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식사하세요~!"
드디어 남편을 부른다.
식탁에는 무생채와 얼갈이 겉절이, 설탕을 넣어 달달하게 익힌 달걀말이,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뚜껑이 덮인 작은 냄비를 놓았다. 남편은 한식을 먹을 땐 이런 단짠의 조합을 좋아한다.
남편이 냄비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황갈색의 된장찌개가 씨익 웃으며 나 어때 하고 묻는다. 남편이 국물을 숟가락에 떠서 한 입 삼키고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야아아아아아~!"
그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웃음이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이 몰아쳐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남편은 무생채도 적당히 젓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넣고는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한다. 인상을 찌푸리기까지 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댄다.
"청아야아, 너어무 맛있어..."
3일 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옷 입고 반쯤 누워 넷플릭스에서 <아빠는 꽃중년>을 보다가, 신성우 님이 무생채를 만드는 장면에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무우를 꺼내어 썰기 시작했다. 밤 열시 반에 채 썰은 무우에 고추가루를 뿌려가면서 내가 지금 잘 밤에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는데, 그 무생채를 남편이 이토록 사랑해주니 예상치 못한 감동 포인트에 가슴이 마구 뛰어논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도 아니고, 큰 돈을 벌어들인 것도 아닌데도, 많은 이들의 우러름을 받는 것과도 관계 없는데도,
그냥 너무 행복해서 어쩌면 죽기 직전에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오늘 점심 같은 순간이 그렇다.
남편이 내가 만든 된장찌개를 모든 감각을 모아서 음미해 주고 기뻐해주는 순간.
남편이 내가 만든 무생채가 너무 좋아서 줄어드는 게 아쉬운 나머지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다가, 반찬통에 무생채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먹을만큼 소중히 대해주는 순간.
둘이서 마주보고 서로가 맛있어 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며 기뻐하는 순간.
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점심 한 끼인데도, 나는 여러가지 감정을 경험한다.
식재료들을 나 나름대로 조화시켜가며 요리를 만드는 재미,
간장이 내 의도보다 많이 콱 쏟아졌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래도 찌개가 짜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의 안도감,
요리하다 새로운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의 기쁨,
남편이 과연 맛있어할까 하는 기대감,
남편이 맛있어하자 몰려드는 환희,
여러가지 맛과 나의 몸이 하나가 되는 반가움,
남편과 같은 맛을 공감하고 있다는 즐거움,
이 귀한 음식들과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감사.
매일같이 하는 식사가 매일같이 즐겁고 감사하다는 게 어쩌면 기적 아닐까.
진정한 행복은 매일같이 나의 집 식탁에 차려져 있어 내가 마음으로 먹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된장찌개 >
멸치 육수를 낸다.
멸치 내장을 제거한 후 기름을 더하지 않은 채로 냄비에서 볶는다. 비린내가 날라가고 고소한 냄새가 날 때까지.
불을 끈 후 3분쯤 식혀 주었다가 물을 붓고 끓인다. 이 때 물은 쌀뜨물이나 전날 저녁에 다시마를 넣고 하룻밤 우려낸 물이면 더 좋다.
무우는 익는 데에 오래 걸리니 멸치 우릴 때 같이 넣어 익혀준다.
뚝배기 같은 작은 냄비에 다진 파와 보리 새우 한 웅큼을 참기름에 볶는다. 다진 마늘 한 큰술도 같이 볶는다.
진간장 조금, 국간장 조금을 냄비 바닥에 끓였다가 같이 섞어준다.
비정제 갈색 설탕을 한 티스푼 혹은 반 티스푼 넣어준다.
카나리 액젓도 살짝만 넣어준다.
된장을 한 큰술 반 정도 넣고 같이 볶는다.
멸치 우린 물을 넣고 끓여준다.
미리 익힌 무우도 된장찌개로 옮겨준다.
끓을 때까지 강불로 하다가 끓고 난 후에는 중불로 한다.
감자를 먼저 넣는다.
감자가 반쯤 익으면 양파와 애호박을 넣고 끓인다.
거의 다 익었다 싶으면 팽이버섯과 적당히 썰은 고추를 넣고, 작은 큐브 모양으로 썰은 두부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얼은 두부를 사용하면 식감이 더 좋은데, 이 때는 두부를 팽이버섯 넣기 전에 넣어서 얼었던 두부가 따뜻해지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