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육아처럼 48
남편은 눈물이 많은 편이다.
다큐는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도 콧물까지 범벅이 될 정도로 운 적이 많다.
오죽하면 장거리 해외 출장 때 비행기 안에서 볼 책이나 영화는 눈물샘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신중히 고르라고 당부할 정도다.
그런데 어머니 발병 이후,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소하던 날도 오히려 내가 울까 봐 노심초사하며 '괜찮아?' 하고 다독여주어 민망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나 몰래 울었을까?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긴 하지만,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문제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감상에 젖을 새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이다.
그런 남편이 어머니 앞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올라 와락 눈물이 솟구친다.
해외에서 일하는 남편은 3개월에 한 번 휴가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5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귀국할 수 있었다.
그날은 아마 어머니 입소 후에 처음으로 면회를 한 날이었을 것이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영상으로 어머니를 보여 드렸지만 대화가 원활하지 않고 어머니의 호기심이 금방 식어버려서 내 쪽에서 서둘러 전화를 끊은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어머니를 뵙지 못한 것과 다름없었던 남편은 내가 처음 면회를 갔을 때처럼 설렘 반 걱정 반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을 게다.
유리문으로 나누어진 면회실 저편으로 마스크를 쓰고 위생장갑을 낀 어머니가 입장했다.
우리도 마스크를 쓴 상태로 우르르 유리벽 가까이 몰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엄마! 잘 지내셨어?"
"어머니이~~"
"호호호 그럼요! 나야 잘 지내죠!"
어머니를 모시고 온 선생님이
"어르신, 저분 누구예요?"
하고 묻자
"응~ 오빠야!"
하고 반갑게 대답했다.
남편은 서운한 기색을 숨기고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그래요? 호호호"
오빠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색하게 대답하는 어머니에게 내가 살짝 힌트를 드렸다.
"어머니 아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우시죠?"
"오오 그럼! 반갑지!"
드디어 기억이 난 건지(그 당시만 해도 정말 가끔 아들을 알아볼 때가 있었다), 그러려니 넘겨짚는 건지 아들을 대하는 말투로 명랑하게 답했다.
"엄마! 요새도 노래 많이 부르셔?"
"노래? 그럼! 내가 젤 잘하지!"
"지금 한 곡 들려주시면 안 될까?"
"에이 갑자기 그러니까 생각이 안 나, 다 잊어버렸어."
"왜, 섬마을 선생님 잘 부르시잖아!"
"응 그랬지! 근데 요샌 안 불러."
심드렁하게 대답하시곤 어머니는 우리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위생장갑이나 손소독제 같은 것에 더 관심을 보이며 그것들을 만지작거리셨다.
대화가 끊어지는 것을 참지 못한 나는,
"어머니 그럼 아들한테 섬마을 선생님 불러 달라고 할까요?
(남편을 보며) 자, 시~작!"
얼떨결에 남편은 노래를 시작했다.
"해~애당화 피고 지이는~ 서엄 마으을 에~
흑흑흑"
갑자기 터진 울음 때문에 한 소절 겨우 부르고 노래는 끝나 버렸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데 마스크 아래로 타고 흐르는 눈물까지 수습이 되지 않아 어쩔 줄 모르는 남편.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와 분위기는 급우울해졌다.
"왜 울고 그래~"
"괜히 노래는 시켜가지고..."
뒤돌아 훌쩍거리며 노래 탓인지 내 탓인지 모를 핑계를 대는 남편에게 분위기 반전이 될 만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았다.
'그러게, 괜히 노래를 시켰네.'
뜨끈하고 묵직한 대답이 목구멍에 걸려 있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