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해본 적은 없지만, 글쓰기는 왠지 낚시와 닮았다.
무엇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쓸지조차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있으면 나의 내면 어딘가로부터 나를 글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듯한 어떤 아이디어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물고기들을 내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 나의 나아바리 안으로 헤엄쳐 들어온 물고기를 내가 잡아올리는 것 뿐이듯이.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을 때 내가 졸고 있거나, 전에 잘못했던 어떤 일에 대한 생각들로 온통 가득차 있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를 계속해서 곱씹고 있느라 파르르 떨려오는 낚시대의 진동을 느끼지 못하면, 물고기는 금새 빠져나가 제 갈길을 갈 것이다.
글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글감이 입질을 할 때 얼른 낚시대를 확 들어올려 글로 써내지 않으면 글감의 감동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나로부터 빠져나간 물고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 글감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나면 어느 길로 도망갔을지 도무지 알 수 없어진다.
다가온 글감을 잘 잡아서 글로 써내고 나면, 그 글은 내가 잡은 물고기처럼 나의 것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나 스스로가 감동을 느낀다.
물고기의 비늘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아가미의 곡선은 뜻밖에 섬세하다. 껍질 안쪽은 이토록 부드럽다... 내가 건져올린 생명의 모습 하나하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책상에 앉아 나의 마음 속에 작은 조각배를 띄운다. 간밤에 정성껏 준비한 낚시 도구들을 조각배 한 켠에 얹고, 다른 한 켠에 자리잡고 앉는다.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내면의 바다에 띄우는 작은 조각배. 그리고 노를 젓는 나.
이 광경을 드론을 띄워서 버드뷰 항공사진으로 찍었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사진에서 노를 젓기 시작하는 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보면, 내 얼굴은 하도 인상을 써서 눈썹 사이가 주름들로 빼곡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 피가 날 지경이다.
오늘은 어떤 물고기가 잡힐지 몰라 두렵다.
나에게 다가온 물고기가 너무 강렬해서 내가 놓칠까봐 두렵다.
나에게 다가온 물고기가 너무 커서 내 조각배를 망가뜨릴까 두렵다.
나에게 다가온 물고기가 너무 작아서 별 볼일 없을까봐 두렵다.
나는 더욱 더 나 자신의 깊은 안쪽으로 노를 저어가고, 새롭게 생겨난 두려움들도 배 안에 올라탄다.
나에게 다가온 물고기가 물 밑에 둔 채 외면하고 싶은 나의 어둠을 물 밖으로 끌어올릴까봐 두렵다.
오늘 나에게 다가온 물고기가 어제 내가 잡았던 물고기보다 못생겼을까봐 두렵다.
오늘 나에게 그 어떤 물고기도 헤엄쳐 오지 않을까봐 두렵다.
두렵다. 두렵다.
무엇이 어떻게 왜 쓰여질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새하얀 종이는 불확실성 그 자체다. 아스퍼거 증후군인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바로 그 불확실성 말이다.
그럼에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는 또다시 혼자 방 안으로 들어가 마음의 노를 젓는다.
오늘의 내가, 비록 쫄보이기는 하나, 나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작은 용기와 힘을 내어 노를 젓는 쫄보이기를 바래서다.
나는 내가 나에게 다가오는 물고기를 친절함과 기쁨으로 건져내는 쫄보였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조각배를 타고 어부의 노래를 부른다.
나의 내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오늘 만날지도 모를 물고기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을 노래하며,
뱃길을 나설 때마다 꼭 따라오는 두려움도 함께 노래한다.
그 모든 감정이 모여,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여전히 노를 젓고 있음을, 이 진동이 곧 나의 존재임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