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한 바보

by 청아

뒤돌아보면 삶이 바뀌는 패턴은 대부분 두 가지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하나는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휩쓸려 가는 것,

다른 하나는 터질 듯한 열정에 이끌려 진심을 다해 뛰어드는 것.


언제라도 찾아가 아무 조건 없이 기댈 수 있었던 부모님이 더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

유방 상피내암 진단을 두 번 받았던 것,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나 자신과 주변인들을 힘들게 만들게 될 줄 모르는 채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것 ..

진심으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예' 와 '아니오' 중 '아니오' 칸에는 클릭을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던 일들이었다. 내가 클릭하지 않았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예' 에 자동클릭이 되면서 내 인생이 진행되어 갔다.


반면, 나 스스로 삶의 변화게 기꺼이 뛰어들었던 적도 있었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적성과 맞지 않아 힘겹게 다녔던 회사를 마침내 그만두고 상하이에 계시던 부모님 댁으로 가서 쉬고 있었다. 그 즈음, 내가 생각해낸 것 치고 꽤 괜찮은 듯한 아이디어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모든 사람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과 연관되어 있네. 이 참에 부동산이라는 분야와 어떤 식으로든 좀 친해지면 좋겠다.'

내 생각을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적극 찬성이었다. 마침 엄마가 교사를 맡고 있던 한인 교회의 다른 고등부 교사 분들 중에 부동산 관련한 일을 한다는 분이 계시다면서 그 분과 함께할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과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른다. 아마도 그 때 떠올랐던 생각은 남편에게 다가가도록 이끌기 위해 내 영혼이 슬그머니 놓아준 디딤돌이었나보다.


어느 누구도 우리가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띠동갑을 훨씬 넘어서는 나이차가 났다. 게다가 당시에 상하이의 습한 기후 때문에 고생했던 남편은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보다도 훨씬 늙어보였다. 어쩌다 남편의 지인을 마주치게 되면, 그들은 당연한 듯 남편 옆에 있는 나를 '따님' 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학교 정문 앞에 음반 가게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 우산을 쓰고 수업을 들으러 걸어가던 길이었다. 바이올린 소리가 나를 휘어감기 시작했다. 나는 음반 가게 앞에 서서 다음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바이올린 선율에 나를 내맡겼다.

모짜르트였다.

우산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바이올린 연주 소리, 옆에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새침한 또각또각 구두 소리, 미세한 듯 강렬한 나의 심장의 리듬... 그리고 모짜르트가 있었다. 영원같은 순간이었다.

얼마 동안 그러고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는 가려고 했던 수업에 출석을 못했다.


남편과 함께 서로를 향해 느꼈던 감정은 그 때 학교 앞에서 느꼈던 모짜르트의 선율에 또 한번, 그보다 수백 배는 더 강력하게 휘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니, 영원히 풀려나고 싶지 않은 매혹적인 밧줄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토록 강렬한 감정의 폭풍 속에 이성을 담당하는 나의 좌뇌는 완전히 그 기능을 잃었다. 그 어떤 숫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이도, 돈도, 머리숱도(그 때는 머리가 조금만 더 빠지면 그냥 밀자고 했었다.).


그 때는 우리가 걸어가게 될 길에 대해 남편도 나도 몰랐다.

남편은 서울 토박였고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성장했지만, 나는 전라남도 출신인 엄마의 문화권에서 자라났다.

남편은 이성적인 대화에 능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지성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사회 생활을 해왔던 남편은 사회의 리듬에 따라 성격이 급했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빨리 해내는 게 어려웠다.

남편은 회사 다닐 때도 일을 워낙 잘 했고, 스스로 일군 사업도 성공적이어서 남편이 개발한 빌딩이 오랜 동안 강남의 랜드마크가 되었었던 반면에,

나는 나 스스로가 아스퍼거 증후군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서로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게 말처럼 마냥 설레이거나 신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 부딪힘이 일어나고 그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하나씩 깨우쳐 가는 고된 과정이었다.


결혼 전에 서로에게 정신없이 빠져들던 때는 점 하나만큼 조차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머나 왜 이렇게 많지 싶은 단점들과 약점들을 '싫지만 참아주는 너의 것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두 다 소중한 나의 것들'임을 깨닫는 그 길은 신발의 보호막 없이 맨발로 딛으며 하나하나 느껴가는 마음의 비포장 도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결혼 전의 뜨거운 바이올린 선율에 있지를 않고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걸어가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걸어갔던 그 울퉁불퉁한 길 위에 있었다.



타로 카드의 첫번째 카드는 '바보 (THE FOOL)' 이다.

뜨겁게 비추는 강렬한 햇살에 100% 충전된 듯한 한 청년이 홀린듯 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절벽으로 걸어간다. 왼손에 든 하얀 꽃처럼 그가 순수했기에 저렇게까지 홀릴 수 있었을 것 같다. 화려한 옷은 청년의 열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 하다. 아마도 청년은 저렇게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며 한 걸음을 더 내딛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 뒤로 보이는 크나큰 파도에 휩쓸려 한참을 허우적 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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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카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림 속에 내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남편만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나.

앞길에 대해 계산은 없었으면서도, 내가 내딛는 발걸음에 온전히 열려있던 나.

연애 감정 속에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삶을 찬양했던 나는 꼭 이 카드 속 청년처럼 빛났다.

아름다웠다.

원더풀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 거라는 걸 다 아는 상태에서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다시 절벽에서 뛰어내릴까?

기꺼이. 기쁘게. 천 번이라도 다시 뛰어내릴 것이다.


뛰어내리는 게 나에게 더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따져서가 아니라, 그 어떤 계산이나 두려움 없이 심장의 이끌림만을 따랐던 그 원더풀한 바보가 바로 진정한 나이기 때문이다.

원더풀한 바보인 나 자신을 느끼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 남편과 하나가 되겠다는 신성한 언약을 나의 가장 진실된 상태에서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앞으로 걸어나갈 나의 삶의 여정 속에서도 절벽을 마주할 때마다 원더풀한 바보가 되어 기꺼이 뛰어내리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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