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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May 27. 2024

세번째 유방암 정기검진을 대하는 나의 태도

새우두부카레

병원으로 출발하기 세 시간 전,

남편과의 아침 식사를 끝내고 식탁을 대충 정리한 다음 의자에 몸을 걸쳤다. 심장이 벙벙벙벙 뛰는 건 커피 때문일까 검사가 무서워서일까. 아침에 일어나 한 거라곤 밥 먹은 것밖에 없는데도 느껴지는 이 피곤함 역시 검사 때문일까. 왜 이렇게 계속 콧물이 나오지. 가래도 느껴지고... 


오늘은 유방암 제거 수술을 받은지 일년 반이 되는 날이고, 6개월마다 돌아오는 세 번째 정기 검진이며, 이번에는 유방만이 아닌 몸 전체를 검사한다. 



일년 반 전에 친절함으로 고개를 숙인 유방외과 의사 선생님의 "암이네요. 2.3cm" 라는 나직한 목소리를 들은 후, 처음으로 죽음과 병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죽음과 병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은 모두가 경험한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경험한다. 다만 언제 경험할 거냐의 문제인데, 이건 아무도 모른다. 오늘일 수도 있고, 60년쯤 후일 수도 있다. 만약 죽음이 예상보다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정말 슬픔과 두려움으로 남아 있는 나의 생명의 시간을 채우기를 원할까. 남은 시간이 나에게 소중하다면,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시간들로 나의 삶을 채우고 싶진 않을까.


병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삶의 경험들 중 하나다. 삶이 소중하고, 그래서 나의 삶이 가져다주는 나의 경험들이 소중하다면, 병으로 인해 겪는 모든 경험들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떨까. 고통을 경험할 수도 있고, 치유의 과정을 경험할 수도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또다른 차원의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병이 나에게 다가올까봐 벌벌 떨기보다, 병이 다가온다 싶으면 오히려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려 새로운 경험을 만끽할 수도 있을까. 마치 청룡열차에 올라타는 순간처럼. 공포도 불안함도 기대감도 기다림도 아픔도 감사도 - 그 모두를 기꺼이 음미하겠다는 단단한 용기를 품고 번지 점프를 해볼 수 있을까. 나를 믿고, 나를 담고 있는 나의 우주를 믿으면서 말이다.


6개월 전, 두번째 정기 검사가 있던 날, 검사를 하러 집을 나섰던 순간부터 의사 선생님의 "괜찮네요."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처럼 마음도 몸도 축 쳐져 있었다. 괜찮다는 말을 듣자마자 두 눈 밑에 매달린 두터운 다크써클이 사그러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씨익 웃고는 나를 어느 빵집으로 데리고 가서 달달한 마들렌을 사주었다.



사랑을 하면 용기가 생긴다.

사랑을 하면 두려움이 설 자리가 없다.


세번째 검사를 하는 오늘, 나는 나를 더 사랑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한 하루를 살기로 결정했다. 


오늘 나는 7월부터 진행할 수학 과외와 요가 수업 준비에 행복하게 몰입할 것이다.

오늘 나는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을 것이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오늘 나는 남편과 배드민턴을 신나게 칠 것이다.

오늘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감사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줄줄줄 흐르던 콧물이 어느새 다 말랐다.



< 새우두부카레 >


바닥이 좀 두터운 냄비에 양파, 당근, 편으로 썰은 마늘, 양배추, 건새우, 감자를 넣고 볶는다.

간장을 바닥에 조금 끓였다가 섞는다.

울금 또는 강황 가루를 섞는다.

까나리 액젓, 멸치 액젓, 비정제 갈색 설탕, 소금을 넣어준다.

사과 농축액과 배 농축액을 한 큰술씩 넣어 주어도 좋다. (선택)

화이트 와인을 좀 부어서 알코올을 날려 주어도 좋다. (선택)

전날 물에 불린 표고 버섯을 썰어서 넣고, 그 물을 써도 좋다.

토마토를 썰어서 넣는다.

물을 적당히 부어서 센 불에 끓이다가 끓으면 중간불에서 야채과 새우가 우러나게 한다.


일제 골든 카레 덩어리를 넣고 녹여준다.


얼렸던 두부를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놓아 두었다가 썰어 넣는다.

불 끄기 2분쯤 전에 풋고추를 썰어서 넣는다.



밥에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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