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희 왔어요!"
"오! 어쩐 일이야?"
불과 30분 전에 곧 만나자고 통화했음에도 까맣게 잊고 뜻밖의 방문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늘 있는 일이니 굳이 설명은 생략한 채 어머니를 지나 손에 든 음식 보따리를 식탁 위로 가져다 놓으려는데, 훅~끼쳐오는 냄새! 언젠가 지하철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노숙자에게서 나던, 그 잊을 수 없는 냄새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게 웬일인가..
치매를 앓으면서부터 점점 드시는 것도 부실해지고 여러모로 마음이 놓이질 않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어머니댁에 방문하던 때였다.
어떻게 된 거지? 지난 주만 해도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킁킁..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냄새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모든 후각을 끌어모았다. 분명 어머니가 입고 계신 옷이 악취의 주범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에도, 그 전 주말에도 같은 옷을 입고 계셨던 것 같은데... 설마 세탁하지 않고 내내 입으셨다고? 건조대엔 늘 빨래가 널려 있었잖아.. 이상하다? 다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건조대에는 세탁하지 않은 빨랫감이 가지런히 널려 있었고 어머니는 태연하게 방금 세탁해서 널었노라며 가까이 와서 말씀하시는데 구취까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읍!
싱크대 수저통에, 화장대 빗꽂이에, 식탁 위 필기구 꽂이에.. 여기저기 꽂혀 있던 칫솔들이 떠올랐다. 싱크대에서 양치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쓰기 편한 곳에 두시나 보다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매일 쓰는 칫솔이 여러 개인 것 자체가 이상하다. 양치질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가 아닐까?
청결관리능력에도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살펴보니 그제야 하나 둘 꿰어 맞춰지는 장면들...
바깥출입이나 운동도 뜸해지고 햇반이나 햄, 라면 같은 즉석식품을 드시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냉장고의 잔반, 재활용 쓰레기통에 담겨있는 빈 용기들, 마트 영수증 따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틈에 어머니의 허리둘레는 3인치 가까이 늘었다. 고백하면, 살이 찐 어머니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만 생각했지 입던 옷이 작아졌으니 새 옷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야 살뜰하지 않은 며느리의 생각으로 치부한다지만 어머니도 몸에 맞는 새 옷을 사 입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셨나 보다. 그즈음 백화점 나들이에 나섰다가 버스를 잘 못 타는 실수를 한 후로 되도록 시내 나들이는 하지 않고 계셨으니 더욱이 새 옷을 접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용케 허리춤이 맞는 것을 찾아 입으시긴 했는데 그렇게 맞는 옷이 또 없으니 늘 같은 옷만 입게 되었을 터. 윗 옷은 겹겹이 껴입으시고 땀을 흘린 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노숙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멀쩡한 옷의 실밥이 모두 뜯긴 채 마름질 상태로 한편에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재봉 솜씨가 좋아서 원피스, 재킷, 바지, 스커트 할 것 없이 손수 옷을 지어 입곤 했기 때문에 리폼을 하시려나보다 자연스레 보아 넘겼는데 이제는 간단한 수선조차 할 수 없게 되신 모양이다.
방 한구석에 해체된 채 쓸 모 없게 된 스커트의 처량한 모습. "난 이제 아무짝에도 쓸 모가 없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거기에 깃들어 있었을까...
악취는 어머니 몸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다.
화장실 욕조나 변기도 너무 더러워서 청소하지 않은 채 사용하기에 퍽 괴로운 상태였다. 용변 후 변기에 물 내리는 걸 자주 잊으시니 화장실 변기는 일주일 새 곰팡이와 소변 때가 잔뜩 끼어 있고 평소 샤워 후 반짝반짝 닦아 놓던 욕조도 어찌 된 일인지 제 색을 잃고 있었다.
싱크대 거름망에도 남은 음식찌꺼기를 비우지 않아 곰팡이를 비롯하여 기름때가 잔뜩 생겨서 독한 세제로 닦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가득 차 뚜껑을 활짝 열고 초파리를 맞이하고 있었고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음식물쓰레기를 함께 버려 초파리는 물론 애벌레들이 제 세상 만난 듯 득시글거렸다. 처음엔 종량제 봉투에 뒤섞인 음식물쓰레기를 일일이 가려내어 버리다가 나중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꽁꽁 묶어 새 봉투에 담아 나의 양심과 함께 눈 질끈 감고 일반쓰레기 수거함으로 슝~ㅜㅜ
재활용 쓰레기 역시 베란다에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주말에는 배출이 안 되는 아파트라 쓰레기를 차에 실어와 우리 아파트 수거일에 내다 버려야 했다. 그나마 어머니가 못하게 하시니(다 쓸 데가 있다며 버리지 말라고 대단히 역정을 내셨다) 남편이랑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치며 겨우 쓰레기를 처리했다.
어머니는 그동안 나에게 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분이다. 심지어 처음 악취를 맡은 날조차 겉모습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다 읽은 신문도 새 것처럼 각을 맞춰 정리해 두시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수집한 그 많은 장식품에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으셨던 깔끔 대장 어머니가 집안 곳곳에서 진동하는 악취를 어떻게 참고 계셨을까..
치매는 후각의 기억을 훔쳐먹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치매도 육아처럼 10 육아를 할 땐 아이의 키와 몸무게, 발 크기 등등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변화를 확인하며 옷이나 신 심지어 수저 크기까지도 세심하게 바꾸어 주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해서는 다 자란 성인이라는 생각에 아무래도 둔감하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경우는 인지능력이 하루하루 저하되므로 스스로의 변화를 알아채기도, 표현하기도 어려우니 아이들처럼 살펴 드릴 수밖에 없다.
몸무게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측정해서 자주 보는 달력에 기록해 두니 좋았다.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기초자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간보호센터에서 신체계측뿐 아니라 혈당 수치까지 정기적으로 체크해주니 훨씬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허리둘레는 따로 기록하지 않았는데 모든 바지를 얼른 입고 벗기 좋은 고무줄 바지로 교체했기 때문에 허리 치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다. 4계절 바지를 사다 보니 고무줄 바지라고 다 편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옷감에 신축성이 많아서 허리춤이 엉덩이둘레보다 더 많이 늘어나는 고무줄 바지만 고집하신다. 쭉쭉 늘어나지 않는 고무줄 바지가 의외로 많으니 힘껏 늘여보고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