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아무래도 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좀 헤매다 바로 찾게 되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거든요.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일이 자주 생기는 건 좋지 않고 결국 어느 시점에는 영영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개별 차.. 세상만사 개별 차가 존재한다. 아이의 발육과정도 그렇고 질병의 경과도 그렇고.. 원인도 증세도 다양한 치매의 경우 더더욱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치매는 계단 모양의 그래프로 진행된다고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한 계단 뚝 떨어지듯 나빠지게 되면 나도 어머니도 너무 당황스러울 텐데.. 그 시점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어머니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10년 전만 해도 경찰서에 지문을 등록하고 길 잃은 치매환자를 찾아주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남편이 해외 발령을 받아 돌 지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첫 아이와 낯 선 이국땅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집에서 거리가 꽤 먼 시내에 아이를 데리고 생필품을 사러 갔다. 그리 큰 쇼핑몰은 아니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옆에 있던 아이가 없어졌다. 깜짝 놀라 이름을 부르며 매장을 샅샅이 뒤졌는데 대답도 없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한중사전을 갖고 다니며 겨우 의사소통을 하던 때라 매장 직원에게 제대로 상황 설명도 하지 못하고 혼자 이리저리 헤맸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행동반경이 넓어 어느새 계단을 올라가 위층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불과 10분도 안되었던 시간이었는데 정말 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정지된 것 같던 느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미아방지 끈을 구해 아이 몸에 채우고 내 팔목에 이어 반려동물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시절, 한국에도 별로 흔하지 않았지만 동남아시아에선 더욱이 볼 수 없던 모습이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며 재미있어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 ㅜㅜ 

그러거나 말거나 또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아 꿋꿋하게 구경거리가 되어 주었다. 감사하게도 둘째 아이까지 낳아 키우는 동안 같은 일을 다시 겪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때문에 그 걱정이 소환되다니..

나를 잃어버린 느낌과 아이를 잃어버린 느낌은 서로 닮았을까?

 치매 진단을 받은 지 3년쯤 지났을 때던가? 어머니가 백화점 나들이를 가셨다가 돌아와서 전화를 했다. 큰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못 찾고 헤매 십년감수했노라고. 혼비백산한 그 기분이 그대로 수화기 너머 전해졌다. 눈감고도 다닐 길인데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안 나는지, 내가 왜 이렇게 됐나 모르겠다고 자책하시는데 치매여서 그렇다고 내색도 못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젊은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느니 말도 안 되게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제야 나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휴~~~ 

 그나저나 이제 시작인가? 어떻게 하지?

 치매안심센터에 문의하니 인식표(목걸이나 팔찌에 연락처를 새기는 것)와 핸드폰 위치추적 서비스 정도의 방법을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아직 어머니의 인지능력 상태에서는 인식표를 거부할 것이 분명했고, 핸드폰이야 소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게 뻔했다. 그 당시 이미 핸드폰을 찾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더욱 신뢰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노인복지를 전문으로 하는 언니에게 겪은 일을 이야기했더니 명함을 만들어서 자주 입는 옷이나 가방에 두루 넣어두라고 했다. 세탁을 해도 안전한 플라스틱 소재의 명함을 저렴하게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고 알려주었다. 

 오 홀~ 그런 신박한 방법이?! 역시 약은 약사에게, 노인문제는 사회복지사에게!^^

 

 그래서 바로 명함 제작에 돌입했다. 이름, 전화번호, 집주소, 있어 보이게(^^) 이메일 주소도, 그리고 슬그머니(실은 노골적으로) 아들과 며느리의 전화번호까지.. 무엇보다 어머니의 기쁨을 위해 서양화가라는 타이틀도 빼놓지 않고 그 작은 명함에 모두 모두 챙겨 넣었다. 중요한 한 가지, 어머니의 사진은 필수! 그래야 길 잃은 어머니를 발견한 경우 사람들이 그 명함이 어머니의 것인 줄 바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근의 사진을 사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사진을 크게 넣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가 민망해할 것 같아서 바탕화면을 어머니의 수채화 대표작으로 채우고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을 크고 또렷하게 넣은 뒤 얼굴 사진은 한쪽에 조금 작게 넣었다. 그러나 누구든 충분히 알아볼 수 있도록.

 결과는 대성공!

 명함을 깜짝 선물로 드리니 어머니는 의외로 기뻐하셨다.

 명함 최소 주문 단위가 무려 200장이라 2통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 통은 어머니께 드리고 한 통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수시로 옷 주머니와 지갑, 가방 여기저기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넣어드렸다. 그 명함이 활약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어머니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던 걱정을 그 많은 명함들이 군말 없이 나누어 가져 가 주었다.



치매도 육아처럼 11 치매가족이 길을 잃었을 때, 발견한 사람이 보호자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인지능력에 따라 인식표를 목걸이나 팔찌 형태로 만들어 착용하게 할 수도 있고 자주 입는 옷에 라벨 형태로 만들어 실로 꿰맬 수도 있다. 거부감을 가질 우려가 없다면 경찰서에 가서 치매환자 지문 사전 등록을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단체로 등록을 하게 되어 한결 수월했다. 

 명함은 2개 만들고 더 만들 일이 없어졌다. 합가 하게 되어 낮에는 센터에서, 밤에는 집에서 보호가 가능하게 되었고 지문등록도 마쳤기 때문이다. 다량의 남은 명함은 경비아저씨나 이웃주민들에게 나눠드리며 만약의 경우 배회하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게 된다면 연락해주십사 부탁하는 용도로 요긴하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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