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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行 어머니의 왓츠인마이백

치매도 육아처럼 45

by 박경주

요양원 입소 날짜를 정하고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요양원에서 요청한 준비물 목록은 다음과 같다.


<서류 준비>

1. 장기요양인증서

2. 개인표준계약서

3. 진료의뢰서

4. 한 달 이내 건강검진 결과지 - 결핵, 간염, 매독 혈액검사

5. 24시간 이내 코로나 검사결과

6. 복용 중인 약과 처방전

<생활용품 준비>

1. 생활복 상, 하의 서너 벌

2. 속옷, 양말 예닐곱 벌

3. 외출용 외투, 모자, 운동화


다 챙기고 보니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시간과 노력에 비해 짐가방이 단출했다.

외투(4월이라 꽃샘추위를 막을 정도의 가벼운 것이기도 했고)야 직접 입고 가시고, 기저귀 착용에 브래지어도 안 입으시니 속옷마저 런닝 몇 장이면 되어서 기내용 트렁크보다 작은 여행용 손가방 하나가 전부.


한 사람이 살든 몇 식구가 살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펼쳐 놓으면 아찔해질 만큼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삶을 꾸릴 능력이 없어진 어머니의 살림은 며칠치 여행짐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이었다.

외출할 일이 드문 단체생활이고 다른 생필품은 요양원에서 제공하니 그런 것이지만, 준비물을 모두 넣고도 작은 가방 하나가 다 차지 않았다. 헐렁한 가방을 보니 아무래도 부족하게 느껴져서 뭐라도 더 챙길 게 없나 메모지를 앞에 두고 한참을 궁리했다. 그래도 떠오르지 않아 어머니방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합가를 하며 대부분 정리했음에도 철마다 입을 옷이 빼곡히 수납된 옷장을 열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모두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요양보호사님들이 갈아입히기 수월하고, 건조기에 말려도 수축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 튼튼한 옷감이면서 어머니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아야 하고, 색상도 이왕이면 칙칙하지 않은 걸로 하되 오염에 강한 것으로... 무엇보다 수납공간이 적고 관리가 어려우니 최소한으로.

그러다 보니 옷은 더 챙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수북하게 소지품이 들어찬 서랍을 열어 보아도 마땅한 게 없었고.

마지막으로 화장대 위를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며 나름의 방법대로 진열해 둔 장신구들이 '나도 따라갈래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외치는 것만 같았다.


'우리 어머니 이제 옷장 정리(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겨서 옷장을 뒤죽박죽 만들어놓는 지경이었지만;;)하는 재미도, 서랍 정리하는 재미도 못 누리시겠네... 눈썹 그리기는 하실라나? 펜슬은 하나 넣어 볼까? 로션은 새 걸로 챙겼으니 쓰던 건 놔두고. 손에 익은 빗이니까 이건 챙겨 넣지 뭐. 목에 두를 수 있는 큼직한 손수건도 하나쯤 필요할 거야. 또 뭐가 있나? 하이고... 소품 몇 개 더 넣어봤자 짐이 고작... 요양원에서 살면 미니멀한 삶은 실현할 수 있겠군.'


짐을 챙기다 말고 그야말로 '해당사항 없는' 생각에까지 이르러서야 가방의 지퍼를 지익 닫았다.



왓츠인마이백.jpg 짐가방이 가득 찼다 한들 내 무거운 마음을 1mm라도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나는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꾸역꾸역 물건을 집어 넣었다.



치매도 육아처럼 45 <서류 준비> 건강보험공단과 병원에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면 된다. 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가지 않아도 발급이 되는 서류와 모시고 가야 하는 서류를 잘 구분해서 계획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은행 공인인증서가 없다면 입소 전에 은행에 모시고 가서 발급받는 것이 좋다. 인터넷으로 본인확인 서류발급을 하거나 국가에서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사용할 때 편리하다.

<생활용품 준비> 사계절 옷을 다 준비해 가도 무방하지만 병세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서 당분간 필요한 것만 챙겨도 충분하다. 어머니의 경우 체중이 늘어나는 중이어서 평소보다 큰 사이즈를 여벌로 준비했다. 아무래도 입히고 벗기기가 수월하고 어머니 본인도 편하다. 단추가 많은 옷은 탈착 시간이 많이 들고, 벨크로가 부착된 건 세탁 시 다른 옷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많은 양의 세탁과 건조를 하는 요양원의 특성상 옷감이 집에서보다 빨리 낡기 마련이라 줄어들 염려가 있거나 약한 섬유는 피하는 것이 좋다. 니트나 아사면 소재는 금물.

실내생활을 주로 하지만 체감온도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니 가벼운 조끼를 준비해 드렸는데 아주 유용했다.

개인의복 식별을 위해 요양원에서는 흰 헝겊에 유성펜으로 이름을 큼직하게 써서 옷마다 손수 바느질해서 붙여주는데(친정엄마가 한 달간 계실 때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수용소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쩐지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어머니 이름도장과 헝겊라벨을 주문하고 깔끔하게 이름표를 만들어서 옷마다 재봉틀로 튼튼하게 박아 드렸다. 양말 바닥에도 아낌없이 어머니 이름 도장을 찍어드렸다.

그런데 면회하면서 보니 커다랗게 어머니 이름을 쓴 헝겊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헝겊용 잉크도 여러 번 세탁에 속절없이 번지고 지워졌던 것이다;;; 그 후부터 새로 옷을 보낼 때는 헝겊라벨에 네임펜으로 정성껏 이름을 써서 붙여드리고 있다. 요양원 측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조금이나마 깔끔하게 라벨링을 하고 싶어서다.

양말은 색을 통일하니(어머니가 좋아하는 연보라색 양말을 묶음으로 구매했다) 쉽게 구분은 되는 것 같았다.

외투도 물세탁할 수 있는 옷감으로 준비했고 모자는 와이어가 유연하고 세탁이 가능한 걸로 준비했다.

운동화는 신축성 있는 끈(다이소에서 구입)을 끼워 신던 것을 보냈는데 최근에 신고 벗을 때 어머니의 협조가 어려워져서 벨크로가 있는 노인용 운동화(검색 키워드:어르신 벨크로 운동화)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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