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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06. 2024

계단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치매도 육아처럼 38



 "계단식 그래프를 떠올리면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려가는 형태로... 치매는 그렇게 진행됩니다."


 어머니가 치매진단을 받았을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해 막막해하는 내게 의사가 해 준 말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그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나빠진 순간을 맞게 되는데 그럴 때 필요한 조치를 하면 된다고. 

 의사가 허공에 그림을 그렸는지 종이에 그렸는지, 아니면 내가 상상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는 선명하다.


 그랬다. 

 그 이미지처럼 어머니의 병세는 어느 날 갑자기 나빠질 때가 있었고 급속히 나빠질까 봐 놀라고 걱정했지만 그 상태가 한동안은 쭉 유지되다가 다시 어느 날 뚝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조마조마했지만 예상외로 유지기간이 길어 안심하기도 하며 비교적 완만한 치매의 계단을 밟아 왔다.


 그런데 부쩍 계단이 좁고 가파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발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고 합가하고 두 번째 해를 보낼 무렵이었다.

 대소변 실수가 잦아지긴 했어도 그것은 노화로 인해 괄약근도 약해지고 행동이 느려진 탓에 일어나는 실수이거니 생각했는데 확실히 인지기능이 나빠졌음을 확인한 사건이 있었다.

 친정부모님을 만났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한 일이 그것이다.

 코로나로 서로 왕래하지 못한 지 2년이나 지났으니 그동안은 확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해외에 살고 있던 아주버님이 오랜만에 오시면 잠깐은 누구인지 갸웃해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아보셨고 자주 드나들다가 코로나로 방문이 뜸했던 언니나 형부도 오랜만에 만나게 될 때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기 때문에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코로나 기간에 친정엄마는 무릎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해졌고 아버지도 노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여서 주중에는 방문요양을 받으며 지내고 주말에는 우리 자매들이 번갈아가며 돌보고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면 남편이 어머니를 맡아주어서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해외 현장으로 발령이 나서 출국한 후 처음 돌아온 친정부모님 돌봄 당번 때, 남편대신 딸에게 어머니를 맡길까 하다가 모처럼 여행도 할 겸 딸과 반려견까지 모두 데리고 친정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겁 없이 2시간 30분여의 기차여행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객차에서 제공하는 잡지나 좌석 헤드에 부착된 일회용 덮개를 당신 거라고 우기는 일만 빼면 마스크도 곱게 착용한 채 졸기도 하시면서 비교적 무난하게 부산에 있는 친정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어디야?"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또 물어보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탄 엄마와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머니는 얼떨떨해하면서도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나를 향해 

 "이 어르신들은 누구셔?"하고 물으셨다. 

 "예~ 우리 엄마 아버지세요! 너무 오랜만에 만나니 얼른 못 알아보시겠어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어? 엄마 아버지를 못 알아보시네?

 코로나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조금 지나면 생각이 날 수도 있어,

 아니야, 그동안 알아챌 만한 상황이 없었을 뿐 인지력이 급격히 떨어진 건지도 몰라!

 

 짧은 순간 갖가지 생각에 머릿속은 소란하고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어머니의 표정이 편안해 보여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아니, 방심했다.


 어른들에게 과일을 내어 드리고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다녀오게 되었다. 신을 신고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과일이 달다, 집이 참 좋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네에 가 있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서 온나! 지금 난리가 났다, 사돈이 지금 내 옷을 다 빼들고는 소리를 지르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대답은커녕 어머니가 질러대는 고함소리에 엄마까지 언성을 높이며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고 무슨 일이람!


 집으로 가보니 어머니가 옷걸이에 걸린 옷을 잔뜩 꺼내서 그대로 한아름 안고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과일 몇 조각을 잡숬고는 이 방 저 방 구경을 하더니만 느닷없이 내 옷을 다 꺼내서 저리 안고 나오는기라! 내 옷을 왜 갖고 나오시냐고 하니까 다 자기 옷이라고 막 소리를 안지르나?"

 "무슨 소리야? 이거 다 내 옷인데 왜 자기 거래? 어? 도둑년! 무식한 게 이게 어떻게 지 꺼야?!"

 "어머니! 뭐라고요?"


 '도둑년' '무식한 게'라는 단어에 나도 분이 나서 꽥 소리를 질렀다.

 일순간 조용해지자 아차차 어머니는 치매환자인데 내가 이렇게 흥분하면 안 되지, 휴우~

 마음을 가다듬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무겁게 안고 있던 옷을 받아 들었다.


 "아~ 이 옷이 어머니 옷이랑 비슷하죠?"

 "무슨 소리야? 내 옷이라니깐?"


 억울함을 호소하는 어머니 몸에서 후끈 열기와 함께 찌린내가 진동했다.

 옷을 내려놓고 슬쩍 만져보니 바지에 실뇨를 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멘붕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저항한 것이다.

 딸도 친구 만나러 나가서 없었으니 기억나지 않는 낯선 곳, 낯선 사람 속에서 불안이 극대화되고 그나마 작동하던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다 내 탓인데 소리를 지른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돌봄 상황을 어찌 맞이할지 두려운 마음으로 아직 분이 가시지 않은 어머니를 달래며 씻기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드렸다.


 한편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엄마와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가 어머니를 진정시켜 모시고 나오는 나에게 

 "아유... 우리 딸이 큰 고생 한다."

 라고 애처로운 얼굴로 조용히 위로의 말씀을 건네셨는데, 나는 그저 노인 속에 갇혀 고립된 느낌이 들며 힘이 빠질 뿐이었다. ㅜㅜ

이제 세 분  모두에게 그날의 기억은 없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를 더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실뇨나 실변도 잦아질 뿐만 아니라 실뇨한 팬티 위에 새 팬티를 덧입는다든지(3장을 껴입은 적도 있다) 실뇨후에 팬티는 안 갈아입고 젖은 바지만 갈아입는다든지 실뇨한 팬티를 빨지 않고 옷장에 넣는 일이 생겼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범위도 점점 좁혀졌는데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딸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참 예쁘게 생겼네? 엄마도 예쁘겠어."

 '헉!!!!!!!'


 그 의문의 예쁜 엄마인 나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고 놀란 눈으로 딸을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가 우릴 못 알아보시나 봐!'

 '응! 그런 것 같지?' 


 "어머니, 쟤 엄마 본 적 없어요?"

 "응! 난 누군지 모르지."

 "저는 누구예요?"

 "호호호 누구긴 누구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지! 호호호.."

 "그니까, 어머니가 좋아하는 이 사람 이름은 뭐게요?"

 "호호호 이름은 말해 뭐 해? 나 참, 호호호"


 끝내 내 이름도, 우리의 관계도 맞히질 못하고 과장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 누군지 정확히 모르지만 늘 보는 사람이고 당신을 돌봐주는 사람이라 경계심을 갖지 않고 계신 거였구나.

 환경이 바뀌어서 증세가 나빠진 건지 증세가 나빠지고 있었는데 바뀐 환경이 그것을 알게 해 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어머니는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팩트일 뿐이다.

 그러니 든든한 우군으로서 국면을 전환할 첨단 신무기를 신속히 투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게 있는 건 그저 익숙한 재래식 도구들 뿐.

 실뇨문제는 팬티기저귀를 입히는 것으로 대비했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문제는 상대방에게 미리 언질을 주고 내가 누구인지 알겠냐질문을 삼가 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니가 당혹감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기를, 그래서 그 인지상태에서 조금 더 버텨주시기를 바랐다.


 다음 계단까진 또 얼마나 남았을까..

 이 계단이 그대로 평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계단이 언제 나타날지, 내가 디딜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고민조차 생략하고  어머니와의 동행을 마음대로 중단해버릴거였으면서 그땐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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