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되어본 부모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여러분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남녀 간의 사랑도 있을 거고,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있을 거고, 반려동물을 향한 사랑도 있을 겁니다. 친구와의 사랑도 있을 거고요. 세상에 있는 사랑의 종류를 다 말하자면 아마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할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사랑을 느껴야 할 존재였던 부모님은 제게는 좀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의도했건 안 했건 트라우마를 제게 안겨주시기도 했고, 사랑을 주시기도 했지만 그 사랑이 칼이 되어 저를 찌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전 사랑이 뭔지 참 궁금했습니다. 제가 알고 겪은 사랑은 그저 아픈 거였거든요. 대가가 있었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내놓아야 받을 수 있는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사랑이었죠. 그런데 책이나 영화나 어디에서나 사랑은 이유가 없고 무언가 정말 무결한 어떤 환상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의 정점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느끼기에 제가 아는 사랑과 너무너무 달라 보였고 그걸 느끼지 못하는 제가 이상한 존재이고 망가진 존재여서 그런 거라 믿었습니다. 내 부모의 잘못도 있었고, 내가 거기에 피해를 입은 거라 생각하기엔 난 너무 어렸으니까요. 그래서 늘 사랑을 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제일 자신 없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 순간이 저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한 그 순간,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멍했죠. 순간적으로,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 내가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아이가 망가지면 어쩌지? 나처럼 고장 난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모르면 어쩌지?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두려움 먼저 떠오르는 제가 망가진 존재라는 걸 다시 확신하게 되었죠. 제가 본 영화나 책이나 혹은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다들 너무 기뻐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미 생긴 아이를 세상에서 지울 용기도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거지 그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했던 것도 아녔기에 그 아이를 내 맘대로 지운다는 것은 못할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낳은 아이는 제게는 참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예민하고 느린 아이였을 뿐인데, 처음 부모라는 경험을 하는 제게는 저와 너무너무 다른 존재여서 참 힘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잠을 재우려면 기본 2~3시간은 붙들고 있어야 했고, 신생아 시절에도 낮잠을 거의 못 자는 걸 보며 그저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예민하기에 불편했던 것이었죠. 입맛은 너무 까다로워서 똑같은 음식도 식감이 달라지면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쉬운 게 하나도 없었죠.
제게는 너무 어려운 아이였기에 저는 해답을 찾기 위해 육아서에 빠지게 됩니다. 한 해에 100권이 넘는 육아서를 읽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웃긴 건, 그 어떤 육아서도 저와 제 아이에게 답이 되지 않더군요. 육아서에 나온 엄마들은 너무너무 침착했고, 다들 꾸준히 잘 해냈지만, 전 감정 기복도 심했고, 꾸준함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엄마였고요. 제 아이는 육아서에 나온 아이처럼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점점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잠을 잘 자는지, 아프지 않은지 예민한 입맛이 좀 나아져서 잘 먹는지 등등은 전혀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널뛰던 제 감정들은 점점 아이에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자기가 신발을 벗겠다고 꼬물꼬물 거리는 그 등을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절 보며 미쳤구나 싶었습니다. 이러다 진짜 제가 뉴스에 나올 것 같았죠. 그래서 이른 나이에 어린이 집으로 아이를 보냅니다. 비록 음식 알레르기 때문에 간식시간에 맞춰 매번 간식도 따로 만들어서 넣어줘야 했고, 아이가 적응을 힘들어하면 얼른 뛰어가서 데려와야 했지만, 그래도 단 한두 시간이라도 저만의 시간이 있다는 건 너무너무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거의 30개월 만에 찾은 자유였죠. 사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제가 여유를 찾고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한두 시간이었던 시간이 너무 소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심은 점점 커졌습니다. 한두 시간이 5~6시간을 원하게 되고, 결국 아이를 종일반에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괴로워하는 저 자신을 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또 비난을 하고, 심판을 내렸습니다. '역시 넌 엄마자격이 없어' 그런 심판을 내리고 나면 기분이 저조해졌습니다. 그리고 또 아이가 돌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죠.
늘 항상 기분이 우울했던 것은 아녔습니다. 마치 약을 먹은 것 마냥, 어떤 날은 기운이 차 올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오후 1시쯤 데리러 가서 놀다가 들어오기도 했죠. 그런 날은 아이와 눈도 자주 맞추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 놀이터에서 놀게도 해주고 집에 들어와서도 저녁도 원하는 메뉴를 주곤 했습니다. 제 스스로 조울증을 의심해야 했었죠. 제 들쭉 날쭉한 기분은 저의 자존감의 문제라 생각하며 부모교육도 듣고, 아동상담사, 분노조절 상담사 등등 나름 자기 계발을 한다며 열심히 뽈뽈 거리며 다녔지만, 여전히 전 남극 한복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널뛰는 감정도 그대로였고, 우울감도 여전했고, 아이는 이쁘다가도 부담스러웠고, 남편이랑은 데면데면했죠.
뭔가 계속 아등바등 물장구는 치고 있는데 몸은 하나도 앞으로 안 나가고 가라앉기만 하는 기분에 점점 지쳐갈 때였습니다. 아이가 슬슬 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죠. 그리고 전 청소년 인성 강사로도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인성 강사 하면서 만난 청소년들은 희한하게 이쁘더군요. 뭘 해도 이뻤습니다. 껄렁껄렁해서 겉멋 부리며 야한 농담을 던지는 녀석들은 더 야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면서 놀려주고, 남자 친구 자랑하는 아이에겐 그저 그렇게 좋냐며 뭐가 그렇게 좋냐고 웃어줄 수 있었습니다. 네일 아트를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사이트를 알려주고, 저렴하게 하는 방법도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하는 모든 모습들이 그냥 마냥 이뻤습니다. 내 아이에게 하는 저의 반응과 너무 다른 저의 모습에 오히려 제가 더 놀랐습니다. 제 아이가 친구랑 조금만 싸우고 오면 아이의 인성이 문제가 있나 어쩌나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아이가 바깥에서 무시당하나 불안해하고, 아이가 사이좋은 이성친구가 있으면 그냥 귀엽다가도 그 아이가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전전긍긍해하는 나의 모습과 청소년 인성강사 때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제가 어렴풋이 제가 문제임을, 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가 힘든 이유는 내가 문제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요.